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신라왕이 어느 날 밤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왕은 호공(瓠公)을 보내 알아보게 했다. 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그 궤를 가져와 열어보니 안에는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이 아이가 경주 김씨(慶州金氏) 시조가 되었다.”

신라 김알지 설화에는 이렇듯 ‘흰 닭’이 등장한다. 새벽의 고요를 깨는 닭 울음소리와 함께 계림(鷄林)은 1천년 역사를 열었다. 그런데 신라는 왜 흰 닭이었을까.

고구려 덕흥리 고분 속에는 금방 비상할 듯한 붉은 닭 그림이 그려져 있다. 신라 김씨의 선대는 바이칼 호수를 중심으로 한 흉노족이고, 고구려는 치우(蚩尤)천왕을 숭배하는 동이족인 때문이었을까.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귀주(貴州)지방에 많이 분포된 이들이 묘족(苗族)이다. 보석으로 장식한 화관과 아름다운 의상을 착용한 여성들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묘족이 우리의 조상일 수도 있는 ‘치우’의 후손이라고 자처한다는 점이다.

묘족의 풍속 가운데는 고구려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사람이 죽으면 출상하기 전에 무속인은 오른손에 수탉 한 마리를 든다. 닭 머리를 영안실의 문틀에 넣어 영생을 기원하기도 한다. 고구려가 닭을 신성시하여 방안에서도 닭과 함께 생활을 했다는 기록을 그대로 닮고 있다. 묘족은 본래 북방에 살다 남쪽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닭은 예부터 조상들의 삶 속에서 함께 살아온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의기문양으로도 인용됐다. 종묘제사에 명수(明水)를 담는 놋그릇을 ‘계이(鷄彝)’라고 한다. 사발 모양의 술 담는 그릇으로 표면에 닭 그림을 새겨 넣은 것이다. 닭이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닭은 설날 세화(歲畫)에도 담겨진다. 새해가 되면 재앙을 물리치려 수탉 그림을 대문에 붙였다. 수탉 울음소리는 악귀를 쫓아내며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고 믿은 것이다.

혼례식에는 붉은 보자기에 싸여진 수탉과 푸른 보자기에 싸여진 암탉이 등장한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바치는 폐백 음식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닭이다. 닭을 가운데 놓고 붉은 색의 대추와 감을 소복이 쌓아 올린다.

조선시대 하달홍이란 선비는 닭에서 오덕(五德)을 추출해 냈다. 그의 ‘축계설(畜鷄說)’을 보면 ‘머리의 붉은 색 벼슬은 문(文), 발톱으로 공격하는 것을 무(武), 싸울 때 물러서지 않은 것을 용(勇),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 때를 맞춰 새벽을 알리니 신(信)이다’라고 정의했다. ‘문무용인신’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도리인 오상(五常)과 비슷한 것이어서 선비들이 좋아한 글귀다.

‘계(鷄)’자는 지관들이 명당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이기도 했다. 조선 지리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알을 품은 암탉과 날갯짓하는 수탉이 포개지는 형국을 ‘금계포란형’이라고 정의했다.

무학대사는 서울을 옮길 땅을 찾기 위해 이성계와 함께 계룡산을 답사했다. 대사는 산세를 보고 ’금계포란형 비룡승천형(金鷄抱卵形 飛龍昇天形)‘이라고 감탄했다. 6백여년 후 무학의 주장대로 계룡산 인근 세종시는 한국의 제2 수도로 자리 잡았다. 닭이 들어가는 ’계룡‘이란 이름을 지닌 마을들은 예부터 명당으로 알려진 곳들이며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새해는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붉은 닭의 해다. 지난해 12월 한국에서는 AI가 창궐하여 계공들이 2600만 마리나 도살처분 됐다. 정유년 새해를 얼마 앞둔 계공수난의 줄초상이다.

여기다 달걀 파동까지 겹쳐 서민생활에 주름살이 펴지지 않고 있다. 경제는 곤두박칠 치는데 대통령 탄핵으로 국론마저 양분된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

역술인들은 닭이 ‘밝다’ ‘총명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정유년은 ‘총명한 닭’의 해로 풀이되며 닭이 음기와 액운을 쫓아낸다는 것이다. 붉은 닭은 더 상서로운 동물이며 동이족의 힘찬 기상을 상징하고 있어 내년은 국운이 열린다고 전망했다.

우리는 어려운 시기마다 단합하여 난국을 극복해 온 민족이다. 새해 온 국민이 붉은 닭의 기상으로 오덕의 지혜를 실천,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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