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조선 시대 화가들은 여자들의 모습을 즐겨 그리지 않았다.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유일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소녀티를 갓 벗은 여인은 트레머리에 동그란 얼굴로 반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을 가졌다. 옷고름을 만지작거리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수에 차있다.

근세에 와서 여권이 신장되자 궁정화가였던 이당 김은호 화백이나 그 제자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등 대가들이 미인도를 잘 그렸다. 보기 드문 절색의 여인을 그린 것이라서 미인도는 인기가 있었다. 한때는 이들 작가들의 도서를 찍은 가짜 미인도가 난무했다. 이들 위작 그림들은 지금도 인사동에 등장한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궁정관녀(宮廷官女)의 유희 풍속을 담은 ‘사녀도(仕女圖)’가 유행했다. 명나라 구영(仇英), 당인(唐寅), 청나라 비단욱(費丹旭) 등은 미녀들을 많이 그렸다. 이들의 그림을 보면 소박한 혜원의 미인도와는 맛이 다르다. 화려한 비단 옷에 비파를 든 사녀들은 창백한 얼굴에 금방 쓰러질 듯 가는 허리를 가졌다.

당인의 가짜 미인도는 청대에도 많이 그려졌다. 지금도 당인의 그림을 가짜로 그려 파는 화가들이 있다.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백년 된 명대의 비단에 정교하게 그려진다. 이들 가짜 그림들이 진짜로 둔갑해 중국 경매장에서 팔려나간다.

이 시기 중국의 가짜 서화가 조선 사회에 수입돼 판을 쳤다. 사신으로 갔던 관리들이 선물을 받았거나 연경 뒷골목 고서화상으로부터 매입한 것들이다. 당시 만권의 책을 수장하여 유명세를 탔던 충북 증평 담헌(擔軒) 이하곤은 남송대 화원 마원(馬遠)의 그림을 여러 점 매입했는데 모두 가짜였다고 한다. 고종 때 도승지를 지낸 유만주(兪萬柱)는 자신의 일기에 ‘명나라 문인화가 심주(沈周)의 그림을 어렵게 구했으나 나중에 보니 가짜였다’고 썼다.

조선 후기 중인 신분인 우봉(又峯) 조희룡은 명필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다. 일설에는 우봉이 만년에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이 그린 그림에 스승의 낙관을 찍어 팔았다는 설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유명 미술관에 소장 된 추사작품 가운데는 우봉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추사 작품은 사후에 가짜가 많이 제작됐다. 심지어는 생활고로 추사의 친척들까지 위작을 만들어 유통시켰다는 설이 있다. 일제 강점기 경남 함안과 정읍에는 가짜 추사 글씨를 양산하는 집단까지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감정학을 공부한 모 교수는 귀국하자마자 국립박물관을 포함한 한국의 유명 컬렉션이 소장한 추사 작품 대부분이 가짜라고 선언,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그는 보물로 지정된 겸재(謙齋)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도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고서화는 물론 현대작가들의 작품도 가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故)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는 물론, 인기 있는 현역 중견작가들의 작품들이 가짜 논란에 휩싸여 화랑가가 몸살을 앓았다. 현재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우환 작품의 위작시비는 한국미술 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가수 조영남 대작사건까지 터져 더욱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됐다.

최근 25년간이나 ‘위작 스캔들’에 휩싸여 있던 천경자 화백의 작품 ‘미인도’에 대해 검찰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검찰은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감정, 미술계 자문 등을 종합한 결과 진품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천경자 미인도는 한국여인이라기보다는 검은색 피부의 아프리카 여인을 닮고 있다. 가짜에서 진짜로 재탄생한 미인도가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번 검찰의 과학적 접근 방식이 위작 시비를 가리는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 일반 갤러리들도 상거래상 신뢰를 높이려면 선진적인 감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이다. 진짜가 가짜로 평가받고 가짜가 진짜로 대접받는 작품은 없어야 할 것 같다.

침체에 빠진 국내 미술시장의 회복은 어렵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예술인들의 절박한 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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