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강대국 지배 받아
19세기 영소 등 열강 각축전
무슬림 조직 무자헤딘 결성

소련 철수 후 이슬람권 대립
지속되는 내전에 연쇄 테러도
탈레반 재장악으로 인권 후퇴

 

이슬람 무장조직인 탈레반이 다시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중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아프가니스탄 분쟁 양상은 국내적으로는 급진적 이슬람원리주의 반정부 세력(탈레반)과 온건 이슬람의 정부 세력 간의 대결 형식을 띠고 있는 한편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다. (출처:A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인 탈레반이 다시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중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아프가니스탄 분쟁 양상은 국내적으로는 급진적 이슬람원리주의 반정부 세력(탈레반)과 온건 이슬람의 정부 세력 간의 대결 형식을 띠고 있는 한편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다. (출처:AP/연합뉴스)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굵직한 이슈 중 분쟁과 전쟁은 단골손님이다. 그중 종교분쟁은 사상‧이념‧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양상을 보이곤 한다. 대표적인 종교분쟁으로 꼽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당사자인 소위 ‘이팔 분쟁’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개신교 등 굵직한 종교가 얽혀 성지를 놓고 다툼을 한 지 벌써 75년이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얽힌 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기획 연재를 통해 각국 종교분쟁을 조명하고 분쟁의 심각성을 재조명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주목받는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아프가니스탄 분쟁 양상은 국내적으로는 급진적 이슬람원리주의 반정부 세력(탈레반) 대 온건 이슬람의 정부 세력 간의 대결 형식을 띠고 있는 한편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다.

분쟁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G)는 ‘2022년 주목해야 할 10대 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꼽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21년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카불 입성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가난, 갈등, 분쟁, 테러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서방의 제재로 식량 보건서비스 등은 한없이 부족하고, 인권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다. 특히 ‘샤리아법(이슬람율법)’에 기반한 통치이념에 따라 여성 권리는 사실상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다.

탈레반이 국가를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분쟁을 피해 고향을 등진 피란민이 350만명이나 되며 식량 지원 등이 필요한 인구도 2400만명에 이른다. 이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발생한 우크라이나 국내 피란민 700만명보다 80만명 이상 많은 수치다.

◆ 동서 문화 교차로이자 수난의 땅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족의 땅’이란 뜻이며 고대의 아프간은 실크로드가 거쳐가는 동서 문화의 교차로였다. 이런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아프간 땅은 칭기즈칸의 몽골족, 인도 무굴 제국, 페르시아 사파위 제국 등 강대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BC 400년경 페르시아가 지배했고, 이후에도 알렉산더의 침공을 시작으로 스키타이, 훈족, 터키족의 침입이 이어졌다. 그러다 AD 1세기에 쿠샨 왕조가 수립됐고,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가로질러 실크로드가 건설됐다. AD 628년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이슬람교가 전파됐고, 1219년 칭기즈칸의 몽골이 100여년간 통치하게 된다, 14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에 이어 16세기 인도 무굴제국이 건설된다.

그러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영국으로부터 점령당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1973년 좌익 파르캄당이 지원한 아프간의 군사혁명으로 군주제를 끝내고 공화정을 시작했으나, 수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1979년에는 소련이 좌익 정권을 지원한단 명목으로 아프간을 침공, 10년간 점령하게 된다. 이때 반 소련을 외치며 무슬림 게릴라 조직인 ‘무자헤딘’이 결성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을 감행한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 역시 이 시기에 결성된 무자헤딘의 일원이었다. 무자헤딘은 미국, 이란 등 서방과 이슬람권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소련군에 대해 게릴라전을 전개했고, 아프간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1992년 4월 소련군이 완전 철수하자 반군 세력이 모하마드 나지불라 대통령의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14년에 걸친 아프간 전쟁은 끝났다. 14년간의 전쟁 동안 200만명의 사망자 5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전쟁 끝 겹친 이슬람권 분쟁

전쟁이 끝나도 평화는 요원했다. 특히 미군 철수를 앞두고 종파분쟁까지 겹치며 아프간을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소련 해체 이후 아프간은 종족과 종파에 따라 나뉜 여러 게릴라 세력간의 내전이 계속됐다. 아프간에서 다수 민족은 파슈툰족으로 이슬람 수니파다. 반면 이슬람 시아파는 소수인데, 인구의 20% 정도로 추정되고, 주로 타지크와 하자라족이다.

내전 시작 이후 민간인을 타깃으로 한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일례로 지난 2011년 아프간 수도 카불 이슬람 사원에서 시아파 무슬림을 노린 최대 규모의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 아이들을 포함해 56명이 사망하고 160명 이상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테러는 탈레반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추측됐다. 탈레반은 “테러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냈지만, 수니파 무슬림이 대다수인 탈레반이 반대 종파인 시아파 무슬림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심의 시각이 적지 않았다.

아프간의 종파 분쟁에는 외세도 개입하며 복잡하게 얽혀들어갔다. 이란은 시아파를, 파키스탄은 수니파를 지원하며 아프간에서 영향력을 키우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의 영향력 행사를 견제하기 위해 각기 아프간의 특정 정파들을 지원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탈레반이었다. 탈레반은 1994년 출범한 ‘이슬람 학생의 조직’이라는 뜻의 이슬람 조직으로, 소련 침공 이후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탈레반은 ‘물라’(스승)의 칭호를 얻은 무하마드 오마르가 최고지도자로 부상한 이듬해 남부 지방을 장악해 세력을 키운 뒤 1996년엔 카불을 점령하고 탈레반 정권을 수립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샤리아법에 근거한 통치이념을 내세우며 극단적 원리주의를 강조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을 잣대로 여성과 주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2001년 3월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최대의 바미안 석불을 느닷없이 파괴해 전세계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탈레반 정권은 9.11 테러의 배후였던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미국과 20년 전쟁을 벌이게 된다. 미국의 공격에 탈레반은 산악지역으로 도피하며 위축됐다. 이를 계기로 아프간에는 친서방 정부가 세워지게 된다.

2021년 8월 미국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되지만 이는 아프간을 또 다른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은 무력으로 카불을 점령하고 재집권을 선포했다. 정권에 복귀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에 근거한 통치를 선언하면서 아프간의 정치 상황은 회귀했다.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기독교 등 소수종교에 대한 탄압도 심각하다. 2022년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박해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오픈도어는 “탈레반은 정권을 장악한 뒤 많은 기독교인을 처형했다”며 “이라크와 시리아 등 주변국으로 피신해도 기독교인들은 보호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탈레반은 과도정부를 내세우고 있지만, 국내적으로 통치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분쟁이 지속됐다. 아프간은 탈레반에 의해 전 정권 관련 인사들에 대한 보복을 포함한 민간인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 한편, 다른 쪽에서는 탈레반에 반대하는 무장집단들이 북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알카에다의 경쟁조직인 IS-K의 탈레반 공격 및 탈레반 내부 조직 간의 경쟁과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서 분쟁의 대립구도가 매우 복잡하게 얽힌 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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