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기 마련이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보수-진보 간 이념 대립이 재점화된 것 같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 국민의식조사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정치적 갈등(41.6%)’을 꼽았고, 그 다음으로 진보-보수 간의 이념 갈등(26%)을 들었다. 그로부터 4년여 흐른 작년 말 조사에서는 ‘이념 갈등’이 사회 갈등의 선두에 올랐다. 14개의 여러 갈등 지표 중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은 정부정책을 둘러싼 집단 간 갈등 가운데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해묵은 이념 대립이 제18대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 화두에 전면으로 등장했고.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NNL발언 등을 통해 더욱 확산된 결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사회 갈등이나 정치적 갈등을 조정·해소할 책임이 있는 정치권과 정당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장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의혹 짙은 무책임한 발언을 해 엉뚱하게 일부 국민과 사회단체에서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바뀌고 난 뒤 1년은 국가·사회의 발전을 위해 소중한 시기다. 5년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기간이었지만 정부조직에서부터 각료 인선 문제까지 겹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 풍토는 개선되지 않고 정치권에서는 자당의 이익만을 우선했다. 무릇 정부 초기에는 여야나 국정 중심 세력들이 화합해 경제적 난관을 뚫고 국리민복을 위해 힘써야 하건만 정치권이 사사건건 대립하거나 보수-진보 간의 알력 다툼으로 답답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어느 사회든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은 존재해왔고 정당과 연계하여 흥망성쇠 등 부침을 계속해온 건 사실이다. 필자는 한때 정당에 몸담았던 관계로 정당정치로 대변되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많아 상세히 언급해본다. 영국, 프랑스 등 외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19세기 중반에 정당제도가 마련되고 출현해 180여 년의 역사 위에서 정당이 발전되고, 정당정치를 보여 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이후에 정당제도가 도입돼 그 역사는 일천하다.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대의민주주의가 주류를 이루므로 대중을 위한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정부수립 이후에 주요 정당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고 그 주류를 이어왔는지, 또한 현재의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과거 어떤 정당과 연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야만이 정당 계승의 흐름이나 그 정체성(正體性)을 알고, 보수-진보에 대한 접근과 함께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길을 찾기 쉽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에서다.

해방되고 난 뒤 남한에 존재하는 정당의 구조를 보면, 민족주의계 정당과 사회주의계 정당이 있었다. 민족주의계 정당으로는 이승만 중심의 독립촉성국민회와 김성수, 송진우 등이 중심이 된 한국민주당이다. 그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주의, 자본주의를 내세운 남한에서는 사회주의계 정당(공산주의계)이 숙청되고 남게 된 정당은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된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과 한국민주당에서 당명이 바뀐 민주당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의 자유당은 자본주의 안에서 보수로, 신익희가 이끄는 민주당은 진보로 성립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신봉과 시장경제를 중시해왔다. 정당의 이음을 본다면, 이승만 중심의 독립촉성국민회가 자유당이 되고,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한국민주당은 민주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등을 거쳐 통합민주당이 됐다가 다시 ‘민주당’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정당의 흐름에서 보듯이 1945년 해방 당시 한반도의 상황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모두 진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과는 상관없이 자유민주주의는 보수로, 사회주의는 진보로 규정받게 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정강 정책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신봉으로 인해 유럽의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복지지향으로 진보로 기울어진 사회주의국가보다 더 보수 쪽을 편향하고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제는 시대와 역사에 맞는 보수-진보 개념을 정확히 구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양편으로 갈라져 있지만 이념의 혼재로 인해 국민의 이념의 일관성은 그리 높지 않다. 사안에 따라 보수가 될 수 있고 진보가 된다. 그럼에도 단순한 이분법으로 새누리당을 ‘수구꼴통’이라거나 민주당을 ‘좌빨’이라는 것은 정치권이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이념 대립을 첨예화시켜온 결과로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자 병폐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바는 이념 논쟁이 아니다. 그릇된 정치권과 이념 단체가 편을 갈라 논란에 국민을 끌어들이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요, 서민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하루빨리 사회에서 무익한 ‘이념 갈등’을 잠재워야 함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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