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시대가 변하다보니 희한한 일이 다 생긴다. 세금인상 문제다. 통상적으로는 나라살림에 필요한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 정부·여당이 세법개정을 주장하면 야당에서 반대하기 마련인데 이번 정부에서는 그 반대현상을 보인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세금 정책은 국민 부담을 고려해 일체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세율 체계를 건드리지 않는 올해 세법개정안을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부자증세(增稅)’ 카드를 꺼내 들고 나서 세금인상론에 불을 지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인세를 감면했지만 기업들이 사내유보금만 적립했을 뿐 내수투자를 거의 하지 않아 경기회복 효과가 없다는 빌미로 법인세·소득세 인상 방안을 내놓았는바, 이유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앞으로 더 적극적인 국민복지를 위해 쓰임새가 많아지므로 문제점이 따르는 법인세의 세율 22%를 종전대로 25%로 환원하자는 내용과 함께 소득세율에 대해 일부 내용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연간 약 4.1조원으로 세수증대 효과가 있다고 야당은 추산하고 있다.

더민주당의 총선 선거공약이기도 한 법인세 인상 방안은 문제없다는 게 자체분석이다. 법인세 총 대상 55만개 기업 가운데 과세표준(과표) 500억원 이상인 417개 기업이 해당되는 만큼, 영업 이익을 많이 낸 회사에서 세금을 더 납부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이며, 이와 함께 소득세법도 손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소득세법을 보면 과표 구간별 세율은 다섯 개 구간이다. 그 가운데 최고 세율 구간인 연소득 1억 5천만원 초과소득자에 대해서 38%가 부과되고 있는바 여기에 5억원 초과 구간을 새로 만들어 41% 세율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2014년도 기준으로 근로소득자 1668만여명 가운데 과표 5억원이 넘는 개인소득자는 극히 일부로 부유층에만 세금을 더 납부하도록 하는 것은 국민반대 목소리도 적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부의 다른 정책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세금정책은 소득재분배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말은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정부 운영에 꼭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무엇보다 국민들이 공감해야 하고, 정치권의 여야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정치권에서부터 법인세와 소득세법을 일부 개정해야 한다며 군불을 지피고 있지만 문제가 없지 않은 법인세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겠다. 입법 권한을 가졌다 하여 정부 의사를 무시하고 야당이 일방 처리해서는 법인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사정이니 여당에서는 반대 입장을 보인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세계가 법인세 인하정책을 유지하는데 우리나라만 인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야당의 증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다. 우리 경제가 이미 저성장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기업에게 투자를 유도해 내수 진작 등에 더 신경을 써야 하건만 세금 인상으로 기업 옥죄기를 하게 되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우려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시쳇말로 기업은 돈 놓고 돈 먹기 경쟁을 벌이는데 세계경기 부진으로 기업환경이 열악해진 지금, 법인세를 높일 경우 국내에 발판을 삼은 기업들은 인건비가 싸고 지원 조건이 양호한 아시아국가로 기업 본사를 옮길 수 있겠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복지제도가 일반화돼 있다. 국민복지를 제대로 하려면 안정적인 정부의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주류를 이루는 것은 국민이 내는 세금이다. 세금이 많을수록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지출비용은 당연히 늘어날 테지만 세금을 함부로 인상할 문제도 아니어서 정부·여당이든 야당이든 골머리를 앓게 된다. 다행히 올해 들어와서 담배세 등 세금이 잘 걷히고 세수증대가 늘어나서 세금 인상 정책을 고려할 것은 아니겠지만 매번 이처럼 세금 호황기를 이루라는 법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혹여 법인세와 소득세법에서 개선해야 될 점은 없는지, 부유층에게 부자감세 해주고 담배세처럼 서민 세금이 배가되는지를 검토해볼 만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베버리지보고서가 나온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사회보장주의 강화 차원에서 포괄적 복지제도 마련에 힘쓰고 있다. 그 이념이 발전돼 오늘날 ‘국민복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은 사회의 어떤 분야에도 ‘복지’라는 말이 핵심어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그 용어의 쓰임새는 약방의 감초처럼 어디든 따라 다니고 있는바, 심지어 공짜개념으로서 ‘무상복지’가 난무하는 세상이 됐다. 따지고 보면 사전적 의미가 ‘행복한 삶’을 뜻하는 복지를 개인이나 단체든 간에 누가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복지는 국민의 성실한 납세의무에서 보장된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한 것이다.

‘국민복지’라는 사회보장책은 완전무결한 세금정책이 전제돼야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현대국가에서 복지제도가 필수인 만큼 나라곳간과 직결되는 세금정책 또한 중요시된다. 증세하든 감세하든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복지야말로 최상의 복지로 이어진다. 어느 정치인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말했다가 여권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일도 있지만, 증세 없이도 좋은 복지를 할 수만 있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더 다양하고 질 좋은 국민복지를 감당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한 일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인세, 소득세 사안을 두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서로 대척하고 있는 상태에서 상호 반대에 매달릴 게 아니라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하겠다. 어느 것이 암꿩이고 수꿩인지 감별하는 것도 정치인의 무거운 책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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