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9호 박현숙 명인. ⓒ천지일보(뉴스천지)

전통 궁중 녹두누룩 제조법 찾아
10여 년간 녹두 100가마니 사용

부드러움·향 월등, 해외서 극찬
일본서 누룩 교환하자며 요청도

‘정도 600년’ 서울 문화재 지정
“후대 전승 사업, 정부서 도와야”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이 마시고 또 신하에게 하사하던 술이 있다. 이 술은 철저하게 법으로 보호해 빚어졌고 문헌에조차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인현왕후의 외가를 통해 내려온 술이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발굴되면서 문화재로 지정받게 됐다.

지난달 22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9호 박현숙 명인을 만나 그의 인생과 왕의 술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손맛 좋은 어머니 같은 그는 상에 밑술과 누룩, 고두밥을 정갈하게 차려두고 기자를 맞았다. 점심을 먹을 시간에 만난 터라 배고프지 않으냐며 기자를 걱정하는 모습은 꼭 끼니를 거른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처럼 정이 담뿍 담긴 모습이었다.

“외식하는 것도 좋지만 자녀와 식구를 위해서는 어머니가 부지런을 떨어야 해요. 방부제를 잔뜩 친 수입 식재료에 공장에서 만들어 나온 조미료까지 섞으면 그 음식이 독이 되는 겁니다.”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을 먹고 자란 박현숙 선생은 요즘 세대를 걱정하며 도시에 사는 주부에게 전통 장담그기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왕이 마시고 신하에게 하사했던‘ 향온주’
향온주는 어사주다. 궁에서 임금이 마시고 또 신하에게 하사하기 위해 따로 만들었던 술로 선온(宣醞이라고도 했다.

이 술은 임금의 건강 상태에 따라 어의가 처방을 내려 술을 빚었다. 또 양온서라는 관청에서 철저한 관리하에 빚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무엇을 먹는지, 어떤 약을 썼는지 보는 것 자체가 역모에 해당돼요. 그래서 입으로만 전해졌죠. 문헌으로 내려오는 것은 전무합니다.”

또 상온이라는 내시의 책임하에 엄격한 감시를 했기에 궁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향온주다. 이 향온주가 민가로 전해진 계기가 있었다. 바로 인현왕후의 폐위 사건이다.

◆인현왕후 외가로 전해져 명맥 유지
숙종 7년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농간으로 폐위되고 민가로 유폐됐다. 다행히 복위돼 환궁하게 됐지만 인현왕후는 당시 병이 깊어 가마도 탈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에 나인이 궁에서 가지고 나온 술 세 수저를 입에 넣어주니 기운을 차리고 환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후 인현왕후의 친할머니를 통해 하동정씨 집안으로 향온주 제조법이 전해졌고 그 명맥을 이어오게 됐다. 박 선생의 외가가 바로 하동 정씨 가문이다.

“1대 향온주장은 외가 친척이신 故 정해중 선생님이세요. 문화재 지정 당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집안에서 향온주를 빚을 수 있는 사람이 선생님과 저 둘뿐이었죠. 전 나이가 어려 선생님을 모신 후 2대로 물려받게 됐죠.”

박현숙 선생은 1대 향온주장 정해중 선생의 뒤를 이어 지난 2002년 9월 2대 향온주장으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궁에서 만들었던 녹두누룩 10여 년 만에 재현
향온주를 만드는 누룩은 쌀로 만든 쌀누룩과 녹두로 만든 누룩을 사용했다. 쌀누룩은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궁에서만 만들어 사용했던 녹두누룩이었다.

문헌에 남아있는 기록도 없고 녹두누룩을 만드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시중에는 균을 첨가해 만든 계량 누룩에 녹두를 섞은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누룩은 녹두가 섞인 누룩일 뿐 순수하게 녹두만을 사용해 균을 만들어냈던 궁에서 만든 향온국은 아니었다.

