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무려 서른 세 번의 섬세한 손길과 정성을 거치는 복잡한 공정으로 완성되는 갈골한과. 명인 최봉석 선생은 강원도의 질좋은 국산 농산물만을 사용해 선별, 세척, 제조해 만든다. 그 과정을 사진으로 알아보자.. (사진제공: 강릉갈골산과)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한과류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제수로 菓(과자)를 쓴다고 나와 있고,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납폐 품목으로 쌀, 술, 기름, 장, 시(콩자반)와 함께 한과류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문헌에 의해 확인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문헌에 ‘충렬왕 8년 왕이 충청도에 행차했을 때 도중 유밀과(油蜜果)의 봉정을 금했다’고 나와 있다. 이를 보아 왕 행차 때는 각 고을이나 사원 등에서 유밀과를 진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이처럼 천년 이상을 이어져 온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과자를 과정류라 하여 외래과자와 구별했다. 과정류란 곡물에 꿀을 섞어 만든 것으로 농경문화의 진전에 따른 곡물 산출의 증가와 숭불사조에서 오는 육식의 기피 사조를 배경으로 개발돼 제례, 혼례, 연회 등에 필수적으로 오르는 음식이다.한과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여러 가지 곡식의 가루를 반죽해 기름에 지지거나 튀기는 ‘유밀과’ ▲가루 재료를 꿀이나 조청으로 반죽해 다식판에 박아낸 ‘다식’ ▲익힌 과일이나 뿌리 등의 재료를 조청이나 꿀에 조려 만든 ‘정과’ ▲과일을 삶아 굳힌
대량생산 위해 기계화로 잠시 외도, 맛이 달라 접어“우리 전통의 맛 알리는 게 더 중요”7대째 가업 이어온 제조방법 계승[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지역 한과마을. 점차 서구화되는 우리 음식문화 속에서도 7대째 가업으로 내려오는 한과를 오로지 옛 방식 그대로 재현하며 우리네 전통의 맛을 지켜나가고 있는 명인 최봉석(65, 강릉갈골산자) 선생을 만나봤다.최봉석 선생은 ‘식품분야 무형문화재’ 격인 ‘명인제도’의 한과분야에서는 최초로 2000년도에 전통식품 명인(제23호)으로 지정됐다. 그리고 2013년 4월 1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문화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칠기 문화는 중국에서 한국, 일본까지 전해지면서 동양의 독특한 공예문화로 자리 잡았다.칠기는 옻칠한 기물의 마감(혹은 장식) 방법에 따라 나전칠기, 채화칠기 등으로 나뉜다. 이 중 ‘나전칠기’는 옻칠한 그릇이나 가구 표면에 백색의 야광패(夜光貝)나 오색의 전복조개 등의 껍질을 다양한 문양으로 박아 넣어 장식한 칠기다.나전은 소라 라(螺), 비녀 전(鈿)을 쓴다. 나전이라는 말은 한국ㆍ중국ㆍ일본에서 공통으로 쓰는 한자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자개’라는
손재주 남달라 어려서부터 생활용품 직접 만들어무역회사 근무 중 칠공방서 본 작품에 마음 뺏겨민종태 선생 스승으로 모시려 현대판 ‘삼고초려’성실함 인정받고 전통옻칠 배우며 독립 준비해[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조개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나며 겪은 인고의 산물로 우리에게 진주를 선사한다. 이 진주는 아름다움 속에 아픔과 고통의 눈물을 담고 있어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동양에서는 이 오색찬란한 조개껍데기를 사용해 칠기를 장식했다. 영롱함과 오묘한 기품이 흐르는 ‘나전칠기’는 세계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이 나
신라 진평왕, 하늘로부터 받은 옥대 벽사( 邪)의 기능 가진 신기(神器) 권위와 신분 상징하는 최고의 보물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중국 후한(後漢)의 설문해자(設文解字)에는 옥(玉)을 ‘아름다운 돌’이라고 말하고 있다. 옥을 활용하기 시작한 근원지는 본래 중국에서부터다. 신석기시대부터 돌도끼, 팔찌, 목걸이 등 실용품으로 쓰이기 시작한 옥은 의례용, 제사용으로 사용했다. 명청(明凊시대에 옥기는 갖가지 색채의 재질이 사용돼 궁정이나 대가(大家)에서 쓰는 향로나 서재의 문방구로 만들어졌으며 청 건륭(乾隆) 때 그 쓰임이 최고조에 달했
어려운 살림 도우려 열여섯에 옥공방 입문 韓 최고 옥장인 꿈꾸며 홀로 공장 세워 스스로 공구 만들며 기능 연마해 향로 제작 한국적 멋 찾으려 밤잠 설치며 도안 연구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옥(玉)은 놓고 보는 것만으로도 기품 있고 아름답습니다.” 과거 중국에서부터 한국, 일본으로 이어진 옥 문화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다. 왕실과 신분 높은 귀족만 사용할 수 있었던 옥은 금이 보석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최고의 보물로 여겨져 왔다. 이에 옥을 가공해 기물을 만들던 장인들은 나라에서 직접 지명하고 엄격하
