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어수선한 시국이 계속된 병신년 끝자락에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가뜩이나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복잡다난한 한 해를 보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해지기 마련인데 올해는 유난히 더 그렇다. 예전 같았으면 힘든 시기에서도 난제들이 잘 해결될 거라는 믿음과 희망이라도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촛불민심에, 탄핵 등 올해만큼 사회분위기가 뒤숭숭한 해가 없었고 정치권애 대한 국민 불신이 많은 해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국민된 입장에서는 누구든 현 정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조차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

이 고단한 현실에서 ‘국가가 무엇인가’와 사회에 대한 개인적 공헌을 생각하던 중 불현듯 떠오른 게 있었으니 국민교육헌장이다. 유신시절인 1968년 12월 5일에 반포된 이 헌장 속의 말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명문장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초입부분도 그렇지만 중간부분에 나오는 대목인 ‘…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는 문장을 외워본 사람들이라면 이 시기에 국민된 도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느끼게 한다.

누구든 개인이 국가·사회에 대해 봉사하는 방법은 다르다. 각자의 주어진 여건에 따라 행하게 마련인데, 나의 경우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언론에 글을 많이 썼다. 본지에 글쓰기 전에는 지방의 지역신문사에 ‘정라곤의 느티나무’란 고정칼럼난을 만들어 글을 올렸고, 또 그 후엔 ‘브레이크뉴스’에서 꾸준히 칼럼을 썼다. 그 당시 나는 기간을 정하지 않고서 칼럼 편수로 계약했던바, 울진타임즈에서는 300편, 브레이크뉴스에서는 100편을 각각 약조했다.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에 글 쓰는 일은 주기성(週期性)이라는 시간적 한계가 따르므로 열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 당사자 간 약속에 책임지기 위해 그 당시 나는 만사를 제쳐둔 채 글 쓰는 데 열중했다. 울진타임즈에 312편의 글을 2년간에 마쳤으니 일주일에 3편씩 쓴 셈이고, 브레이크뉴스에는 1주일에 6편씩 해서 113편의 글을 썼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득하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간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간 글의 흔적들은 내게는 연민으로 남아있다.

장황하게 개인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딴에는 한 문장을 전개하기 위해서다. 다름 아닌 ‘타락한 권력은 국민의 편한 얼굴을 가장 일그러진 모습으로 거울에 담는다’는 것인바, 이 글은 2007년 12월 13일자 울진타임즈에 게재한 졸시(拙詩) ‘소크라테스의 변명(變名)’에서 서두 부분에 나오는 해설적 문장이다. 고대그리스 플라톤이 쓴 철학개론서의 제목은 ‘소크라테스의 변명(辨明)’이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한 “이성적 사유에 반(反)하는 다수 앞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으며, 그렇지 않다면 이름을 바꾸겠다”고 한 것에 착상해 시제를 변명(變名)으로 정했던 것이다.

지금도 본지에 아침평론을 쓰면서 글씀의 핵심을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에 둔다. 그것은 개인으로서 내가 가지는 국가·사회에 대한 봉사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한 전제에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게 사회적 동물로서 국가·사회와 관련된 일인데 특히 정치지도자나 사회지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주문에서다. 그렇다면 위정자들의 권력이 타락하지 않고 국민의 일상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살게 하는 ‘국민행복 만들기’를 위한 각자의 노력일 것이고, 그에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것이다.

시방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요구 가운데 하나는 국민들이 나라 걱정하지 않고, 주어진 각자 생활에 만족하며 편하게 살아갈 수 없느냐 하는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그렇지만 눈을 돌려 우리 사회를 보면 들리는 것은 불신의 목소리요, 보이는 것은 정치적 수사(修辭) 놀음이다. 한쪽에서는 잘못했으니 물러가라 아우성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니 이쯤 되면 국민 분노는 그치지 않을 게 분명한 하수상한 세월의 연속이다. 지금과 같은 난국의 그 단초는 최고지도자의 국민지지도가 4%에 불과한 데서 기인됐음은 누구도 부인할 바 없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시국에서, 임기말에도 국민지지도 57%를 보이고 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리스에서 행한 연설을 떠올려본다. “어떤 나라에서든 가장 중요한 직책은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직책은 바로 ‘국민’이다. 이 세상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그 나라가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는지, 어떤 이상을 좇아야 하는지, 어떤 가치들이 우리를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자가 돼야 한다”고 한 말은 가슴깊이 촛불을 태우고도 남음이 있다.

‘국민의 편한 얼굴이 타락한 권력으로 인해 가장 일그러진 모습으로 거울에 비춰진’ 병신년의 끝자락. 회오리바람 속의 현실 앞에서 이 시대를 바라보는 누구인들 번뇌가 따르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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