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무슬림 국가와 전쟁 벌여
직간접적인 인명피해 100만명
전쟁비용 2000억원 달러 소비
무슬림 국가 근거지로 떠올라
소수 종교인 살해 등 박해도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굵직한 이슈 중 분쟁과 전쟁은 단골손님이다. 그중 종교분쟁은 사상‧이념‧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양상을 보이곤 한다. 대표적인 종교분쟁으로 꼽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당사자인 소위 ‘이팔 분쟁’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개신교 등 굵직한 종교가 얽혀 성지를 놓고 다툼을 한 지 벌써 75년이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얽힌 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기획 연재를 통해 각국 종교분쟁을 조명하고 분쟁의 심각성을 재조명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2014년 7월 27일 이슬람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파괴된 시아파의 사원을 주민들이 바라보는 모습(왼쪽).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가 2015년 6월 5일 수니파 무장조직 대원 4명을 체포한 모습. (출처: 뉴시스)
2014년 7월 27일 이슬람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파괴된 시아파의 사원을 주민들이 바라보는 모습(왼쪽).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가 2015년 6월 5일 수니파 무장조직 대원 4명을 체포한 모습.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가 선조로 삼는 아브라함의 태생지가 있는 이라크. 이라크는 한때 중동에서 가장 많은 종교와 민족이 공존한다고 해서 ‘문화와 종교의 용광로’라고 불렸다. 그러나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세력을 확장, 2014년에는 무장단체 알카에다보다 더욱 극단적인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면서 이 말은 옛말이 됐다.

2002년 140만명에 달했던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은 극단주의 단체의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졌고, 2019년 25만명 아래로 줄어들었다. 종교 화합의 현장이었던 이라크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동안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민족·지리·종교적 관계로 분쟁

이라크는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면서 193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영국에서 독립하기 전 이라크 지역은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렸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에는 수메르 신화, 아카드 신화, 아시리아 신화, 바빌로니아 신화 같은 토착신앙이 주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을 때는 페르시아인의 영향을 받아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러다가 이라크와 이란 모두 이슬람제국에 정복되면서 두 나라 모두 이슬람교가 주류 종교가 됐다.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사회구성원들은 환호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독립에 사회적 분열은 가중됐다. 서아시아 지역의 경우 석유와 영토, 종교 때문에 많은 분쟁이 일어나는 곳이어서 이라크는 지속적인 쿠데타와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무슬림국가인 이라크는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과도 싸웠지만, 같은 무슬국가와도 전쟁을 했다.

◆이란과 8년간 소모적 전투 지속

이라크가 벌인 대표적인 전쟁이 이란-이라크 전쟁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배경은 민족과 종교의 차이였다. 이란은 페르시아인이, 이라크는 아랍인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게다가 이란과 이라크는 둘 다 이슬람교 국가지만 서로 다른 교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두 나라 사이에 있는 샤트알아랍강 때문이다. 이 강은 석유를 실은 배들이 드나드는 페르시아만과 연결돼 있어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이란과 이라크는 이 강의 소유권을 놓고 1930년대부터 다퉜다.

1975년 이란과 이라크는 알제리의 수도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회담에서 영토 문제에 대한 국경 협정인 알제협정을 맺었다. 이 협상을 통해 이란은 이라크 안의 쿠르드족을 지원하지 않고, 이라크는 샤트알아랍강의 가장 깊은 곳을 중심으로 국경을 나누기로 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알제협정을 맺은 후에도 샤트알아랍강을 다시 온전히 차지할 기회를 엿봤다. 알제협정은 당시 이라크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란에게 유리하게 맺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1979년 사담 후세인이라는 사람이 이라크의 대통령으로 당선,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키웠다. 같은 해 이란에서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라는 사람이 이슬람혁명 정부를 세웠다. 호메이니는 미국과 관계를 끊고 이슬람국가들의 혁명을 추진했다.

그러자 미국은 서아시아에서 이슬람혁명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란에 대한 원조를 끊어냈다. 그리고 1980년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은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이란을 공격했다. 일방적으로 알제협정을 깨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랜 세월 서로 사이가 좋지 않던 두 민족은 결국 종교적 이념 강화, 경제적 이익, 미국의 개입 등 여러 요인으로 1980~1988년까지 전쟁을 치렀다. 양국은 밀고 밀리는 소모적 전투를 지속했다.

1988년 8월, 이란-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도움을 받은 이라크의 승리로 끝났다. 공히 국내사정의 악화, 장기적 소모전에 따른 경제의 피폐, 국제적 압력의 가중 등으로 1988년 8월 20일 휴전협정을 성립시킴으로써 약 7년 11개월간의 전쟁을 종결했다. 전쟁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인명피해는 100만명에 달한다. 직접적인 전쟁비용으로 양측은 2000억원 달러를 소비했고, 간접적인 전쟁비용으로는 1조 달러를 허비했다.

◆수니파-시아파-기독교 종교 분쟁

2003년에는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내의 수니파 무슬교도와 시아파 무슬교도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란과 이라크의 종교 분쟁은 심화됐다. 같은 해 미국의 군사 개입이 시작된 이후 한때 약 150만명이었던 이라크 기독교인은 계속 줄어들면서 현재는 20만명 미만이 됐다.

현재 이라크 신앙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이 중 시아파가 64%, 수니파가 30%다. 그 외 기타 종교는 3% 미만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북부는 수니파, 남부는 시아파가 다수며 사이사이 칼데아 가톨릭 등의 기독교인들이 섞여 있다.

이라크는 지난 10년 동안 이슬람국가 근거지로 부상하면서 이라크 내 수천명의 소수 종교인은 살해되거나 노예가 되거나 고국을 떠나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전 세계 기독교 박해 감시 단체인 오픈도어가 발표하는 기독교 박해국가순위에서 이라크는 지난해 14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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