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종교 얽힌 중동의 화약고
동예루살렘 두고 주권 다툼
최근까지 충돌해 긴장 여전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굵직한 이슈 중 분쟁과 전쟁은 단골손님이다. 그중 종교분쟁은 사상‧이념‧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양상을 보이곤 한다. 대표적인 종교분쟁으로 꼽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당사자인 소위 ‘이팔 분쟁’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개신교 등 굵직한 종교가 얽혀 성지를 놓고 다툼을 한 지 벌써 75년이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얽힌 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기획 연재를 통해 각국 종교분쟁을 조명하고 분쟁의 심각성을 재조명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75년간 분쟁해 오고 있는 대표적인 ‘중동의 화약고’다. 이-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한계를 보여주는 가운데 양측의 유혈 충돌은 반복되고 있다. 최근엔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 당시 점거한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충돌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9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테러 용의자를 체포한다는 명분으로 요르단강 서안지구 북부 제닌 난민촌에 병력을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측의 대규모 총격전이 펼쳐졌고 이 교전으로 팔레스타인인 6명이 숨지고 90여명이 다쳤다. 

서안지구의 긴장이 커지면서 이달 1일 이스라엘 병사가 이제 갓 걸음마를 뗀 팔레스타인 2살 아기를 총격범으로 오인해 사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민족-종교 간 갈등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내전이 잘 말해주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2000명이 드론과 함께 침입 공격한 서안지구 팔 인 도시 제닌에서 폭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2000명이 드론과 함께 침입 공격한 서안지구 팔 인 도시 제닌에서 폭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P/뉴시스)

◆아브라함 적자-서자의 악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분쟁하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인데, 크게 3가지로 물리적으로는 작은 땅을 나눠야 하는 영토문제, 유대인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과 아랍인 팔레스타인이 공존해야 하는 민족문제, 그리고 더 본질적인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상생 문제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아브라함은 정실 사라로부터 이삭을, 사라의 몸종이자 첩인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을 각각 얻게 된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적자 이삭을 구박하는 것을 본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낼 것을 요구한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받아들여 하갈 모자를 쫓아낸다. 이후 이스마엘 후손은 아랍인과 이슬람교의 시조가 되고 이삭의 후손은 유대인과 유대교 나아가 기독교의 시조가 된다.

아브라함 두 아들이 다른 종교, 다른 민족의 시조가 됨으로써 수천 년에 걸친 이슬람-유대교‧기독교 간 종교분쟁과 아랍인-유대인 민족 대립이 초래됐고 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뿌리가 됐다.

유대인이 가나안 지역에 나라를 건설한 시기는 모세가 유대인을 이끌고 이집트(애굽)을 탈출한 BC 13세기경이다. 그로부터 1400년간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지배했지만, 이후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AD 135년 로마제국의 강제이주계획이 실시된다. 유대인은 가나안 땅에서 추방돼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된다. 

당시 유대인은 결사적인 민족해방투쟁에 나섰는데 당시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며 유대인에게 철천지 원수였던 ‘블레셋’의 이름을 따 그들의 땅을 ‘팔레스타인’으로 부르게 했다. 유대·가나안으로 불렸던 땅을 팔레스타인으로 부르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모욕이었다. 유대인이 추방된 AD 1세기 이후 가나안 땅은 십자군 전쟁으로 잠시 점령당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팔레스타인이 지배했다.

◆ 이-팔 분쟁의 원인은

영토 문제가 발단이 된 건 이스라엘이 1948년 팔레스타인 영토에 국가를 수립하면서부터다. 19세기 이후 유대인들은 고국인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목표로 이른바 ‘시오니즘 운동’을 선포했다. 이 운동으로 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영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아랍인들에게는 1915년 1월~1916년 3월까지 무려 10차례나 약속을 했고, 유대인에게는 1917년 11월 발포어 외무장관의 명의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했다. 

한 지역에 두 개의 정부수립을 약속한 영국의 이율배반적 태도는 바로 ‘전쟁의 불씨’가 됐다. 

1947년부터 1973년까지 결국 영토를 둘러싸고 네 차례의 중동전쟁이 있게 된다. 이 전쟁으로 1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고, 이들은 레바논에 유입됐다. 팔레스타인 거주민과 유대인의 대립이 격렬해지자 모든 문제의 책임자인 영국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UN에 떠넘겼고 이에 따라 11개 국가로 구성된 ‘UN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 Special Committee on Palestine; UNSCOP)’가 설치됐다. 1947년 11월 29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분할시켰다. 유대인들은 이를 기꺼이 수락한 반면 아랍 측은 거부했다.

마침내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다비드 벤구리온’을 수상으로 하는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아랍국가와의 전쟁에서 모두 일방적으로 승리함으로써 본토의 무려 5배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을 점령하게 됐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심에는 영토분쟁과 더불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3대 성지가 결집된 ‘동예루살렘의 주권 다툼’이 자리하고 있다. 동예루살렘에 대해 UN은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동시에 ‘동예루살렘은 국제 관할 아래 둔다’고 결의했으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차지해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수반이 지난 5월 14일 가자지구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의회에서 미국대사관의 이스라엘 이전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그는 7월 19일 이스라엘 국회가 아랍계 주민들을 무시한 채 "유대인민족국가"를 선포하는 법을 통과시킨 데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출처: 뉴시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수반이 지난 5월 14일 가자지구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의회에서 미국대사관의 이스라엘 이전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그는 7월 19일 이스라엘 국회가 아랍계 주민들을 무시한 채 "유대인민족국가"를 선포하는 법을 통과시킨 데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출처: 뉴시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종교가 중심인 나라지만, 70년 이상 지속된 분쟁 역사에서 그들의 신이 말한 ‘평화’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양측 모두 민족과 종교가 다르다는 사실을 명분 삼아 서로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노력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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