전통주 맛 결정하는 일등공신‘ 누룩’ 쌀·녹두 등 곡류로 발효균 번식 맛·향·영양 뛰어나 가치 높아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라.” 춘향가 중 ‘주반등대’ 대목에는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졌던 술 이름만 십여 종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등장하는 우리 술은 종류만도 360여 종에 이른다. 이 술들은 다 무엇으로 빚을까. 전통주의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근본이 되는 재료는 하나, 바로 누룩이다. 우리 땅에서 만들어진 누룩은 발효과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특히 왕실에서 만들던 궁중술의 주재료인 향온국은 과학
전통 궁중 녹두누룩 제조법 찾아 10여 년간 녹두 100가마니 사용 부드러움·향 월등, 해외서 극찬 일본서 누룩 교환하자며 요청도 ‘정도 600년’ 서울 문화재 지정 “후대 전승 사업, 정부서 도와야”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이 마시고 또 신하에게 하사하던 술이 있다. 이 술은 철저하게 법으로 보호해 빚어졌고 문헌에조차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인현왕후의 외가를 통해 내려온 술이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발굴되면서 문화재로 지정받게 됐다. 지난달 22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9호 박현숙 명
고온서 천일염 뿌려 재 입히는 소성 방법 통기성·저장성 뛰어나 실생활 활용도↑ 궁중 불교행사서 음식 만들 때 사용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옹기’라는 말을 듣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유약을 발라 구워 윤이 나는 장독과 같은 ‘오지그릇’과 투박한 멋을 내는 ‘질그릇’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도자기 역사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도자 종류 중 질그릇, 오지그릇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푸레도기’다. 푸레도기의 푸레는 ‘푸르스름하다’의 순우리말이다. 소성 방법의 차이로 도기가 푸르스름한 잿빛을 띠고 있어 ‘푸레도기’로
미국 현지서 최초 한국식 전통 가마 선보여 도자기술 우수성 알린 숨은 ‘한류’ 주역 ‘1977년 납 파동’ 사라질 위기의 옹기문화 5년간 외로이 법정 투쟁 벌여 지켜내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요즘은 옹기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플라스틱 같은 합성수지 제품이 넘쳐나지 않습니까. 하지만 자연 재료로 만든 옹기는 숨을 쉬는 그릇이라 근본부터 다르지요.” 10여 년의 연구 끝에 8.15 광복 후 사라졌던 푸레도기을 재현한 서울 무형문화재 제30호 배요섭(86) 옹기장. 고령의 나이에도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푸레도기를 시연하며 옹
“문화재 단오굿, 예술적인 측면 많아”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우리에게 무당은 어떤 존재로 다가올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무당은 무서우면서도 약간은 천박한 직업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중요무형문화재(제13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를 통해 선보여지는 20여 개의 단오굿은 대중에게 무당을 친근하게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 막을 내린 강릉단오제에는 15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해 1천년의 역사를 가진 강릉단오제를 즐겼고,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는 흥겨운 가락소리를
