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며칠 전 택시를 타고 가는데 국회의원의 친인척 채용 논란 내용이 뉴스를 타고 있었다. 그 뉴스를 듣다말고 운전기사가 혼잣말하는 건지, 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모르긴 하되 “국회의원들, 얼굴 참 두껍다”는 말을 끄집어냈다.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필자는 맞장구치듯 “그렇지요”라고 응대하니 그 기사는 “하는 일은 쥐꼬리만큼 하면서 월급은 세계 최고로 받고, 특권도 너무 많다”는 이야기다. 언젠가 언론보도를 통해 들어보니 국회의원이 갖고 있는 특권이 200가지나 된다고 하면서 그렇게 많은 특권이 과연 필요한가를 따지듯이 내게 물었다.

운전기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할 일만 제대로 해준다면 높은 봉급과 얼마간 특권도 곱게 봐 줄 수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 일들이 국민 얼굴 찌푸리게만 해왔으니 참아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국회의원 수당이 얼마인 줄 아느냐 물으니 “한 달에 천만원이 넘는다 하대요”라고 답했다. 영업용 택시를 몰면서 많은 승객과 대화하고 또 수시로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고 실시간으로 정보에 접하다보니 아는 게 많았다. 말하는 요령도 자신에게 하는 독백인지 아니면 승객한테 거는 말인지 모를 정도로 애매하지만 어쨌든 화술이 좋았다.

국회의원의 특권이 200가지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많은 건지 필자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19대 국회 때인 2014년 9월경, 국회 등록단체인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가 주관한 ‘국회개혁 토론회’에서 국회의원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200가지에 달한다고 발표된 바 있으나 구체적인 유형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 당시 국회사무처에서는 “삼권분립의 원칙상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입법권, 재정권, 국정통제권 등을 특권으로 삼아 왈가왈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하면서 200개라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정치 불신에 기댄 비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원특권을 폐지하라는 국민 요구가 나온 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지난 19대 국회의원들도 임기 초부터 의원특권을 과감하게 내려놓겠다 대국민 약속을 하고 법안까지 마련했다. 본회의와 상임위가 열리지 않거나 국회의원이 구속되면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내용의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돈 받는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불체포특권 남용 방지방안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 등을 의안으로 정식 제출했지만 끝내 결정하지 않은 채 지난 5월 30일 19대 국회 폐기와 동시에 자동폐기 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받는 세비 연 1억 3800만원은 선진국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 많은 세비에도 불구하고 국회 회기 중에 출석하지 않아도, 19대의 모 의원처럼 4년간 단 한 건의 법률안을 발의하지 않아도 세비는 꼬박꼬박 받았다. 무노동, 무임금이 보편화된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만큼은 무노동 유임금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보좌진 최대 7명까지 둘 수 있는 것 등 유·무형의 특권이 수두룩하다.

그렇게 특권 수혜가 많으니 그동안 의원 스스로가 내려놓겠다고 국민 앞에 다짐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20대 국회에 들어 또다시 의원특권 폐지가 사회단체 등에서 주장되고 있다. 다행인 점은 이번 국회의원 가운데 초선의원이 132명으로 절반에 가깝다. 이들을 중심으로 해 의원특권 폐지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 한 단체가 20대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정책조사 설문한 결과 응답자 162명 중에서 57.4%가 불체포특권 및 면책특권을 포기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 바 초선의원들이 적극 호응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국민 요구도 그렇고 일부 의원들이 동조하려는 지금 이 시기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의원특권에 관해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얼마 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정 의장은 “국회의원 특권이 6200여 가지 있다고 하는데 전혀 공감 못한다”고 하면서도 200여 가지 국회의원 특권이 있다면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특권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에 대해 이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개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주목을 끌고 있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대해, 정치권에 대해 불신이 큰데 의회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사실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의 산물이다. 최고권력이 만인(萬人)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정권 연장 수단 등으로 사용되던 어두운 시절에 정치적 이유로 국회의원을 함부로 구금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자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입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 의원특권 조항을 뒀던 것이다. 이 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국민의 권리보장과 정부 견제 장치로 활용되는 등 바른 방향에서 운용됐다기보다는 불체포특권을 빌미로 개인적 비리에 연루된 국회의원들이 검찰·경찰의 소환에 불응하는 등 국회 뒤에 숨는 ‘방탄국회’의 보호막을 누렸던 것이다. 이쯤 됐으니 폐지돼야 한다는 국민 요구는 일리가 있다. 얼마나 더 오래 국회의원들이 특권 속에서 호의호식을 누릴 것인가. 이제는 의원특권을 단호하게 내려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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