“녹두누룩을 재현하기 위해 100가마니는 사용했어요. 집 마당 한쪽에 실패한 녹두를 버렸는데 얼마나 많이 버렸는지 사람 키보다 큰 명아주가 한가득 자라기도 했어요. 집이 풀 속에 파묻히겠다며 농담도 했죠. (웃음)”

녹두는 곡물 중 단백질 함량이 가장 높아 조금만 잘못하면 쉰내가 나고 발효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 선생은 생전 누룩을 만들며 어머니가 하셨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재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패하기를 10여 년, 드디어 녹두만으로 누룩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옛날엔 녹두를 넣어 송편을 만들었어요. 그때 속을 만들고 남은 녹두 거피를 술 담글 때 넣었어요. 이렇게 만든 술은 향도 맛도 좋다고들 난리였죠. 그러니 100% 녹두만으로 만든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뚜껑만 열어도 향이 문밖까지 퍼지죠.”

녹두누룩 재현 소식은 일본까지 전해져 현지 대학에서는 학생을 보내 자신들의 미생물과 교환하자고 찾아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녹두의 효능에 술맛 더해져 극찬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해독을 위해 녹두죽을 먹곤 했다. 이 녹두로 술을 빚었으니 선조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해독작용이 뛰어난 녹두로 누룩을 만들고, 술을 빚을 생각한 우리 선조의 지혜가 너무나 대단해요. 더구나 녹두로 누룩을 만들기 위해선 방부 역할을 하는 약초를 우려 그 물로 만들죠. 이 약초의 독성 또한 녹두가 중화해 줍니다.”

녹두누룩으로 빚은 향온주는 향이 좋고 부드럽다. 일반 술이 알코올 입자가 크고 떨어져 있는 반면 향온주는 알코올 입자가 작고 곱다. 이 때문에 목 넘김이 부드럽고 향도 더 짙다. 어떤 이는 외국 고급 위스키보다 훨씬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향온주를 맛보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녹두누룩은 5~7월 햇밀과 약초가 나오면 만들 수 있다. 8월만 돼도 약초는 독성이 강해져 사용할 수 없다. 이 누룩으로 술을 빚으려면 6개월 이상이 걸린다. 또 소주를 내리는 데는 8개월 이상이 걸린다. 후숙을 시켜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입에 밴 어머니 손맛
박 선생의 어머니는 타고난 손맛을 자랑했다. 모든 한식에 능했다. 가스렌지조차 나오지 않았던 시절 자녀들에게 술지게미를 밀반죽에 넣어 직접 술빵까지 만들어 먹이실 정도였다.

동네분들이 ‘저 양반은 볏짚을 가지고도 음식을 만들어 낼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솜씨는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집에 냉장고를 들여놓자마자 저희 형제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시곤 했어요. 처음 먹어 본 맛이었죠. 또 시래기에 돼지 족찜을 해주곤 하셨는데, 지금도 겨자에 찍어 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박 선생은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는 어머니가 보릿겨 가루로 만들었던 장을 일본인에게 대접한 적이 있었다. 장을 맛본 일본인은 ‘일본의 3대 진미로 손꼽히는 해삼 창자로 만든 고노와다에 버금가는 깊은 맛이 난다’며 극찬했다.

“좋은 입맛을 가진 사람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한식을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엄마들이 집에서 좋은 음식을 많이 만들어줘야 해요.”

음식이 건강해야 가족이 건강하고 나라가 건강해진다고 말하는 박현숙 선생. 그는 지금도 전통 장만들기 강좌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전통을 전하는 것에 앞장서고 있다. 전통을 살리고 전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 선조의 강인함이 엿보이는 듯했다.

아무리 좋은 술도 알려지지 않으면 땅에 묻히게 된다고 말하던 그는 내년쯤 우리 전통 누룩과 궁중술에 대한 것을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문헌 하나 없이 10년 세월을 녹두누룩에 매달렸던 박 선생의 정신이 담겨 후대에는 온전히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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