1. 화살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한다. 화살대는 대나무밭에서 베어낸 2년생의 생나무를 약 한 달간 말려 사용한다. 2. 숯불을 피운 대잡이통에 살대를 넣고 갈색으로 구운 뒤 졸대로 화살을 곧게 펴서 교정한다. 3. 위아래의 끝단을 조금씩 깎아서 부레풀칠을 한다. 이는 소심줄을 감았을 때 살대보다 튀어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4. 젖은 소심줄로 감은 뒤 말린다. 이는 오늬와 촉이 끼워질 때 감아서 쪼개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5. 아랫부분에는 칼로 속을 파내 얇은 대나무 관을 만든 뒤 상사를 끼운다. 이때 상사가 너무 두터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보유자스무 살부터 전통화살 제작 외길인생 국내 유일 궁시박물관 운영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활을 가까이 했고, 특히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민족이었다. 중국은 우리를 일컬어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렀을 정도로 두려워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부터 태조 이성계, 이순신 장군에 이르기까지 그 피를 이어받은 한민족은 백발백중하기로 소문났다. 무소뿔과 소 힘줄로 만든 각궁(角弓)은 탄력이 워낙 좋아 화살을 300~400m까지 날려 보내는데, 이는 우리나라 외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 수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서울 성북구 석관1동 두산아파트 어느 한 집, 거실 사방에 각종 다양한 민화가 들어있는 액자의 모습이 먼저 한눈에 들어온다. 성공 및 출세를 기원하는 의미로 잉어가 바다에서 펄쩍 뛰어오르는 그림, 부귀영화의 의미가 담긴 모란꽃, 액운을 막는 벽사 그림, 부부의 화목을 담은 한 쌍의 학 그림 등이 흥미를 유발한다. 민화 외에도 해방이후부터 1960~1970년대 시절의 모습이 담긴 풍속화까지, 문에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럽게 시선을 끈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8호 민화장 김만희(81) 선생의 자그마한 작업실인 동시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8호 사라질 뻔한 조선민속화 되살린 민화 안정된 교직생활 버리고 새로운 길 걸어 한 눈이 실명됐어도 작품생활은 ‘계속’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서울 성북구 석관1동 두산아파트 어느 한 집, 거실 사방에 각종 다양한 민화가 들어있는 액자의 모습이 먼저 한눈에 들어온다. 성공 및 출세를 기원하는 의미로 잉어가 바다에서 펄쩍 뛰어오르는 그림, 부귀영화의 의미가 담긴 모란꽃, 액운을 막는 벽사 그림, 부부의 화목을 담은 한 쌍의 학 그림 등이 흥미를 유발한다. 민화 외에도 해방이후부터 1960~1970년대 시절의 모습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채화칠장 보유자채화칠기, 백제시대 때 일본에 전파 나전칠기에 밀리고 ‘맥’ 끊겨 “잊혀졌던 우리 것 되찾으려 노력” 50년 경력… 채화칠계의 대들보 옻, 세월 지날수록 빛·색 수려해져 “영구 보존 가능한 특성 널리 알려야”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유화는 노출되거나 물이 묻으면 금방 지워지지만, 칠화는 영구적입니다. 바로 오래 저장해도 변하지 않는 옻의 성질을 이용하기 때문이지요.” 옻의 성질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던 채화칠공예 문화를 회복하고 후손에게 이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10대 때 줄을 배웠고 20대 때 줄 위를 날아다니고 30대 때 줄을 탄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았다. 40대 중반인 지 금 누 군 가 가 줄을 탄다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 온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여전히 줄을 탄다는 것은 안개 속을 걷는 것같다. 다만 내가 줄을 타고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을 외줄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9살부터 줄을 타기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줄타기 명맥의 원천이 된 김대균(46)씨. 어릴 적 한국민속촌에서 고 김영철 선생을 모시면서 공연을 시작해 현재는 후학양성을 위해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활시위를 거는 과정을 흔히 ‘활을 넣는다’고 표현한다. 각궁은 평소 사용하지 않을 때는 활시위를 빼고 보관해 둬야 하는데, 만약 활시위를 건 채 그대로 놔두면 탄력이 죽거나 자칫 활이 부러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주 사용하더라도 종종 이런 활 넣기 과정을 거쳐야 탄력이 아주 좋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각궁은 기본 300~400m는 거뜬히 날아가며, 최대 500m까지도 날아간다. 궁장 권무석 선생의 활 넣기 과정을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