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기의 표면(왼쪽)은 잿물이나 유약을 입혀 윤이 나며 흑갈색을 띤다. 반면 푸레도기는 잿물을 입히지 않고 천일염을 뿌려 재를 입히는 소성 방법으로 검은색을 띠며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제공: 한미요배씨토가)

고온서 천일염 뿌려 재 입히는 소성 방법
통기성·저장성 뛰어나 실생활 활용도↑
궁중 불교행사서 음식 만들 때 사용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옹기’라는 말을 듣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유약을 발라 구워 윤이 나는 장독과 같은 ‘오지그릇’과 투박한 멋을 내는 ‘질그릇’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도자기 역사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도자 종류 중 질그릇, 오지그릇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푸레도기’다.

푸레도기의 푸레는 ‘푸르스름하다’의 순우리말이다. 소성 방법의 차이로 도기가 푸르스름한 잿빛을 띠고 있어 ‘푸레도기’로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해온다. 만드는 방법은 오지‧질그릇과 같다. 하지만 소성 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푸레도기는 유약이나 잿물을 입히지 않는다. 대신 구울 때 질그릇과 같이 그을음을 먹여 회색을 띠게 한다.

여기서 푸레도기는 질그릇과 달리 가마안 온도를 1300℃ 이상으로 올리고 천일염을 뿌려 나무 재를 기물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게 한다. 이때 기물이 막을 형성하게 된다.

이로 인해 유약이나 잿물을 바르지 않아도 방수 효과를 얻게 되며, 표면에 윤택이 난다. 또 천일염을 뿌린 후 가마 바깥벽에 물을 뿌리면 그을음(탄소)이 기물 안에 침투해 회색이던 표면이 검은색으로 변한다.

잘 구워진 푸레도기는 회색에서 검은색 계열로 표면이 덮어진 이후 녹색계열의 재유가 형성된 독이다. 이 녹색계열 재유가 검은색 바탕에 어우러져 표면이 약간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 옹기는 낮은 온도에서 기물에 그을음을 먹인다. 그러나 푸레도기는 고온에서 그을음을 먹이기 때문에 방수‧방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소성 중 물을 뿌려 강도가 높아져 다른 도기에 비해 쉽게 깨지지 않는다. 물 정화능력도 뛰어나 물맛이 좋아지며, 음식물을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옛 왕실에서는 저장‧발효 용기로 푸레도기를 사용했다. 조선시대 회화작품에는 당시 궁중에서 푸레도기를 사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에 제작된 명중조 궁중 ‘숭불도’는 궁중에서 행해지는 불교행사를 그린 그림이다. 이 승불도에는 행사에 쓸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마당에 늘어놓은 수십 개의 푸레도기와 푸레 자배기가 그려져 있다.

고려, 조선시대 절터‧성터 등 유적과 고분에서 출토되는 도기항아리에서도 푸레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관요(오늘날 공방)인 경기도 광주 번천리 9호 백자요지 공방터에서 궁중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푸레자배기가 출토됐다. 이 푸레자배기는 16세기 조선도기의 초기형태를 띠고 있다.

푸레도기는 장점도 많다. 자연 재료 그대로를 사용해 환경호르몬이나 중금속이 없는 무공해다. 사용 중 깨지더라도 성분자체가 자연 그대로이기에 환원성이 좋다. 소성 과정에서 재와 천일염이 도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음식물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 효과도 있다.

또한 1300℃ 고온에서 발생한 다량의 탄소가 침투해 안팎으로 공기를 통하게 해 음식을 잘 익게 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유산균 증식속도를 조절해 주며, 푸른곰팡이 계열 유산균이 잘 자란다.

우리 생활에 잘 어우러지는 자연미와 실용성을 갖춘 푸레도기. 집에 하나쯤 들여 사용해보면 푸르스름한 도기가 내뿜는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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