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2013년이 조용히 묻히고 있는 시기에 생각해보니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한 해였다. 한 해의 세밑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하다고 하지만 올해만큼 다사다난했던 해도 드물어 보인다. 작년 12월 19일 대선이 끝나고 나서는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았던 세월은 올 1년 동안 온갖 멍에와 의혹으로 얼룩진 가운데 국·내외적으로 매우 시끄러웠던 한 해다.

새 정부가 들어서던 시기에 온갖 인사 잡음과 불통으로 말들이 많았고, 지역갈등, 이념갈등 등 사회 갈등이 여전한데다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터지고, 여러 가지 의혹이 쌓여갔다. 국민경제가 바닥을 치는 세월동안 민생에는 아랑곳없이 새누리당은 새 정부 눈치 보느라 안달하는 사이에 민주당에서는 국정원 특검 등을 내걸고 국회의사당을 뛰쳐나와 거리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 터에 대선 불복이 1년 동안 계속 이어져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시기에 12월에는 철도노조 파업까지 겹쳐 국민의 발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의 주도권 다툼이 끊이지 않는 등 강대국 간의 알력 속에서 북한 내 속사정은 더욱 복잡한 양태를 보이며 짙은 안개를 드리우고 있다. 언제 어떤 상황으로 변할지 속단할 수가 없으니 국민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이처럼 국가와 국민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과 긴장감이 계속되고 있으니 앞으로의 양상을 잘 모르는 국민 입장에서는 시야 제로로 아둔할 뿐이다.

그런 사정에 국내정치라도 잘 됐음 했건만 정치 혁신을 하겠다며 올해 벽두부터 떠들어대던 정치권은 특권 내려놓기는커녕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영향력과 파이를 키워 가는데만 힘쓸 뿐 당초 약속했던 새로운 정치는 증발돼버렸다. 국민이 정치를 불신할 때마다 의원들은 특권 내려놓기를 약속하면서 그때만 피해갔고, 그들 스스로 맹세한 의원 보수 반납, 국회의원 의석수 줄이기, 기초단체 정당공천제 폐지 등 정치적 약속은 줄줄이 뒤로 미룬 채 묵묵부답이다.

올해 내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과 공개 과정에서 ‘NLL 포기’ ‘대화록 사전 유출’ 등 논란이 일어 정치권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이 많았다. 또한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작업’이 사실로 드러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데다가,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과 개인정보 불법 유출에 청와대 행정관이 연루돼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경제부문에서도 작년보다 힘들었으면 더 힘들었지 나아진 게 별로 없다고 이구동성이다. 대졸 청년 백수는 늘어나고, 계층 간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부동산시장의 장기 침체로 가구 부채의 부담 증가, 경기 부진에 따른 자영업자 수 감소가 소비 여력을 약화시키면서 내수시장이 얼어붙어도 대기업들은 현금을 움켜쥐고서 아직 시기가 아니라며 몸을 움츠려들고 있으니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런 마당에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 국정과제에 포함돼 시동을 걸었으나 진척이 더디니 서민들은 답답할 노릇이다.

올해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국민 불만이 이어지니 시류는 불안하고 국민이 불편해한다. 그 원인은 올 한 해를 특징짓는 사자성어로 대학교수들이 꼽은 도행역시(倒行逆施)에서 나타나는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이 말은 “박근혜정부의 출현 이후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가 고집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는 시사점을 준다. 더하여 어지러운 현 시국을 꿰뚫는 고려대 학생의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도 올해의 어두운 시대상을 투영하면서 도처에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울림으로 번져났다.

국민의 마음을 뒤흔드는 대자보는 영국의 버나드 쇼(G. Bernard Shaw : 1856∼1950)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쇼는 ‘쇼에게 세상을 묻다’는 작품에서 사람이 세상 살아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생활정치에서 구하고 있다. 즉 “정치에 무관심하고 사회현상에 무지한 사람들이 존재함으로써 정의와 민의가 왜곡된 대표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는 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한다”는 그 혜안은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의 요체에서 묻어나고 있다.

결국 대자보 정신과 쇼의 정치사상은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한다면, 사회의 잘못된 구조로 인해 받는 고통과 아픔은 우리가 잘 몰라서 정치적으로 당한 결과물인 것인데, 국민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당하지 않으려면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정치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 여기서 시민사회는 권력의 앞잡이가 아니라 깨어있는 자들의 몫이다. 세밑에서 걱정돼 물어보는 ‘안녕들 하십니까?”에 국민이 고단한 삶을 표출하고 ‘안녕하지 못하다’는 메아리는 정말 허망하게 지나가는 격정의 2013년이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