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 후
70여년간 ‘카슈미르 쟁탈전’
양측 사망자 4만 1970명 달해
전쟁으로 35만명 난민 발생

지난해 12월 28일(현지시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인도 군인들이 잠무-스리나가르 간 고속도로 총격전 현장을 수색하고 있다. 경찰은 군인들이 잠무 외곽 고속도로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 트럭 한 대를 검문할 때 트럭 내부에서 총격이 시작돼 대응 사격을 하는 과정에서 무장 용의자 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출처: 뉴시스)
지난해 12월 28일(현지시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인도 군인들이 잠무-스리나가르 간 고속도로 총격전 현장을 수색하고 있다. 경찰은 군인들이 잠무 외곽 고속도로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 트럭 한 대를 검문할 때 트럭 내부에서 총격이 시작돼 대응 사격을 하는 과정에서 무장 용의자 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지역 간의 종교적 갈등에서 기인한 대표적인 분쟁 중 하나는 ‘카슈미르 분쟁’이다. 카슈미르 분쟁은 1947년 8월 영국령 인도아대륙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독립될 당시 카슈미르의 귀속이 확정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쇠락하면서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하게 된다. 당시 인도지역이었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무굴제국으로 통합돼 있었지만 종족, 언어, 종교가 달랐기 때문에 한 나라가 아닌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나뉘어 독립하게 된다. 북서부는 무슬림을 믿는 파키스탄령으로, 남동부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령으로 분리·독립된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직접 통치하에 있던 몇 개의 토후국의 편입을 두고 인도와 파키스탄 간 시비가 불거진다. 그 중 하나가 카슈미르다.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북동부, 중국 서부에서 접경하는 지역인 카슈미르는 어느 곳으로 편입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1941년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당시 카슈미르 지역 인구의 77%는 무슬림이었고, 20%는 힌두교도였으며, 3%는 불교 혹은 시크교 신자였다고 한다. 이에 국민 대부분은 무슬림을 믿는 파키스탄에 속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힌두교인인 카슈미르 영주(지도자)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 편입하기를 원했고, 일방적으로 인도 편입을 결정하면서 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이슬람-힌두교도들 충돌 반복

카슈미르는 면적 22만여㎢로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의 산악지대다. 현재 인도, 파키스탄, 중국의 세 나라에 의해 분할 통치되고 있다. 2020년 기준 인구 전체는 2000여만명(인도령 1400여만명, 파키스탄령 600여만명)이 살고 있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이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이슬람교(IS) 종교인들이 테러를 일으키고 파키스탄 이슬람교도들이 이를 지원한다고 생각해 보복공격을 하며 전쟁을 벌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행사할 목적으로 이러한 카슈미르의 무슬림교도와 힌두교도들의 충돌을 배후 지원하면서 세 번의 전쟁을 치렀다. 1970년대부터 매년 충돌이 반복되면서 1989~2003년까지 양측 사망자는 4만 1970명이며, 난민은 35만명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21년 2월 25일 양국은 2003년의 정전 협정을 준수하기로 합의했으며, 이후 2022년 6월 기준 동 지역을 둘러싼 인·파 간의 갈등은 외교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한편 카슈미르 분리주의 무장조직과 인도 보안군·경찰 간의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2022년 2월 카슈미르 내 폭력의 정도는 2021년 대비 61%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3번의 전쟁… 현재도 보복전 자행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1947년 10월 파키스탄 북서부의 파탄족 무장 부족세력을 주축으로 한 파키스탄 병력이 카슈미르 주도 스리나가를 침공하면서 시작된다.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세력이 수도를 점령하려고 했고, 카슈미르 영주인 마자하리 싱이 인도에 지원 요청을 하며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인도는 지원을 해주는 조건으로 카슈미르의 인도 병합과 비종파 정당인 카슈미르국민연맹의 지도자인 셰이크 압둘라의 인정을 원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인도는 카슈미르에 파병을 결정했고, 전쟁은 파키스탄과 인도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동 전쟁은 유엔의 중재로 종결됐는데, 1년여의 휴전협상을 거쳐 1949년 7월 카슈미르는 북서부의 파키스탄령(아자드카슈미르)과 남동부의 인도령(잠무카슈미르)으로 분단된다. 그러나 이는 잠정적인 합의에 불과한 것으로 카슈미르의 귀속이나 법적 지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1963년 인도 총리 네루의 서거 이후 정국 혼란을 틈탄 파키스탄은 인도 점령지에 대한 게릴라전을 통해 카슈미르를 국제 문제로 비화(인도몰이 정책)시키려 함에 따라 1965년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인도의 우세로 종전, 소련(현재 러시아)의 중재로 타시켄트 협정이 체결됐다.

이후 1970년 동서 파키스탄의 분열로 25만명의 피난민이 인도로 유입되자 인도가 개입하면서 제3차 인도-파키스탄 간의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의 결과는 인도의 승리로 끝나며 방글라데시의 독립이 승인됐고, 1972년 심라 협정이 체결됐다.

카슈미르 분쟁은 종교 분쟁에서 출발해 인도-파키스탄, 인도-중국 간의 영토 분쟁 및 패권 다툼으로 번졌으며 미국, 러시아가 개입하며 국제 분쟁화됐다. 1980년 이후 인도 점령의 잠무 카슈미르 지역의 분리독립운동으로 내전의 성격이 가미됐고,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가 핵 보유를 선언한 뒤 현재까지 긴장과 이완의 관계를 되풀이하며 대표적인 분쟁 지역으로 고착화됐다.

파키스탄 간 카슈미르 국경 충돌은 대부분 정규군간의 교전이기 때문에 교전수위 및 범위가 조절되는 편이지만, 양측이 지원하는 무장집단 또는 정규군에 의한 폭동·테러나 게릴라전이 빈발하게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한 보복전이 자행되고 있다. 단순히 영토싸움이라면 충분한 대화나 협정으로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종교의 문제도 있어 평화적인 해결 전망은 어두워 보인다는 시각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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