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단체-정부군 내전 벌여
12만명 사망, 200만 난민 발생
2014년 1월 24일 민간 협정 후
2018년 정부, 이슬람 자치권 인정
50년 분쟁 종식 짓고 총성 멈춰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굵직한 이슈 중 분쟁과 전쟁은 단골손님이다. 그중 종교분쟁은 사상‧이념‧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양상을 보이곤 한다. 대표적인 종교분쟁으로 꼽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당사자인 소위 ‘이팔 분쟁’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개신교 등 굵직한 종교가 얽혀 성지를 놓고 다툼을 한 지 벌써 75년이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얽힌 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기획 연재를 통해 각국 종교분쟁을 조명하고 분쟁의 심각성을 재조명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2013년 9월 13일 필리핀 잠보앙가에서 MNLF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공세 동안 엄폐 중인 군인들(왼쪽). 이만희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대표(가운데)는 2014년 1월 24일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방문해 민간 평화협정을 이뤄냈다. 이 협약을 기점으로 아시아 최대 유혈분쟁지역으로 꼽힌 민다나오 지역에 평화가 빠르게 정착했다. 왼쪽부터 협약서에 서명 중인 페르난도 카펠라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 교구 전 가톨릭 대주교, 서명 후 기념촬영하는 모습. (제공: HWPL, 출처: 뉴시스)
2013년 9월 13일 필리핀 잠보앙가에서 MNLF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공세 동안 엄폐 중인 군인들(왼쪽). 이만희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대표(가운데)는 2014년 1월 24일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방문해 민간 평화협정을 이뤄냈다. 이 협약을 기점으로 아시아 최대 유혈분쟁지역으로 꼽힌 민다나오 지역에 평화가 빠르게 정착했다. 왼쪽부터 협약서에 서명 중인 페르난도 카펠라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 교구 전 가톨릭 대주교, 서명 후 기념촬영하는 모습. (제공: HWPL,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오랜 종교갈등으로 아시아 최대 유혈 분쟁지역으로 꼽혔으나 현재는 총성이 멈추고 평화가 정착돼 가는 곳이 있다. 필리핀 남부에 위치한 민다나오섬이다. 50여년간 가톨릭계와 이슬람계의 종교갈등으로 무려 12만명의 사망자와 200만여명의 난민을 낳은 민다나오는 2014년 1월 24일 극적으로 평화를 맞이하게 된다. 과거 민다나오에는 어떤 일이 있었길래 서로 총구를 겨눠야 했으며, 또 어떻게 전쟁을 종식 짓고 평화협정을 이룰 수 있었을까.

◆이슬람 세력, 40년간 독립운동

민다나오는 민다나오섬과 남서부 술루 군도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6개의 지역과 26주가 있다. 민다나오섬은 필리핀에서 루손섬 다음으로 큰 섬이다. 국토의 남쪽 1/3 부분에 해당한다.

필리핀의 다른 지역들이 그랬듯 민다나오도 초기에 힌두교와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14세기에 필리핀에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시작되면서 이 섬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술루, 라나오, 마긴다나오(모로 왕국) 등의 술탄국들이 건립되면서 이슬람 문화권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이후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에 걸쳐 잇따라 스페인 항해자와 군인, 선교사가 내항해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1565년에 세부를 정복한 직후에는 민다나오섬 북부도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민다나오 남부는 이슬람 세력이 강해 스페인의 힘이 미치지 못했다.

마긴다나오 왕국이나 술루 왕국이 점차 쇠퇴해 19세기에 멸망하자 민다나오 남부도 필리핀 식민지 정부에 의해 천천히 정복됐다. 다바오 부근이 스페인에 정복당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스페인 통치하에 애니미즘을 믿는 주민들은 기독교로 개종됐다.

현재는 인구 약 2200만명 중 63%가 기독교인, 32%가 이슬람인데, 필리핀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모로족(필리핀 남부 이슬람계 소수 민족)이 400만명 가량 살고있다. 모로족이란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마긴다나오족, 마라나우족, 타우숙족, 칼라간족 등의 이슬람을 믿는 여러 민족을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천지일보 2023.08.23.
ⓒ천지일보 2023.08.23.

◆가톨릭-이슬람 ‘50년 피의 내전’

다양한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 미국, 일본, 필리핀 정부 등에 대항해 몇 세기에 걸친 힘겨운 독립 투쟁을 계속 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 식민지 시대가 막을 내릴 무렵 민다나오 섬의 무슬림들은 필리핀 정부에 독립을 요구하며 1970년대부터 무장투쟁을 계속해 왔다.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무력을 동원해 민다나오를 합병해버렸다.

가톨릭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독립하겠다는 이슬람의 소원은 전력 차로 인해 실패해 왔다. 필리핀 독립 후 수십 년 동안 진행된 국토 통일 유지 정책과 민다나오에 국내 이민자의 유입으로 민다나오 인구의 대다수를 가톨릭교도가 차지하게 됐다. 따라서 사회의 주도권을 대체하는 무슬림의 분노와 수백년에 걸친 분리 독립운동에 불이 붙어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과 신인민군(NPA) 등 다양한 반정부 단체가 필리핀군과 내전을 빈발하게 벌였고 민다나오 서부는 위험지대로 변했다.

수차례 국제 사회의 중재와 협상이 진행됐고, 필리핀 정부와 MILF는 2012년 10월 방사모로기본협정(FAB)을 체결했으나 모로인과 주변 간 뿌리 깊은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민간 평화협정 체결한 인물 ‘한국인’

이러한 과정 가운데 2018년 5월 31일 필리핀 정부는 공식적으로 민다나오에 이슬람 자치권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70년 이후 진행된 분쟁이 사실상 종식됨을 알린 것이다. 갈등을 중재하며 민간 평화협정 체결을 이끌어낸 사람은 놀랍게도 민간 평화운동단체의 한국인이다.

필리핀 대주교의 간청으로 2014년 1월 24일 아시아 최대 유혈 분쟁지역인 민다나오를 찾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는 민다나오 분쟁 원인이 가톨릭-이슬람 간 종교 분쟁임을 파악하고 양측 지도자들을 모아 민간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 이는 2014년 이 대표를 통해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이룬 지 4년여만의 결과다. 이 장면은 필리핀 국영방송 PTV와 민영방송 등을 통해 보도됐다.

이 소식은 곧바로 필리핀 정부군과 이슬람군 측에 전해지면서 바로 다음날인 25일 필리핀 정부와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은 남부 방사모로 지역의 이슬람 자치권 인정과 1만여명에 이르는 모로이슬람해방전선 무장해제 부속문서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세부 법안을 마련하고 그해 3월 공식 평화협정을 맺었다.

2015년 6월에는 실제 MILF의 무기반납도 이뤄졌다. HWPL과 필리핀 현지인들은 분단 상태인 한반도에도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하며 내전에 사용된 무기를 녹여 2015년부터 현재까지 필리핀에 총 11개의 HWPL 평화기념비를 세웠다.

민다나오에는 바실란, 남라나오, 술루, 타위타위, 마긴다나오 등 5개의 무슬림 자치구가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마긴다나오주는 매년 ‘1월 24일’을 ‘HWPL DAY(세계평화선언 기념일)’로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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