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독립 후 종교·민족갈등
남부 기독교, 북부 이슬람 전파
비아프라 내전으로 200만 숨져
이슬람 극단주의 보코하람 기승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굵직한 이슈 중 분쟁과 전쟁은 단골손님이다. 그중 종교분쟁은 사상‧이념‧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양상을 보이곤 한다. 대표적인 종교분쟁으로 꼽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당사자인 소위 ‘이팔 분쟁’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개신교 등 굵직한 종교가 얽혀 성지를 놓고 다툼을 한 지 벌써 75년이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얽힌 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기획 연재를 통해 각국 종교분쟁을 조명하고 분쟁의 심각성을 재조명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약 250개 부족과 종족으로 구성된 나이지리아는 최근까지도 끊임없는 종교 분쟁으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폭탄 테러가 발생한 나아지리아 온도주 한 성당의 현장(왼쪽)과 사진은 라마단 기간 중 기도하는 무슬림 신자들의 모습. (출처:AP/뉴시스)
약 250개 부족과 종족으로 구성된 나이지리아는 최근까지도 끊임없는 종교 분쟁으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폭탄 테러가 발생한 나아지리아 온도주 한 성당의 현장(왼쪽)과 사진은 라마단 기간 중 기도하는 무슬림 신자들의 모습. (출처:AP/뉴시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지구상에서 벌어진 내전 중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종교’와 ‘종족’의 대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 당시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화 과정에서 민족, 언어,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식민지 지역에 경계선을 긋고 행정구역을 나눴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대로 독립시켰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내전과 전쟁, 영토, 종교, 민족 분쟁 등의 원인은 대부분 이 때문이다.

아프리카 최대 인구 대국인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진 내전 역시 그렇다. 나이지리아에서는 1967~1970년 100만명의 민간인이 전투와 기아로 사망하는 참혹한 전쟁이 벌어졌다. 이번 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이지리아의 내전과 그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약 250개 부족과 종족으로 구성된 나이지리아는 언어도 500개가 넘는다.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민족갈등과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또 나이지리아는 식민 종주국의 영향을 받아 남부는 기독교, 북부는 이슬람이 전파됐다. 인구의 절반 가까운 7500만명이 무슬림이다. 이러한 복잡한 민족과 종교적 대립이 유혈사태로 발전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무력충돌 위치 및 이벤트 데이터 프로젝트(ACLED)’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는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 2200건이 넘는 폭력 사태가 발생했으며 5910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에 더해 나이지리아 분쟁으로 인해 현재까지 22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돌고 있다.

◆ 최악의 내전 ‘비아프라 전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이지리아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내전이 있으니 바로 ‘비아프라 전쟁’이다. 1967년 7월부터 1970년 1월까지 발생했던 비아프라 전쟁은 나이지리아 주요 부족 중 하나인 이보족이 정치·종교적 불평등에 시달리다가 1967년 5월 분리 독립을 선언해 ‘비아프라 공화국’을 탄생시키면서부터 시작된 내전이다. 독립에 대해 반대한 하우사족이 이보족을 무차별 살상했고, 비아프라 공화국의 원유를 갖고자 했던 소련은 막대한 무기와 군비를 하우사족에게 지원했다. 이보족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하우사족과 소련의 ‘봉쇄 작전’으로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식량 보급로가 끊긴 비아프라 공화국은 1969년 1년간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200만명 이상이 아사했으며, 그중 50만명은 7세 이하의 어린이들이었다. 심할 땐 하루 6000여명이 죽어 나갔다. 당시 팔다리가 앙상한 채 배만 볼록 나온 비아프라 아이들의 사진은 ‘아프리카 가난’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 종교 대립 등 복잡

나이지리아의 분쟁은 크게 중부, 북부, 남부 분쟁으로 나뉘는데 지역별로 분쟁의 쟁점과 맥락이 상이하다. 중부 분쟁은 북부 출신 무슬림과 남부 출신 기독교인들 간 종교 대립 등이 중심이며 남부 분쟁은 중앙정부와 반정부·반군 세력 간 자원분쟁, 분리주의 분쟁을 중심으로 한다.

중부에서는 이슬람 공동체에 의한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폭력이 심각한데 일례로 플래토주에서 농지나 목초지를 둘러싼 농민과 유목민 간 무력충돌은, 민족·종교·정치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히면서 수십년 동안 수천명이 목숨을 잃는 피해를 낳았다. 2010년 3월 초 중부 플래토주 조스에서 무슬림 유목민들이 기독교도 주민 500여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2018년 6월에는 바리킨라디 지역에서 농업을 하는 베롬족(기독교)과 유목민족인 풀라니족(이슬람교) 사이 유혈 충돌이 발생해 그 여파로 2018년 1월부터 10월까지 2000여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 보코하람 피해 극심

특히 북부에서는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정의를 추구하겠다고 강조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등장하며 민간인에 대한 폭력, 그리고 이를 진압하고자 하는 중앙정부와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보코하람은 2002년 가난과 부정부패와 경제적 차별 등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이념과 결부해 탄생했다. 이들은 오직 ‘선지자의 가르침’에 헌신하고 샤리아 율법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며, 쿠란(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모든 문명의 이기와 근대적 가치를 부정하고 고대 칼리프 제국 건설에 도움이 된다면 학살과 테러를 서슴지 않는다. 종교적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윤리적 가치도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기에 보코하람의 존재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나이지리아는 물론 지역과 국제사회의 안보에 대한 큰 도전이 되고 있다.

보코하람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들이 2009년 8월 정부군을 습격한 이후다. 이후 이들의 테러 수위도 ‘아프리카 탈레반’ ‘나이지리아 탈레반’이라고 불릴 만큼 더욱 잔인해졌다. 공격 대상도 국가기관과 기독교 상징물에서 친정부 성향의 마을주민, 세속주의 교과과정을 가르치는 학교 등 민간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보코하람은 2012년 나이지리아 북부 카노시에서 민간인을 공격(185여명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 9월 대학 기숙사 총기 난사(학생 50명 사망), 2014년 4월 치복에서 여학생 276명 납치(2018년 정부와 협상 이후 100명 석방), 2018년 여학생 100명 납치(76명 구조, 2명 사망) 등 끊임없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를 벌이며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보코하람은 2020년 말 기준 1500~2000명의 조직원이 여전히 활동 중이며 북동부 보르노 지역에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 혼란을 조성해 반정부 환경을 만들어 그것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데 2020년 11월에 28일 한 농촌 마을에서 쌀을 수확하고 있던 근로자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최소 110명을 살해했으며 12월 11일에는 북부의 한 국립 과학중학교를 급습해 “알라와 신성한 예언자가 허용하지 않는 교육”을 받는다는 이유로 남학생 330명 이상을 납치하기도 했다.

현재 나이지리아 인구의 52%는 기독교를, 약 41%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 종교 갈등이 첨예하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정치와 정치인들은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악용하거나 촉진시켜 왔다. 여기에 이슬람 무장조직인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의 전체의 이슬람화를 추구함에 따라 이슬람 세력의 기독교 박해가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부하리 대통령 2기 행정부가 치안 문제를 핵심 국정과제로 다루고 있음에도 국토 전역에서는 민족·종교 갈등으로 인한 무력충돌, 무장조직의 테러, 무장단체에 의한 현지 주민·외국인 희생 피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출처: 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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