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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문화칼럼] 되풀이 말아야 할 모함의 오욕사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
2017.01.08 20: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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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관리의 비위를 고발하고 임금의 잘못까지 적어 올리는 ‘상소(上疏)’를 언로(言路)라고 했다. 조선왕조시기에는 이를 임금의 귀라고 여겨 매우 중요시했다. 임금도 상소가 올라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글을 올린 선비를 응징하지 못했다. 귀양을 보내거나 공직에서 파면하면 공론이 들끓었다.
상소는 사회의 폐단을 개선하고 임금의 과오를 고치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죄 없는 상대를 모함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넣는 무서운 독소이기도 했다. 영웅 이순신 장군이 한때 왕명을 거역한 죄로 죽을 뻔했던 것은 사헌부 김대래(金大來)의 상소 때문이었다.

김대래는 집안이 좋은데다 장원급제 한 인물이었으나 경솔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당시 지평(持平)으로 집권당인 유성룡에 반하는 당의 사주를 받았던 것이다. 상소를 받은 선조는 장군의 목을 베고 싶었지만 서애와 이항복 등 중신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이순신을 살린 것은 우의정 정탁(鄭琢)의 옹호상소였다. 임금은 장군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백의종군을 명했다. 만약 상소라는 언로가 없었으면 노량, 명량 해전의 대승리도 없었으며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서애도 나중에는 상대 당의 상소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다. 그가 실각한 것은 전쟁 중에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자 양반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사류들은 나라가 망하든 말든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서애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서애는 영의정 자리에서 파직당해 고향으로 돌아가 임진전쟁의 아픔을 담은 ‘징비록’을 완성하고 생애를 마쳤다.

중종은 중전 신씨 복위문제로 젊은 관리들이 상소하자 이들을 귀양 보내는 처사를 단행한다. 이때 조야의 선비들이 일어났다. 임금이 나라의 언로를 막으면 귀를 막는 것이므로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종은 슬그머니 글을 올린 사람들을 용서했다.

그러나 노 대신들이 신진 개혁파 정암 조광조를 탄핵해야 한다는 상소가 있을 때는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임금은 개혁세력들에게서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들이 정암을 목 베야 한다고 했던 근거는 말도 안 되는 증거였다.

즉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씨를 써 벌레들이 파먹게 하고 이를 임금 앞에 바치며 조광조 일당이 역모를 꾀한다며 모함한 것이었다. 기묘사화를 일으킨 이 황당한 비과학적 언로는 침체에 빠진 조선을 개혁시키지 못한 오욕의 역사로 남았다.

상소 중에는 도끼를 들고 대궐 앞에 엎드려 자신의 주장을 임금에게 전달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라는 것이 있었고, 만여 자나 되는 장문의 만언소(萬言疏)도 있었다. 자신의 뜻이 관철 안 되면 도끼로 머리를 쳐도 좋다는 극단적인 상소가 지부상소다.

임진전쟁 때 중봉 조헌은 지부, 만언소의 장본인이었다. 중봉은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가자 임금을 호종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조선 말 유학자인 면암 최익현은 일본과 대한제국의 강화도조약에 반발,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서 지부상소를 올렸다. 그는 “차라리 내 머리를 도끼로 쳐 주시옵소서”라며 통곡했다. 조선은 그야말로 ‘상소대국’의 경지였다.

그런데 이런 유풍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인지, 언론사나 검찰에는 매일 많은 투서가 접수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중 사실에 근거한 것은 얼마 안 된다.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기 위한 악의에 찬 모함들이다.

요즈음 언론계에도 소위 팩트가 아닌 ‘카더라 식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 뜬소문을 가지고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폭로 기사들이다. 대선 유력 인사를 흠집 내기 위한 악의에 찬 비방도 서슴지 않고 있다.

조작으로 젊은 지성들을 도륙한 기묘사화의 비극이나 국난극복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목 베려고 했던 술수와 다를 게 없다. 언론인들이 쓰는 기사는 팩트가 중요하며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그래야 이 시대의 언로가 신뢰를 얻는다. 진정으로 한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못된 비방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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