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총선 개표 중계방송을 보다가 밤늦게 자고 일어난 14일 아침, 뉴스를 보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있었다. 4.13총선 결과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이야기다. 올해 어렵사리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이대호 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연장 10회 말 투아웃 상태에서 대형사고(?)를 친 것이다. 2사후 대타로 나온 이대호 선수가 노볼-2스트라이크에 몰린 상황에서 좌완 투수의 시속 156㎞짜리 강속구를 통타해 투런 아치를 그려냈는데, 한국선수가 연장전에서 끝내기홈런을 친 것은 미국 메이저리그 사상 이번이 첫 번째라고 한다.

지금 국내 프로야구도 시즌 초를 맞아 팬들에게 인기를 끌지만 경기에서 그것도 홈팀이 연장전에서 홈런으로 끝내는 것은 선수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 홈팀 팬들에게도 기쁨을 준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시즌 개막 이후 홈 다섯 경기에서 모두 패해 부담을 안고 있었는데, 대타로 나선 이대호 선수가 기적을 만들어냈으니 그날 영웅대접을 받을 만했다. 시원한 홈런 한 방으로 감독에게 신뢰를 주고, 팬들에게도 ‘코리안리거’의 강렬한 인상을 심겨주게 된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초 미국에 사는 아들집에 가는 도중 로스앤젤레스 공항 수화물코너에서 우연하게 이대호 선수를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적을 두고 있던 이 선수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때인데, 그 후 이 선수의 거취가 궁금하던 차에 올 1월에 시애틀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평소 메이저리그 도전을 꿈꿔온 이 선수가 마이너리그에 계약한 후 스프링캠프에서 성실하게 훈련해 25명을 뽑는 팀 메이저리그 개막전 로스터(roster)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선 14일 홈경기에서 빅리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홈런포로 증명시켰으니 반전(反轉)의 기회가 됐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동안 몇 번의 기회는 찾아온다는데 어쨌든 세계 정상무대에 서보기 위해 도전했던 이대호 선수는 기회를 쟁취했고, 반전의 기회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이번 4.13총선에서 녹색바람의 기적과 여소야대가 된 정치판 풍경도 하나의 교훈인데, ‘준비한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다. 한번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지 않고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과 행동일진대 잠시 국민이 맡겨놓은 권력을 영원처럼 믿은 어리석음이 있었다. 

20대 총선과정에서 보여준 새누리당의 막장 놀음은 이미 아는 바와 같고, 그동안 실정(失政)에도 꾹 참아왔던 국민들은 정부 실정(失政)과 여당의 자아도취 행동에 대해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성적표로 심판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불어민주당에서 자신들이 잘해서 수도권에서 압승한 것이라 여긴다면 착각이다. 여당이 워낙 못하다보니 반사이익을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내 분란 등과 선거운동기간 내내 건전한 비전 제시 없이 상대 헐뜯기에 매달렸다는 여론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겠고, 국민이 눈치 주는 그 원천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이번 총선의 특징 가운데는 ‘국민의당 돌풍’이라는 유의미성(有意味性)에 있다. 그 의미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우리나라 양당제도가 지금까지 보여 왔던 ‘기득권 유지’ 폐해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다. 신당 창당 2개월 만에 총선에서 원내 38석의 의석을 차지한 국민의당에게 보내진 찬사보다도, 또 그들 후보자들이 열악한 여건 하에서 힘들게 선거전을 치렀다는 것에 대한 위무보다도, 앞으로 한국정치의 무한한 제3지대 확장성에 관한 기대로 귀결되고 있다.

국민의당은 거대 양당과의 힘겨운 선거전에서 호남권 25석으로 압승하고 서울 2석을 거둬 녹색바람을 회오리바람으로 만들어내면서 지역구 출마자 171명 중 153명(89.5%)이 선거비용 일부 또는 전부 보전 대상이 될 만큼 선전했다. 또한 전국을 대상으로 한 정당투표에서는 원내1당으로 자리 잡은 더민주당(25.54%)보다 더 많은 28.73%를 얻었다는 사실인 바, 호남뿐만 아니라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서도 이겼고, 대구·경북에서도 비례대표 득표수가 더 많았다는 것은 보수와 진보를 함께 아우르는 중도로서 앞으로의 확장성이 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치는 기득권 세력들이 양당제도에 안주한 결과 구태정치의 연속선상에서 국민에게 못난 정치를 보여 왔다. 이제 20대국회에서는 3당 체제가 되었으므로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 국민을 기만하는 술수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무섭게 아는 정치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이 제3당을 만들어준 유의미성이다. 그렇게 볼 때에 이번 총선이 ‘위대한 국민의 승리이며, 일하는 국회를 만들라는 국민명령’임을 천명한 안철수 공동대표의 일성은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는 것으로 앞으로 기대를 갖게 해준다. 그 약속을 지켜 20대 국회에서는 선진정치시대를 열어 제대로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한편, 변화열망의 대변정당으로서 국민신뢰를 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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