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현대정치는 정당정치이다. 정당이 현대정치에 개입하게 된 시초는 정당의 보호 조항이 헌법에 진입하고부터인데, 1947년 독일의 바덴 지방(支邦)헌법이 첫 사례다. 국가 또는 연방헌법에서는 1949년 서독기본법에서 맨 처음 규정됐고, 그 이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헌법상 정당 활동이 보장됐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제1공화국헌법에서 정당 규정 없이 묵시적으로 인정돼 오다가, 1960년 제2공화국헌법에 정당의 보호 규정을 두었고 1963년 제3공화국헌법에서 정당에 관한 여러 규정들을 두어 비로소 정당국가적 색채를 띠게 됐다.

민주국가에서는 헌법상 정당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정치적 활동을 돕기 위해 국고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당제도가 잘 마련된 독일에서는 모든 정당에 대해 국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국회 의석을 가진 원내(院內)정당에 한해 국비를 보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지급된 정당별 경상보조금 내역은 새누리당이 195억 7000여만원, 더불어민주당이 177억 4000여만원, 정의당이 21억 2000여만원을 지급받아 정당 활동에 사용해왔던 것이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경상보조금으로 총 204억여원(새누리당 85억 7776만원, 더민주당 75억 6433만원, 국민의당 30억 581만원, 정의당 12억 1206만원 등)이 지급됐다. 별도로 선거보조금으로 새누리당 163억 9724만원, 더민주당 140억 2491만원, 국민의당 73억 1459여만원, 정의당 21억 6108만원, 기독자유당·민주당 각각 3200여만원이 배분된 바, 이처럼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선거보조금 지원은 정당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본체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당과 정치인이 하는 일 없이 국고만 축낸다며 국민 원성이 자자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에 대해 헌법과 법률 규정에 의해 보호되고 지원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국민 눈에는 먹튀 운동선수처럼 원내정당이 국고보조만 받아먹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당쟁만 일삼는 먹튀 행위를 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질책도 나온다. 그 점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들이 반성해야 될 터이고, 국민은 투표권으로 ‘최악의 의원상’을 보인 제19대 국회의원에 대해 냉정하게 심판했다. 그러므로 4.13총선에 의해 새로 구성되는 제20대 국회만큼은 진중해야 하는 바, 무엇보다 여당이 국민의 의중이 아니라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고, 또 야당은 민의가 담긴 정책대결이 아닌 당리당략을 쫓는 행위가 근절됐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정치인의 잘못된 행위는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되는 바 그럼에도 국민들은 정당보다는 정치인 개개인의 탐욕을 질타하게 된다. 정당이 국가발전과 민생을 대변하는 촉매제가 돼야 하고, 민주정치를 견인하는 계제로 삼아야 함은 정치의 ABC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듯 현실정치는 한편의 막장드라마, 구태정치의 집합장과도 같았으니 국민 걱정이 크다. 정당이 민주정치를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역할론에 대한 신선한 모색과 방향의 핵심은 한마디로 정당의 ‘민주정치 구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생각을 하면서 옛 자료를 찾던 중 필자는 깜짝 놀랄 내용을 발견했으니 바로 ‘민주정치 구현의 신(新)구상’에 관한 과거 신문기사다. 관심을 갖고 읽어보니 수긍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기사 가운데 ‘정당정치의 발전’과 ‘여야 협조 문제’ 진단이 특별나다. ‘정당의 건전한 발전이야말로 민주정치의 실천적인 방도이므로 정당은 정책이나 선거 때 유권자에게 약속한 노선을 견지하며, 공개민주정치와 안전성 있는 민주정치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여야 협조와 관련한 대목은 이렇다. 정당정치라는 것은 다수당이 정당 내각(內閣)을 조직해 국민에 대하여 정치상 책임을 지기 때문에 여당의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여당은 행정부의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아야 하며, 국민바람에 따라 야당의 국사(國事)에 대한 충언을 아량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야 협조는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비록 정책에 상반되는 점이 있더라도 상대당을 비방하거나 인신공격하지 말고 대의명분에 입각해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한다. 여야 양쪽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가민족의 이익을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

다수결을 존중하고 반대의사에 대해서는 관용과 경청으로 반대당에 대한 집권여당의 불탄압, 권력행사를 자제함으로써 여야가 공존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국내문제에 있어서는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국사, 국책문제는 여야 다 같이 협조해 국난에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선각자들의 ‘민주정치 구현의 신(新) 구상’에 관한 신년대담을 읽고 나서 필자는 옛 정치지도자의 혜량과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이야말로 국회법 등 현안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문제의 해답이 아닌가. 60여년이 흘렀어도 여야의 불협화음, 한국정당이 처한 현실은 과거에 머문 것 같아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앞의 일들은 1955년 1월 1일에 난 신문기사인데 말이다. 이제 20대국회가 새롭게 출발했으니 민의에 의한 민주정치가 실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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