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75%가 불교 싱할라족
소수 힌두교 타밀족과 갈등
불교 우대 정책에 반란 일어

30년 동안 내전 이어져오며
양측 최대 10만명 사망 추정
민간인 7000명 희생되기도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굵직한 이슈 중 분쟁과 전쟁은 단골손님이다.그중 종교분쟁은 사상‧이념‧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양상을 보이곤 한다. 대표적인 종교분쟁으로 꼽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당사자인 소위 ‘이팔 분쟁’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개신교 등 굵직한 종교가 얽혀 성지를 놓고 다툼을 한 지 벌써 75년이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얽힌 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기획 연재를 통해 각국 종교분쟁을 조명하고 분쟁의 심각성을 재조명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2019년 9월 21일 부활절 폭발테러가 발생한 스리랑카 네곰보 소재 성 세바스티안스 가톨릭 성당 내부에 희생자들의 시신이 눕혀져 있다. (출처:AP/뉴시스)
2019년 9월 21일 부활절 폭발테러가 발생한 스리랑카 네곰보 소재 성 세바스티안스 가톨릭 성당 내부에 희생자들의 시신이 눕혀져 있다. (출처:AP/뉴시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 지난 2019년 4월 23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성 안토니오 성당 등 주요 성당과 호텔에서 연쇄 테러로 수백 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번 테러는 평온하게 예배를 드리거나 휴일을 즐기던 신도와 관광객들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잔혹성이 두드러진다.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거나 용서될 수 없는 최악의 범죄행위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사고로 200여명이 넘게 숨지고, 500여명이 다쳤다. 스리랑카 당국은 이 사건을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테러 공격으로 잠정 규정했다.

스리랑카는 전체 인구의 75%가량을 차지하는 싱할라족, 15%가량의 타밀족 외에도 이슬람교를 믿는 9.2%의 무어족으로 구성된 다민족·종교 국가다. 싱할라족이 대다수가 불교도라면 타밀족은 대다수가 힌두교도들이며 소수가 가톨릭 신자들이다.

스리랑카는 BC 483년 비자야가 원주민을 정복하고 싱할라 왕조를 건설한 이후 BC 3세기에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스리랑카의 싱할라족과 타밀족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갈등과 반목보다는 타협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평화스럽게 살아왔다.

그러나 1505년 포르투갈의 침략에 이어 1602년부터 네덜란드 식민통치를 겪으면서 ‘비극의 역사’는 시작됐다. 네덜란드는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싱할족과 타밀족을 분리지배 하는데 이러한 지배방법은 결국 민족 간 이질감을 심화시키고 말았다.

이후 스리랑카는 1815년부터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게 됐다. 영국은 네덜란드와 달리 분리지배 대신 통합지배를 택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는 시점에서 싱할라족이 100만명의 타밀족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자 양대 민족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이 두 민족의 갈등은 1956년 스리랑카 자유당(SLFP)이 집권하면서 시작됐다. 자유당은 싱할라어를 유일한 공식 언어로 선포하고 싱할라족의 지배 종교인 불교를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이를 지켜보던 타밀족의 불만이 표출되며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접경지역에서 여러 건의 충돌이 발생했다.

양쪽의 충돌은 잠잠하다 1970년대에 다시 발생했고, 1983년 7월 유혈사태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1983년 7월 타밀족의 강경파 조직이 북부 자프나에서 정부군을 습격해 싱할라족 병사 13명을 살해하자, 싱할족은 즉각 보복전을 전개하며 3000여명에 달하는 타밀족을 살해하고 타밀족이 거주하던 2만 채의 가옥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약 30년 동안의 충돌로 타밀족이 거주하는 북쪽과 동쪽 지역들은 낙후됐으며 타밀족 구성원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무력투쟁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1994년 찬트리카 쿠마라퉁가가 대통령이 된 뒤 협상을 재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타밀족 반군단체였던 ‘타밀엘람해방호랑이 부대’는 정부군이 북부 지역을 재탈환하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싱할라족이 거주하는 도시 곳곳에 테러공격을 감행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타밀족은 수만명 이상이 살해되고 수십만명이 강제수용소에 갇히거나 터전을 잃어버렸다. 또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은 많은 타밀족들은 도망치듯 인도 등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2002년 초에 휴전협정이 타결된 이후에 타밀 호랑이 부대와 동거정부가 협상을 재개했지만, 다음 해 결렬됐다. 2005~06년 협상과 투쟁이 교차한 뒤, 2007년 2월4일 마힌다 라자파크세 대통령은 대화 재개를 타밀 호랑이 부에게 제안했다. 결국 협상과 결렬이 반복되다 스리랑카 내전은 2009년 타밀족의 패배로 끝이 났다.

내전이 끝난 후에도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 패배 후 포로가 됐던 그들은 온갖 고문과 성폭력을 당한 뒤에야 풀려났으며 이후에도 감시 대상에 놓였다. 체포 및 납치 사례도 빈번했다.

2009년 5월 유엔은 내전 종결 직전에 최소 7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1983년 이래 27년 동안 양측 8만~1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EU 27개 회원국 외무장관회의에서는 스리랑카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범죄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여전히 불교도인 싱할족이 주도권을 잡고 있어 민족과 종교적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여전히 기독교 등 소수 종교에 대한 박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의 내전 위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는 “타밀족의 동향을 보면 국내적으로는 제도권 내 자치를 촉구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정치 및 군사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스리랑카 정부는 해외공관을 중심으로 타밀족의 조직 재건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타밀족이 불법적인 테러조직으로 변모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명, 조직화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조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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