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쉬운 일도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분명 필요성은 있어도 현재 사용하거나 대용품이 있어 불편함이 없는지라 그 편리성을 느끼지 못한 채 그럭저럭 견디기 마련인 것이다. 이 전제는 예를 들어 우리 생활의 필수 도구인 신발에 적용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바, 무엇보다도 ‘신발은 발이 편해야 된다’는 상식적인 이야기다.

누구라도 신발은 몇 켤레씩 갖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착용하는 구두나 운동화 등 때에 따라  맞춰 신는 신발도 여러 가지다. 나는 운동하거나 여행을 떠날 때에 운동화를 신는 편인데, 품질 좋은 운동화가 몸을 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실감했다. 그동안 열여섯 차례에 걸친 중국여행 경험이 있지만 초기에는 일반운동화를 신고서 시내를 걷거나 넓은 사적지나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하루에 많게는 10㎞, 대여섯 시간을 계속 걷는 날도 있기 마련이어서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면 어떤 날은 발이 붓고 통증이 오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평소에 품질 좋은 신발을 신지 않았던 터라 신발과는 무관하게 많이 걸어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아내는 자유여행 도중 일어난 갖가지 에피소드를 딸에게 이야기해주곤 했는데, 주로 시내교통편을 이용하면서 많이 걷고 사람들과 부대끼다보니 중국여행이 점점 재미있어진다는 내용들이다. 그 사연을 기억하고 있던 딸이 재작년, 미국 샌디에이고에 사는 오빠한테 놀러갔다가 돌아오면서 부모 선물로 사온 게 미국 제품 나이키 신발이었다. 여행하려면 편한 신발이 필수적이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샀다고 했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는 운동화 성능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탓에 외국제 신발은 나이키가 처음이었고, 그해 가을 우리 부부는 그 신발을 신고 중국 장자제(張家界) 여행을 다녀왔다.

장자제의 빼어난 경치들은 주로 산에서 볼 수 있다. 천문산에서 999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볼 수 있는 천문동의 풍광도 그렇지만 1265m고지의 천자산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멋진 장관들은 자연의 위대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바 대부분이 걸으면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하산 코스에서 8천여개의 돌계단을 걸어서 계곡까지 내려왔는데, 오랜 시간 걸었어도 발이 편하고 힘들지 않았으니 장자제에 머문 일주일동안 계단을 오르내리며 주변 풍경을 즐기던 일은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편이다. 그 이후 나는 신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신발로 특정 상품을 홍보하는 건 아니지만 장시간 걸으면서 보고 느끼는 자유여행에서 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신발은 무엇보다 발이 편해야 한다’는 간단한 상식인 바, 그 사실을 딸애가 평소 비싼 운동화 사기를 꺼려하는 엄마에게 알려주었고, 선물 받은 나이키 신발을 통해 우리는 체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나이키는 우리 부부의 자유여행에서 필수품이 됐고, 이제는 내가 값비싼 운동화를 사주어도 딴소리가 없다.

나이키(NIKE)는 1964년에 설립된 미국의 유명 스포츠용품 브랜드이다. ‘나이키’라는 단어는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의 미국식 발음으로, 지금은 전 세계 스포츠용품 브랜드 가운데 가장 높은 브랜드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유명세를 타며 승승장구하던 한 때 곤궁에 처하게 됐으니 그 내용인즉슨 이 용품들이 비싼 가격에 판매됨에도 일당 6센트(한화 12원 정도)를 받으며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 한 장이 1996년 ‘라이프’지의 표지에 실리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나이키 불매운동으로 번진 것이다.

세계최고 기업에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비난의 대상이 된 나이키는 그 해에만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날렸다. 오랫동안 경영 수지 악화 등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룬 나이키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대규모 사회공헌을 하는 등 6년간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한번 무너진 신뢰와 평판을 다시 찾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과거 사례를 통해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나이키 회사는 현재에도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서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 중이니, 그 회사가 자초했던 곤궁을 이겨내고서 다시 우뚝 섰으니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했던 것이다.

딸애가 사준 신발을 아직도 신으며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나는 그에 더하여 나이키에 얽힌 과거 뼈저린 교훈까지 들춰보게 됐고, 어쩌면 우리나라가 국운 진퇴의 홍역을 앓고 있는 이 시기에 끄트머리에서 한마디 붙인다. 그것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설파한 ‘평판 쌓기에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하루아침이 아니라 단 5분도 안 걸린다’는 말이다. 이 말은 기업 비즈니스의 연속성과 관련돼 리스크(Lisk)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바,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지도자들의 평판과 신뢰도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절단이 난 마당에 과연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제대로 될는지 온 국민이 걱정하며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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