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한국 문화위상의 시계(視界)는 어떤가. 가장 침체되고 어둔 터널 속에 갇힌 모습은 아닌가.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새해를 맞았어도 예술단체나 부서의 임원들도 의욕적인 사업은커녕 일손을 놓고 정치변화의 추이만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도 어려운 삶을 헤쳐 나온 한국 문화계는 최순실 여파가 또 하나의 시련이다. 대기업 오너들이 줄줄이 권력유착으로 특검에 불려 다니고 기업이 낸 지원금이 뇌물죄 혐의가 되는 판국에 기업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모두 끊었다고 한다. 김영란법이 기업과 개인의 문화지원 거부에 대한 구실이 된 이후 예술단체나 개인에게 지원하는 일은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한국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빚더미에 올라 극단적인 삶을 선택하거나 거리로 나와 택시운전으로, 공사장 인부로 어려운 삶을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의 문화정책은 국정의 우선이 되지 못했다. 대통령이 화제가 되는 영화관에 나가 감상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서점에 나가 시집을 산다든지 음악회는 물론 연극을 보거나 미술전시를 감상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었다. 지금 유럽에 신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악인들을 격려하고 또 이들의 공연장에 나간 대통령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은 신년이 되면 각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역대 어느 대통령이 제일 먼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문화발전을 위한 얘기를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영화는 지금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성공한 한 편의 관람객 수가 천만이 넘는 영화가 즐비해졌다. 그러나 영화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수억, 수백억을 버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쪽방에서 라면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영화인들이 많다. 2012년 32세의 가난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먹지 못해 목숨을 잃었던 사례가 영화계의 명암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일을 보고도 정부와 정치인들은 남의 일처럼 보고 흘려 넘겼다. 청년지원을 앵무새처럼 외치는 서울시도 이런 영화 예술인들의 어려운 삶을 살피고 돌아 본 적이 있는가를 묻고 싶다.

대통령이 문화융성을 말하면서 청와대 참모 가운데 국학이나 문화예술정책을 다룬 원로 전문가가 없었다. 필자는 지난해 평생 한국학 연구에 헌신해 온 원로 한 분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원로는 대통령 참모 가운데 국학과 문화를 전공한 보좌진이 없는 것을 우려했다. 어떻게 대통령 측근에 이 같은 보좌진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의 이런 문화적 공백 현상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까지 번진 것이었다.

중국은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그것이 중국 문화예술인들의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계기가 된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중국 상해시를 다녀오는 길에 시정부가 운영하는 ‘M50’ 문화공간을 방문했다. 이 광장은 상해시 보타구 막간산로(莫干山路)에 있으며 폐공장지대를 2011년 전시장으로 단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전시공간을 통해 많은 작가들이 시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M50은 중국 정부의 예술문화에 대한 지원과 대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증거였다. 중국에서 이름 있는 그룹, 개인전이 줄을 잇고 있었으며 재력가들의 후원으로 한 점에 고가의 작품들이 팔려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중심가에 이 같은 대형 예술 공간이 없다. 아마 서울시 소유나 국유 유휴지가 남아있다면 건설사에 매각하지 않았을까. 자본논리가 우선인 도시에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며 숨 쉴 공간도,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문화력은 그 나라의 위상과 직결된다. 주말이면 몽마르뜨에 나가 전시회를 둘러보고 작가와 대화를 나눈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뛰어난 한국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프랑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아트페어(APAF) 초청자는 항상 현직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문화력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차기에는 문화를 아는 대통령, 문화위상을 끌어올릴 대통령, 문화 예술인들의 눈물을 닦아줄 그런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