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명인 제23호

▲ 최봉석 명인 (사진제공: 강릉갈골산자)

대량생산 위해 기계화로 잠시 외도, 맛이 달라 접어
“우리 전통의 맛 알리는 게 더 중요”
7대째 가업 이어온 제조방법 계승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지역 한과마을. 점차 서구화되는 우리 음식문화 속에서도 7대째 가업으로 내려오는 한과를 오로지 옛 방식 그대로 재현하며 우리네 전통의 맛을 지켜나가고 있는 명인 최봉석(65, 강릉갈골산자) 선생을 만나봤다.

최봉석 선생은 ‘식품분야 무형문화재’ 격인 ‘명인제도’의 한과분야에서는 최초로 2000년도에 전통식품 명인(제23호)으로 지정됐다. 그리고 2013년 4월 1일 강원도무형문화재(갈골과줄 분야)로 지정됐다.

그는 강릉최씨 노동파 16대 장손으로, 집안은 현 집터에서 500여 년을 살아왔다. 최 선생의 집안이 한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6대조(최식)부터다. 그의 6대조가 부사시절 상류층과 교류하며 궁중음식 한과 제조방법을 익혔고, 1870년경 4대조(최광철)부터 이를 재현하면서 그대로 이어져왔다.

최 선생의 조모이자 강릉갈골한과 탄생의 원조격인 최창규 할머니가 작은댁 이원섭 할머니와 함께 본격적으로 과줄을 만들면서 주문진 등 주변에 내다판 것이 인기를 얻어 그의 집안은 갈골과줄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부업으로 꾸준히 한과 제조를 해오던 최 선생은 1989년 정부로부터 강릉 갈골한과가 강원도 최초이자 전국 2호로 전통식품 품질인증을 받게 되자 본격적으로 본업으로 뛰어들었다. ‘강릉갈골산자’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사업을 확장해 서울 등의 도시소비자들에게 그 맛을 전파해 다소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택배업이 전무했기에 그가 서울로 직접 운송을 했고, 대관령을 넘어가야 하는 등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새벽에 올라가면 밤에 내려오기 일쑤라 졸음운전으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한다.

특히 설과 추석 명절 대목에는 그야말로 주문이 쇄도했다. 전통 방법으로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한때 기계를 이용한 대량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유는 기계로 만들다 보니 입에다 넣으면 부드럽게 사르르 녹는 전통 고유의 맛이 안 났기 때문이다.

최 선생은 고심 끝에 이익을 내겠단 생각을 버리고, 우리 전통의 맛을 지키고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 다시 전통생산 방식을 택했다. 물론 시간 절약과 인력을 줄이기 위해 기술이 필요치 않는 일에만 기계를 쓴다.

현재 그의 아들 최형준(37) 씨가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함께 돕고 있다. 아들 최 씨는 삼성물산에서 7년 정도 근무하다가 사표를 내고 스스로 내려와 부모 일을 적극 돕고 있다.

어머니 김주희 씨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절대 안 물려주려고 했는데, 아들 최 씨 스스로 자처하고 나섰으니 어쩌겠나. 아들 최 씨도 처음부터 맡으려 한 건 아니다. 그 역시 ‘힘든데 이걸 왜하냐’며 안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운명이라 생각한 건지 소위 잘나가는 대기업 자리를 마다하고 내려온 것.

최봉석 선생은 “아들이 구매만 배웠기 때문에 살짝 목에 힘이 들어갔다”며 “몸을 낮추고 늘 밑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줌으로써 겸손함을 배우게 했다.

최 선생은 한과의 전통방식을 통해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외국인에게 가장 한국적인 전통 맛을 전한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다. 이에 그는 미국 등에 가서 판매 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는 “외국인에게 기계로 만들어져 변형된 맛이 아닌 전통기법을 이용한 제대로 된 우리 한과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자라나는 우리 아이나 학생들에게 전통한과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우리고유의 전통 식문화를 알려주고 보존 및 계승, 발전시킬 목적으로 한과체험전시관을 시의 지원을 받아 집 바로 옆에 건립했다. 전시관은 크게 전시실, 영상실, 체험학습실로 나뉘어져 있다.

전시실은 식생활 도구 및 음식 등 각종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어 전통 식문화의 전반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영상실은 우리 과줄문화와 갈골 한과마을에 관한 전반적 소개를 익힐 수 있도록 마련됐다. 그리고 체험학습실은 말 그대로 명인의 기법을 이용해 한과를 직접 만들어보는 공간이다.

그러나 사실 단체별로 많이 받지를 못해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는 건립할 때만 지원이 많이 나왔고, 후속관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서다. 재료에 대한 지원비가 일부 나오긴 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단체로 오기에는 공간이 협소하다. 40명 정도 밖에 받지 못하는 공간인데, 다른 도시에서 그 이상 온다고 연락이 와도 받지를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최 선생은 단체로 와도 학생들이 충분히 체험하며 즐길 수 있도록 대량 인원을 유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도록 지원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곧 최 선생이 원하는 건 우리 전통 식문화의 명맥을 알릴 수 있게끔 공직자들이 적극 나서달라는 거다.

아울러 외국인 관광객도 투어로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관광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뿐 더러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100년을 한곁같이 이어져 내려온 그 전통의 맛을 지키고 계승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전통기법을 고집하는 최봉석 명인. 그 명맥이 대대손손 쭉 이어져 좋은 결실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 한과 만들기 과정 중 찹쌀을 발효시키기 작업 중인 최봉석 명인 (사진제공: 강릉갈골산자)

◆최봉석 명인 약력

     
 
 
-강릉최씨 노동파 16대 장손
- 1990년 농형중앙회 공로패
- 1994년 강원도지사 표창
- 1996년 대한민국 ‘정부산업포장’ 수상
- 1999년 농어민대상 수상
- 2000년 전통식품 명인(제23호) 지정
- 2013년 4월 1일 강원도무형문화재(갈골과줄 분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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