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봉석 명인(갈골한과). (사진제공: 강릉갈골산자)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한과류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제수로 菓(과자)를 쓴다고 나와 있고,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납폐 품목으로 쌀, 술, 기름, 장, 시(콩자반)와 함께 한과류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헌에 의해 확인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문헌에 ‘충렬왕 8년 왕이 충청도에 행차했을 때 도중 유밀과(油蜜果)의 봉정을 금했다’고 나와 있다. 이를 보아 왕 행차 때는 각 고을이나 사원 등에서 유밀과를 진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천년 이상을 이어져 온 한과는 조선시대에 성행하기 시작한다. 왕실에서만 주로 이용되다가 하사와 진상품으로 양반사회에 자연스럽게 전해지면서 전국적으로 전파됐다.

강릉지방의 한과는 사천면 노동리의 음식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됐다. 1950년대까지 몇몇 집안에서 과줄을 만들어서 대소사나 명절에 사용했다. 그러나 만들기가 번거롭고 시장에서 사다 쓰는 집이 늘면서 한과제조가 잠시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부터 최봉석 명인가를 중심으로 기름이 귀한 시절에 모래과줄을 만들다가 점차 콩기름으로 튀기는 기름과줄로 전향되면서 고급스럽고 맛도 좋은 한과가 만들어져왔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내려오면서 명절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먹을 수 있는 전통음식으로 보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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