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 수십만 인파가 모여들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집회이고, 촛불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현 시국 상황에 대해 도도히 흐르는 민심의 향방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성난 민심이 결집한 ‘2016 민중 총궐기’ 집회의 여파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또 어떤 결과를 낳을지 누구도 속단할 수 없는 난제다. 다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사태들이 세월이 흐른 뒤 우리 현대사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역사적 교훈으로 자리매김할는지 또한 알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며칠 전에 아시아N 채널에서 종영된 ‘한무대제’를 재밌게 시청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실제로 그것이 정사(正史)는 아니더라도 중국 후한의 무제 시대를 생생히 다룬 이야기들이어서 새로 안 사실들이 많았었고, 한편으로는 ‘과연 역사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역사(歷史)의 정의가 다의(多義)적이라 생각한다.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을 뜻하는가하면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이라고도 새기고 ‘자연 현상이 변하여 온 자취’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이같이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역사에 대해 얼핏 생각해서 나는 ‘흐름을 잇는 게 아닐까’ 하고 단정해본다.

‘한무대제(汉武大帝)’는 중국 후한의 무제 시대를 생생히 다룬 이야기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나는 한무제에 대해선 상식선에서 알고 있었던 터라, 그저 중국 한나라 때 무제와 문제 황제가 있었고, 무제는 흉노족과 우리의 고조선을 멸하는 등 영토를 넓힌 대왕으로서 무(武)에 상당히 능통하다는 정도였다. 드라마를 보고나서야 한무제 유철이 어떻게 해서 평생사업으로 군사력을 힘으로 여기며 흉노족 정벌에 나섰는가를 알게 됐고, 또한 사기(史記)를 편찬한 사마천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가 한무제 때 태사령을 지낸 인물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드라마가 한무제 때 일어난 역사의 정사(正史)는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무제의 업적과 업보는 알 수가 있었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사마천의 이야기도 전해져오는 내용과 비슷하게 흘러가니 역사적 교훈으로 새길만하다. 한나라는 유방이 진나라와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인바, 한무제 유철은 유방의 후손으로 7대 황제이다. 실제로 이 시기가 한나라가 가장 강성했던 때였으니 그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들은 풍성한데 드라마를 보고나서 한무제가 말년에 보인 후회와 자책감은 훌륭한 역사적 교훈이기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무제는 즉위 초기부터 평생 추구한 것은 한조를 주변 나라들이 굴복하는 강대국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 모든 권력 수단을 다 썼고 흉노족 토벌에 나선 전쟁도 15차례나 됐으니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형편없었다. 그래도 그는 민생은 뒤로한 채 오로지 영토 확장에 심혈을 기울었으니 나중에 한무제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부분이다. 즉, 자신의 실정을 낱낱이 인정한 ‘윤태죄이’ 조서다. 역사적인 이 조서에서 유철이 재위에 오른 후 천하를 고통스럽게 하고 인륜에 어긋난 행동은 돌이킬 수 없다고 하면서, 결국 자신의 자만이 백성을 해하고 천하를 피폐하게 했음을 자인하고 자책했으니 그 이후엔 한 번도 출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한무제는 평소 문신과 교류하면서 전쟁보다는 화친을 내세우는 태자를 유약하다고 하면서  곱게 보지 않았다. 이를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한 간신들이 간파해 간교로 태자를 모함해 사단이 일어났으니 바로 ‘무고(巫蠱)의 난’이다. 무제 말년 황제가 병세가 깊어지자 구익부인은 자신의 최측근 강충과 짜고서 서역의 주술사를 불러 굿판을 벌린 뒤 태자를 무고했다. 이에 태자가 간신들을 없앤다는 구실로 장안 백성들과 함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구국의 길에 나섰던 백성 2만명이 희생당했으니 한무제 때 최대의 권력 투쟁 사건이다.

이 무고의 난을 주도한 조정 감찰관 강충은 무제와 구익부인의 절대적 신임을 앞세워 조정 안팎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고, 모함과 억지로 세상을 속이면서 조정을 농단했던 것이다. 온 나라가 경악한 이 사건에 대해 한무제가 뒤늦게야 진상을 파악하고 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사자궁을 짓는 한편, 백성들의 억울함을 달래는 정책을 폈다. 한무제는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리면서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게 됐던 것이다.

현대 중국인들이 그들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하는 것은 중국 영토의 초석을 다진 군주여서인데, 한무제는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제임에는 틀림없다. 중국 역사드라마 ‘한무대제’ 최종회 편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백성들에게 스스로 죄지었다’ 후회하면서 남긴 말이 있다. 즉 ‘정치의 도리는 백성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백성에 유리한 일은 가장 큰 도리이고, 가장 큰 도리는 필히 실행해야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휘청대는 현실에서 국가지도자에게 교훈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명언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를 현재에 이어 결국 미래에 대비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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