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중국 사극을 시청하다보면 황제가 면류관을 쓰고 등장하는 장면들이 자주 보인다. 황제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에 쓴 면류관의 유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흔들리곤 하는데 보통사람 같았으면 머리에서 치렁대는 관을 귀찮아했음직 한데도 황제는 마다않고 착용했으니 그 자체가 위엄이었다. 이같이 황제의 존엄이기도 한 면류관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즉, 면류관(冕旒冠) 앞에 늘어뜨린 유(旒)는 왕이 너무 눈이 밝음을 경계하기 위해서이고, 좌우에 달린 광(纊)과 진(瑱)이 귀 옆까지 늘어뜨려 놓은 것은 외부 목소리를 경계하라는 뜻이 새겨져있다.

필자가 글머리에서 면류관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위 언급에서처럼 옛날 임금이 쓰던 면류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과욕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면류관과 관련돼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본 칼럼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중국 한나라 때 대덕이 쓴 대대예기(大戴禮記) 속 이야기다. 예기(禮記) 200편 중 85편을 골라내 편집한 대대예기의 자장문입관(子張問入官)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옛날에 면류관을 쓸 때 눈가리개를 드리우는 것은 눈 밝음(明)을 가리기 위해서이고, 솜으로 귀를 막는 것은 귀 밝음을 가리기 위해서다. 너무 맑은 물엔 고기가 살지 않고 너무 따지는 인간에게는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대대예기’ 중에서)’는 이 말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사람들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어떤 일에서 사리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사회 주변에서 일어난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내용들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다. 개인이나 집단이 행한 옳고 바르게 한 일에 대해 그 반대편에서 굳이 따지려듦은 또 다른 속내가 개재된 경우다. 이 같은 일들은 정치계에서 흔한 일인데 같은 정당에 몸담고 있어도 계파가 다르면 일일이 시시비비를 따지고 걸고넘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과거 어느 정당에서 계파분쟁이 생겼을 때 차라리 타당에게 손을 들어줄지언정 소속 정당 내 다른 계파의 주장에는 동조할 수 없다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은 불행한 정당사를 만들기도 했다.

요즘 새누리당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가 통과시킨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문제를 두고 며칠간 시끄러웠다. 최고위원회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비대위가 정식 안건으로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복당 신청한 5명에 대한 복당 결정은 새누리당 당헌·당규에 의한 합법적인 의결이다. 즉 새누리당 당헌에는 비대위가 구성된 경우 최고위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돼 있고, 당원규정 제5조(탈당자의 재입당에 관한 규정)은 ‘탈당한 자 중 탈당 후 다른 정당 후보 또는 무소속 후보로 국회의원 및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경우 등 해당행위의 정도가 심한 자가 입당신청을 한 경우에 시·도당은 최고위원회의의 승인을 얻어 입당을 허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총선 때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윤상현 의원 등이 시·도당에 입당신청을 했고, 비대위에서는 당헌규정에 의해 탈당파 7명에 대해 일괄복당을 허용했음에도 새누리당 친박계 일부 의원들이 항의했다. 특히 강성 친박 의원들은 유승민 의원의 복당 결정을 ‘비대위 쿠데타’로 규정하면서 강력히 반발했던 바, 이들은 민주정당의 민주적 절차까지 공개적으로 부정하면서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도당적(徒黨的) 작태를 보이기까지 한다.

민주정당인 새누리당에 국회의원만이 있는 게 아니고, 또 소위 ‘친박’이라는 계파가 그 주인이 아니다. 알다시피 정당은 결국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존재하는 국민의 자발적 모임체다. 정당법에서도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새누리당에서는 일부 계파들이 마치 당 전체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잘못된 현상이다.

새누리당은 현재 정상적인 지도부가 없는 상태다. 다음 전당대회 때까지 임시로 지도부를 이끌어가고 있는 비대위와 비대위원들의 정상적인 직무마저 강성 친박계에서 시비를 걸고 있으니 사공이 많아 자칫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갈 위기에 놓여져 있다. 설령 비대위가 당헌·당규에 의하지 않고 잘못한다면 정상적인 룰을 따져서 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것이 맞겠지만 법적 절차대로 잘하고 있음에도 엉터리 시비를 걸고 있으니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

서두의 면류관 이야기나 대대예기의 문장은 정도를 시사하고 있는 바, 지도자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옳고 바른 길이다. 총선으로 상처 입은 새누리당이 위기를 반전 기회로 만들어가야 할 테지만 이번 유승민 의원의 복당과정에서 노출된 행태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친박 의원들의 강성 반발은 새누리당이 과연 국민의 건전한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기 위해 힘쓰는 정당인지, 도당인지 분간마저 어렵게 하는데 정상적인 비대위 활동을 ‘쿠데타’로 몰아붙이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새로 태어나겠다는 새누리당 각오는 한낱 허공속의 메아리로 울려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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