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는 귀가길 정류소 게시판에서 홍보지 한 장을 보았다. 어느 모임의 합창단원 모집 광고였는데 ‘노래 부르는 사람, 함께하지 말입니다’라는 문구가 돋보였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서 그런지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노래가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노래’란 뜻은 ‘가사에 곡조를 붙여 사람들이 목소리로 부를 수 있게 만든 음악’이다. 자꾸 되풀이하면서 졸라대는 것을 ‘노래 부른다’고 표현하는 다른 의미도 있지만 노래에는 유행가가 아니라하더라도 그 당시 시대상황을 속속들이 나타내는 상징성들이 있다.

제천의식이나 행사 때 신성시하거나 또는 흥겨움을 주기 위해 노래가 만들어졌지만 고대 사람들이나 현시대에서도 노래는 성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노래로 신라 때의 ‘향가(鄕歌)’가 있다. 모두 25수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서동요(薯童謠)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귀어(통정하여 두고) 맛둥(薯童)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善化公主主隱 他 密只 嫁良 置古 薯童房乙 夜矣 卯乙 抱遣 去如)’는 내용의 서동요는 백제의 서동(薯童: 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은 민요 형식의 노래다.

신라 땅에서 어린애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된 이 노래로 인해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게 됐다. 노래가 사실 호도나 선동하는 도구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인 바, 즉 대중 의사를 전달하는 여론의 몰이 수단으로써 선동 효과가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특히 의미조차 모르면서 신나게 불러대는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입을 통해 널리 전파되는 계몽가(啓蒙歌)는 특정세력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결과를 만드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지난 195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정부기관이 의도적으로 기획해 어린 학생들의 입을 통해 사회에 전달됐거나 건전가요란 이름으로 불러진 노래들이 우리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기도 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이승만 대통령 찬가’라는 노래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 위해 여든 평생 한결 같이 몸 바쳐 오신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는 가사의 이 노래는 필자가 초등학생시절 학교 공부시간에 배워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1960년도 초기에는 ‘혁명가’ 노래를 학교에서 배웠다. ‘동트는 새아침에 어둠을 뚫고 찬란히 타오른 혁명의 불꽃, 구악을 뿌리 뽑고 부정을 씻고 새나라 새살림을 꾸려가려는 아-아-아-아 혁명의 새날이다 복된 날이다.’ 이 노래는 5.16군사쿠데타의 정당성을 호도하기 위해 당시 정권에서 교육정책의 하나로 전국 교육 현장에서 부르게 했던 것인데, 대통령찬가나 혁명가 등은 어린 학생들의 입을 통해서 사회에 전파하는 효과 만점의 선동가였다.

새마을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가던 1970년대 초 가장 많이 들어본 노래가 새마을노래였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청소차가 틀고서 다녔는데 오랫동안 국민노래로 불러져왔다. 이 같은 계몽성이 강하거나 선동성 짙은 노래는 시대사조를 풍미하면서 사회 깊숙이 파고들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때 배운 ‘대통령 찬가’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은 어린 시절 학습 효과가 아닐까.

노래에는 인간성을 순화시키는 마력이 있는 한편 상징성을 조작하는 기능성도 있어 대중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특히 인기를 끌었던 국민가요는 우리 사회의 시대적 정서를 잘 대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볼 때 1983년경 가수 정수라 씨가 부른 ‘아! 대한민국’은 특수한 케이스다. 이 노래는 5공화국 정책에 의해 대중가요 음반의 마지막 곡에 건전가요를 수록해야 심의필을 받을 수 있는 의도적 조치로 약방의 감초 같은 건전가요가 됐던 바 마치 제2의 애국가처럼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다. 88서울올림픽 때까지 최고 주가를 올린 이 노래 가사 내용에서 5공화국의 치적의 하나인 한강종합개발 등을 찬미한 노래라 하여 훗날 말들이 많았다.

이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포크송, 디스코풍, 랩 뮤직 등 음악 장르의 다양화를 거치면서 더욱 자유분방한 음악들이 우리 사회에 파고들고 있다. 한때 정권 홍보용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교훈적·계몽적인 노래는 꿈도 꿀 수 없는 시대가 됐으니 앞서 이야기한 이승만대통령찬가나 쿠데타정권의 정당성을 미화했던 혁명가 같은 선동적 노래는 어두웠던 옛 시절의 희미한 그림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세월도 많이 흘렀지만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밝은 사회를 만들고 국민에게 희망을 가지게 했던 건전가요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이미 오래다. 산천이 변했고 시대가 변한 지금, 우리는 다양화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호시절에 살고 있건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노래가 나온 지도 벌써 33년이 지났다. 노래가 현실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결국 노랫말로 끝나니 아쉬움이 남는데, 과연 노래가사와 같은 좋은 세상이 이 땅에 찾아와서 이 강산을 노래 부를 수 있을는지…. 이것도 꿈이라면 큰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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