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시내에 들렀다 귀가하는 길의 지하철 안은 일요일 오후라 다소 붐볐다. 어느 환승역에선가 승객이 타고 내렸는데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내 옆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부부로 보이는 그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에 조금은 큰 목소리이다 보니 그들의 평상적인 대화를 필자가 자연스레 엿듣게 됐다. 남의 말이라 귀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으로 봐서는 예식장에 다녀오는 길 같았다.

부인은 예식장에서 겪은 일과 자신의 생각을 남편과 주고받았는데, 처음에는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지금 철이 결혼 시즌이고, 또 그들의 대화에서 시류에 맞는 말들도 있어 계속 들었다. 신랑신부 아버지가 인사했다는 말과 요즘은 주례 없는 예식이 많고, 하객들이 뻔한, 형식적인 주례사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니 아마도 그들이 다녀온 예식장에서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린 것 같다. 결혼풍습도 그렇게 바뀌고 있으니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나 할까.

청춘남녀가 만나 일가친지와 하객을 모신 가운데 백년가약을 맹세하는 결혼식은 경건한 의식으로서 주례가 예식의 중심에 서서 의식을 주관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서는 세태가 바뀌어서인지 주례나 주례사보다는 신랑신부 친구들이 부르는 축가나 연주, 신랑이 건강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신부를 안고 힘자랑을 하는 장면은 어느 결혼식장에서 볼 수 있는 일반화된 모습이다.

과거에 주례선생님은 신랑신부의 은사님이나 혼주와 연이 닿는 사회 저명인사들을 모시고 주례사를 신랑신부가 새겨들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였지만, 이제 주례사는 결혼식 진행상 존재하는 하나의 절차로 여길 정도다. 언젠가부터 길게 하는 주례사에 하객뿐만 아니라 신랑신부마저 귀찮아하고 하객들이 들으나마나 해서 들을 필요가 없다고 하니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그만큼 세속이 실리 위주로 흐른다는 이야기다.

결혼식과 관련된 부부간 대화를 지하철 안에서 본의 아니게 듣고 보니 주례나 주례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주례 없는 예식이 늘고 있다고는 하나, 하객이 많지 않고 가족끼리 하는 결혼식이 아닌 다음에야 예식을 주관하는 주례가 필요하고, 신랑신부가 평생 결혼식에서 새겨들을 주례사를 듣는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의미가 크다고 필자는 생각해본다.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 변하고 진취적으로 흘러 자신의 결혼식에서 주례 없는 예식을 하고,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이벤트성 행사를 꾸민다고 하지만 결혼식이 신랑신부만을 위한 의식은 아닌 것이다.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일가친지, 그리고 하객들 앞에서 부부로서 가정을 이루어 잘 살아가면서 사회와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사회인으로 각오를 다지는 자리이니 경건하고 진지한 예식이 되는 것도 뜻있고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집으로 오는 도중에 그 부부가 내렸지만 필자는 결혼식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보았다. 그 생각을 하던 중 지난 가을에 결혼한 누님 아들과 고향 친구 아들 부부가 11월에 우리 집에 인사차 찾아왔다. 필자는 두 부부를 위해 지어놓은 결혼 축하 시를 선물로 주면서 특히 친구 아들 부부에게 앞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하나는 비익연리(比翼連理)에 관한 이야기다. 비익은 전설의 새, 비익조를 말함이고 연리는 연리지 나무를 말한다. 비익조는 암수가 각각 하나의 날개와 눈 밖에 없는 전설의 새인데, 두 마리가 함께 날아야 방향을 바르게 보고 제대로 날아 갈 수가 있다. 또한 연리지는 뿌리는 따로 있으되, 성장하면서 몸체가 하나를 이루며 커가는 나무임을 알려주면서 두 사람이 ‘비익연리’가 되라고 당부했다. 즉, 연리지처럼 비록 성장은 따로 했지만 부부가 된 만큼 한 나무가 되어 풍성함을 이루고, 비익조와 같이 서로 의지하면서 모범 가정을 이루라는 주문이었다.

또 하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줄여서 ‘청람’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자식이 부모보다 더 나은 경우에 사용되기도 한다. 신혼부부에게 아버지보다 더 훌륭히 돼서 가문을 번창시키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자식 된 기본 도리임을 알려주면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라고 당부를 했다. 친구 아들 부부는 마음에 새겨 꼭 그렇게 되고 싶다고 했다.

하이네 시인은 ‘결혼은 어떤 나침반도 항로를 발견한 적이 없는 거친 바다이다’라 설파했다. 청춘남녀가 사랑을 갖고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힘을 합쳐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경구일 것이다. 바야흐로 선남선녀들이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결혼 시즌이 이 땅에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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