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대통령 후보군을 가리켜 곧잘 ‘잠룡(潛龍)’이라고 표현한다. 대통령이 조기 퇴진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된 이상 차기 대권을 겨냥한 잠룡들의 움직임도 빠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누가 내년 선거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용(龍)’은 제왕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중국 설화에는 황제는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 온 신격으로 그려진다. 황제를 상징하는 용은 발톱(爪)도 다섯 개나 된다.

왕이나 제후는 4개이며 왕자나 귀족들은 3개의 발톱이 그려진 용을 가질 수 있었다. 역사상 유럽까지 침공하여 가장 강대한 대륙을 통일한 원나라 황제는 3개의 발톱을 고집했다. 당시 제작된 원나라 청화백자에 그려진 용 발톱은 3개가 주류를 이룬다. 왜 그들은 3개의 발톱을 고집한 것일까.

신라는 진흥왕 시기에서 무열왕대까지 황제라는 호칭을 쓰다가 당나라의 원군으로 반도를 통일한 후에는 슬그머니 왕으로 격하시켰다. 배포가 컸던 고려 태조 왕건은 스스로 황제라고 했다. 당시 대륙은 당나라가 쇠퇴하고 오대십국(五大十國)으로 쪼개져 고려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천안 왕자성(王字城)에는 ‘다섯 마리 용(五龍)’ 설화가 얽혀있다. 성의 모양새가 ‘王字’ 같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왕건이 후백제를 공략하기 위해 거점을 삼은 요새였다. 지금도 천안에는 ‘오룡동’이니 ‘오룡 경기장’이니 하는 지명이 나타난다. 왕건은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용으로 장식한 말을 타고 화려한 금제 용갑(龍甲)을 착용하지 않았을까.

고려 초기 창건된 천안시 천흥사(天興寺)는 문자 그대로 황제국의 흥성을 상징한 것이며 왕건의 영정을 봉안했던 유명한 대찰이었다. 천안(天安)이라는 호칭도 지금 베이징의 천안문과도 비교돼 남다르다.

용은 비를 만들어낸다고 믿었다. 중국 고대 도자기나 조선 분원자기에 나타난 용의 모습은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형상이다. 조선 왕실의 개국과 덕업을 칭송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도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노래’라는 뜻이 아닌가.

용의 몸은 81개의 비늘로 덮여 있으며 눈은 불을 뿜듯 표현된다. 날카롭고 역동적인 발톱과 긴 수염은 위엄의 상징이다. 모든 용은 만능을 상징하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거나 다투는 형상을 하고 있다.

황제나 왕이 앉는 자리를 용상(龍床)이라고 했다. 신하들은 아무리 지위가 높은 자리라고 해도 함부로 용상에 앉거나 만져보지도 못했다. 제왕이 고개를 들라고 해야 용상을 바라보는 시늉을 하는 정도였다. 임금을 빤히 쳐다보다가는 불경죄에 걸리고 간관(諫官)의 눈에 띄면 비판대상이 됐다.

용은 그만큼 어렵고 두려운 대상이었다. 성종 때 재상 손순효는 술에 취해 용상을 어루만지며 ‘이 자리가 아깝다’고 주정을 부렸으나 공이 많아 특별히 용서 받았다. 당시 잠룡이었던 어린 연산군의 행태를 보고 미래에 왕위에 오르는 것을 한탄한 것이었다. 손순효의 예상대로 연산은 폭군으로 일관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이제 국민들은 차기 대한민국을 이끌 잠룡에게 어떤 덕목을 주문할까. 대통령다운 처신을 해야 하며 한 치의 위법이나 비리를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측근이나 비선과의 절연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과거 경력에서 작은 오점이라도 있으면 대통령 후보로 나올 생각은 말아야 한다.

‘킹메이커’니 ‘잠룡’이니 하는 용어도 지금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앞장서 비판하는 언론부터 표기를 달리 해야 하지 않을까. 봉건적 지칭은 앞으로는 쓰지 말아야 한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피터지게 싸워 얻는 대통령 자리는 누가 되든 비극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대통령과 측근들의 이권 자리가 아니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도 아니다. 국민의 진정한 봉사자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해야만 임기를 보장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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