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다시 광복절을 맞으며 한번 생각해본다. 비록 내가 경험하진 못했지만 일제강점기에서 36년간 절망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게 그날의 기쁨이 어떠했는지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또 나라 잃은 슬픔이 일상에서 어떻게 다가왔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 골몰한 바, 그것은 전에 본 한 장의 사진에서도 잘 나타난다. 다름 아닌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찍은 사진이다. 그가 쓴 월계관의 영예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에 짙게 드리운 우수는 일장기를 달고 있는 마라톤 영웅의 비애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산천이 몇 번 변하는 세월이 무수히 흐르고서 71주년 광복절이 다가왔다. 이 날을 맞을 때마다 느껴지는 솔직한 나의 마음은 학창시절의 학습이나 역사 교훈을 통해 얻어진 광복의 의미뿐이다. 앞서 이 땅에 살아온 선조들에게 절망의 시대가 희망의 시대로 바뀐 역사의 전환점이라는 것은 알지만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그분들처럼 광복의 살 떨리는 환희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재조명해야 할 광복의 의미는 매우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광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해 오신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는 것과 다시는 이 땅에서 수난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는 것, 그 마음위에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루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름대로 단정해본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속속들이 그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광복절 행사와 그 부대행사가 주는 의미만큼은 충분히 가슴에 안아야할 것이다.

많은 단체들의 의미 있는 광복절 행사들이 있었지만 14일 한국언론인연합회가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펼친 공연은 광복절 의미를 더해주고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행사다. 광복 71주년을 경축하고, 독립투사의 넋을 기리는 이 행사의 주제는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넘어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투철한 애국심을 결집하자’는 것인즉,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광복의 가슴 벅찬 환희와 미래의 다짐은 잊을 수야 없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날이 갈수록 점점 무뎌져가고 그야말로 역사속의 교훈으로 자리 잡고 있을 광복절 의미에 대해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올해 광복절을 맞으며 나는 두 가지를 연상해본다. 하나는 ‘덕혜옹주’ 영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리우올림픽 구본찬 선수의 개인전 ‘우승 드라마’다. ‘덕혜옹주’ 영화는 소설가 권비영 작가의 동명의 장편소설을 소재로 영화로 찍었는데 지난 3일 개봉한 이후 10여일 만에 300만명의 관람객을 모은 흥행작이다. 일부 사람들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나 영화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의 심리에 편승하는 멜로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어째든 어린 몸으로 일제에 의해 일본으로 갔다가 광복이 돼도 귀국하지 못하다가 1961년에서야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밟은 조선의 마지막 옹녀의 일면목에서 망국의 아픈 역사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구본찬 선수의 개인전 우승은 한마디로 극적 반전의 훌륭한 드라마라 해도 손색이 없다. 결과적으로 구 선수가 금메달을 땄으니까 그동안 흘린 땀의 결실이 돋보이는 대목이지만 8강과 4강의 담벼락을 넘을 때까지는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선수조차 우승 소감이 ‘8강과 4강에서 죽는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니 아무리 세계랭킹이 높고, 실력이 월등하다고 해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금 과녁 맞추기란 쉽지 않다는 것임을 나는 TV 생중계를 보면서 비로소 실감했다.

중계방송이 되는 사이 ‘구본찬이 되지 말고 십본찬이 되라’는 응원메시지가 자막을 통해 나왔다. ‘구(九)점을 쏘지 말고 십(十)점에 맞춰라’는 국민응원가였다. 그 성원에 구 선수는 결국 이뤄냈지만 8강과 준결승전에서 단 한 발로 승패를 가리는 ‘슛오프’의 위기를 연속적으로 만났다. 4세트까지 4대 4 동점이 된 8강전 5세트에서 호주의 테일러 워스 선수가 8점을 쏘는 바람에 이겼고, 준결승전에서는 5세트까지 5대 5 동점상황에서 마지막 한 발을 상대선수가 8점을 쏘는 바람에 9점을 쏜 구 선수가 승리했다. 그 후 결승전에서는 세계랭킹 4위의 프랑스의 장쌰를 벨레동 선수를 여유 있게 따돌려 마침내 양궁 전 종목 석권의 금자탑을 이뤄낸 것이다.

지난 13일 이 땅의 새벽을 금빛으로 물들이게 한 남자양궁 개인전 우승 배경은 구본찬 선수의 긍정의 힘이었다. 올해 스물 세 살의 자랑스런 궁사는 무거운 부담감과 어려움, 고비를 잘 이겨내고 국민들에게 환희를 선물했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힘든 시합이었다. 이른 시간 TV를 지켜본 시청자들이 그가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해도 무어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는 ‘땀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하여 광복절 71주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생각해본다. ‘광복의 빛을 다시 찾듯’ 우리 국민들이 망국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제각기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광복절의 새로운 의미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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