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힘이나 돈을 들이지 않고 거저 물건을 얻는다면  무엇이나 즐겨 먹는다는 말인데, 십중팔구는 마다할 리 없겠으나 개중에는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해도 사회제도적으로 무상 지급되는 것이라면 당연히 수긍하게 된다. 예를 들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기준에 맞는 자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노인연금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로부터 공짜 베풂을 받는다면 그것을 갚을 요량을 하게 되지만 사회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복지는 어디까지나 예외다.

그만큼 ‘복지’라는 제도가 좋다는 것인데, 지금 스위스에서는 무상복지로 현지여론이 뜨겁다. 5일 실시된 ‘기본소득(Basic income)’에 관한 국민투표 결과는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국민복지와 관련된 사안을 두고 정부에서 국민투표를 붙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한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더니만 정부가 성년 1인에게 매월 2500스위스프랑(한화 300만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매월 650스위스프랑(78만원) 지급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했다니 국가복지가 정말 잘된 나라인지, 정말 그럴 재정적 여유가 있는지 필자도 의아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1인당 국민소득(2015년 기준)에서 우리나라는 3만 달러가 안 되지만 스위스는 8만 8120달러에 이르는 작은 부자나라라는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 스위스에 여행간 적이 있고, 그곳에서 스위스 사람들의 특유한 여유를 보았다. 물론 스위스는 세계적인 알프스산이나 레만호수 등 명산명수가 자리한 관광대국이니 국제 관광객으로 인한 수입도 만만찮겠지만 그들의 여유는 부자나라인 국가가 보장하고, 보편화된 사회제도에서 기인됨을 알았다. 당시 기차를 타고 넘던 알프스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나 필자가 국내에서 재밌게 본 ‘레만호에 지다’는 드라마 영향으로 찾아가 본 제네바의 레만호, 그 주변의 잘 가꿔진 공원과 마치 바다 같은 호수를 보면서 스위스가 살기 좋은 나라임을 느꼈다.

이제는 변했겠지만 당시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스위스 고등학생의 대학 취학률은 10%대에 머물었고, 거의가 기술계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드는데 사회적 편견이 없으니 학력 간 임금격차도 없다고 했다. 또한 일찍 직장을 가질수록 노년수당을 타는 시기가 빨라져서 이십대에 취업해 세금을 내고서는 30년이 지난 50대 초중반에 노령연금 혜택을 받는다고 하니 그러한 사회제도 덕분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스위스는 안정된 복지국가로서 체제를 갖춘 국가인데 이번에는 정부가 국민에게 안정적인 기본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해 찬반투표를 했다니 역시 작지만 강한 국가의 모습이 드러난다.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1인당 매월 20만원 정도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선별적복지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좋은 복지국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에 비해 스위스에서는 인구 8백만의 전원에게 매월 300만원(어린이와 청소년 78만원)을 지급하는 보편적복지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국민투표에서 찬성된다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세계 첫 국가가 되겠지만 설령 반대자가 많아 통과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책임진다는 높은 평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모든 국민이 두루 잘 사는 나라가 공정하고 좋은 복지국가이다. 사회 구성원이 고등학교든 대학이든 졸업하게 되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취업하는 동안 소득이 안정적으로 보장되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스위스가 내건 국민복지 정책, 즉 소득 불평등과 일자리 감소로 일하지 않고도 일정 수입을 보장받는 ‘기본소득’은 세계적으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비단 스위스뿐만 아니다. 국민복지제도가 잘 되고 있는 핀란드에서는 국민 1인당 월 800유로(약 101만원)를 지급하는 기존 복지제도 개선안이 올해 중 마련될 계획이고, 네덜란드에서도 19개 시 당국이 전 시민에게 월 900유로(약 120만원) 지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복지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에서 지급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가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질 좋은 복지제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연성을 가져다주고 있는 바, 핵심은 국민복지를 지속화시킬 복지재정의 안정성이다.

스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소득과 고용률을 자랑하는 부국이다. 모든 국민의 품격 있는  삶을 위해 정부가 최소한의 생계비용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제도를 국민투표에 붙였지만 정작으로 국민들은 공짜로 돈을 준대도 반 이상이 싫어한다는 것인데, 노동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세상에 ‘공짜’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들은 스스로가 나라에 이익되는 점을 찾고, 또 정부에서는 진정심을 갖고 국민의 풍요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그러한 점들이 건강한 사회를 이루면서 부자나라를 만든 동력이었으니 스위스는 작지만 강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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