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주권자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실시된 각종 공직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리행사를 해왔거나, 혹은 그렇게 해도 사회가 달라질 게 별로 없다는 이유로 주권행사를 포기하기도 했다. 가끔씩은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변화되는 전환기를 가져왔는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난 4.13총선은 또 한번 정치지형뿐만 아니라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더 이상 현실을 묵과할 수 없는 선량한 시민들이 표심을 통해 파당적 이익에 골몰해온 사악(邪惡)한 정치권을 심판했던 것이다.  

많은 정치학자들과 관심 있는 사회단체에서는 정당이 그 지향하는바 목적대로 국민이익을 위해 잘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힘을 보태주었지만 결국은 자신들만의 기득권에 치중했음이 역대 정치가들이나 정치권에서 이뤄낸 결과물에서 잘 나타났다. 그 핵심은 정치가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것은 하나의 명목에 불과했고, 국가와 소속 정당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만 무사히 선거판에서 이길 수 있으면 된다는 소아적(小兒的) 생각이 우선이라는 것인데, 멸사봉공이 아닌 멸공봉사(滅公奉私)에 매몰된 사악한 정치로 인해 착한 국민들만 힘들게 살아왔다.

권력에 한번 맛들인 정치인들이 계속 그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정치권 또는 정당 내에서 파당이 생겨나고 그것을 기화로 중우정치(衆愚政治)가 터를 잡았다. 거기에는 선거풍토가 계기가 됐고, 기득권 정당들의 선거책략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특히 유권자들이 정치권을 충분히 제어(制御)하지 못하는 양당정치 체제 하에서 거대 정당들은 재미를 톡톡히 봐왔던 것이다. 선거가 연례행사처럼 있어왔지만 입후보자들이 정당 위주로 한정돼 있는 관계로 유권자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선거 때마다 주체가 돼야 할 국민들은 오히려 객(客)이 돼있었다. 

정당과 입후보자들은 선거 때마다 그간 이루어놓은 치적과는 상관없이 오직 승리 전략으로 상대당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게 다반사다. 매번 같은 상황들, 이를테면 이념과 지역, 계층의 이분법으로 선동해 군중심리를 유발하는 그 전략들이 먹혀들어가서 때로는 다수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어서 우리 정치는 결국 중우정치를 피할 수 없게 됐던 것이다. 선거에서 2등은 필요 없었으니 필승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탓에 정치 혐오가 생겨나고 선거가 필수인 민주주의에 대한 멸시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4.13총선은 달랐다. 유권자들이 익숙해진 중우정치의 늪에서 빠져나와 선진정치를 향한 고삐를 바짝 죄었다. 지금까지 기득권에 고착화되고 발전 없이 과거 패턴에만 안주한 양당정치에 경종을 울렸고, 안일하게 대처해온 정당에게 국민눈높이의 정치를 하라는 채찍을 들고 나섰으니, 정당의 획기적 쇄신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유권자들 표심은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1892∼1971)가 설파한 바대로 “정당은 현대정치의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그것은 민주정치의 중심에 위치해 결정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임을 일깨워주었다.

한국정당은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여당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힘으로 이끌었고, 야당은 반대하면서 적당히 동조해 반사이익을 챙기는 정치 패턴을 떨이할 때가 온 것이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가 새누리당의 오만함과 야당의 계파주의를 심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결과는 묘한 뉘앙스를 가져다주었다. 집권여당에게는 뼈아픈 질책이 되겠고, 더불어민주당에게도 반사적 이익만을 제공한 게 아니다. 새로운 정치질서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정당 스스로가 국민이익을 위한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라는 과업을 안겨주었다.

정당의 창조적인 역할 수행은 당헌·당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정상 조직으로서 당원과 국민이 바라는 정당정책을 견지하면서 민의에 의한 건전한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는 것인 바, 정당이 현역 국회의원들의 전용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은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행세해왔고 정당 활동을 원내 활동의 연장선상에 두었다. 정당이라 하면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 아닌가. 따라서 당원들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기인해 국민이익을 담보하면서 새로운 질서 위에서 발전을 꾀하는 일을 행해야 한다.

정당의 본색이 그럴진대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로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 조직이 와해된 것은 아니다. 다만 지도부 공백사태인 바, 당헌에 따라 처리하면 될 테고, 문제는 얼마나 빠른 기간 내 비대위가 아닌 정상적인 당 지도부를 조직해서 당을 혁신하는가가 그 요체다. 또 더민주당도 임시조직인 비대위로 선거를 치렀으면 빨리 정상 궤도에 올라서야 하건만 비대위 연장론 운운은 정당의 정상 가동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다. 정당이 존재감을 살려 제 구실하면서 민주주의의 중심에 서야 국민이 편하고 나라가 발전한다. 국민의 위대함이 나타난 4.13총선을 계기로 우리 정당들은 크게 변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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