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2014 수능 발표가 이틀 앞으로 바짝 다가왔는데, 수험생들이 제기한 세계지리 문항에 출제 오류가 있다는 항의에 대한 안일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조치나 교육부의 태도는 답답하다. 수험생들이 문항의 잘못된 답안에 대해 합리적인 내용을 짚어 이의신청했지만 평가원 측은 일반 국민이 생각해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기각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그대로 수능성적 통지가 될 경우 일부 학생들은 소송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대학입시를 위한 전략 짜기에 바쁜 학생들이 나서서 소송을 진행하려 하겠는가. 국가기관의 시험 출제와 관리는 공정·엄격해야 하며, 사전에 출제 오류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지문 내용의 앞뒤를 가려 현실 상황에 맞는 정확한 답을 가려줘야 오류된 문제로 인해 수험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출제상 오류에 대해 이의신청을 받아 검토한 평가원의 최종 결정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인 수험생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법적문제로 번질 소지가 크다.

출제 오류를 일으킨 세계지리 8번 문항을 살펴보자. 세계지도상에 지역경제협력체 A, B를 표시해놓았는데, 그 범위로 보아서 A는 유럽연합(EU)이고, B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보인다. 출제된 문항 내용은 EU와 NAFTA에 대한 옳은 설명을 고르는 문제다. 이 문항에서 평가원은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는 보기가 맞는 것이라 보고 문제를 냈고 정답으로 인정하고 있는바, 현행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사정이 다르다. 교과서가 집필된 2011년만 하더라도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컸다. 하지만 2012년경부터 상황이 변하여 북미자유무역협정 회원국인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의 총생산액은 18조 6800억 달러, EU의 총생산액은 16조 5700억 달러로 역전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수능시험을 치룬 2013년 11월 7일 현재에서 본다면 평가원이 판단하고 있는 정답은 정답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수험생들이 출제 오류에 대한 이의신청을 한 것임에도 평가원 측에서는 “세계지리 교과서와 EBS 교재에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일반적 내용이 있고 2007∼2011년 통계도 마찬가지”라며 이의신청을 기각했던 것이다. 특히 출제된 문항 속 세계지도 하단에는 ‘(2012)’라는 표시가 들어가 있어 수험생들이 2012년 상황과 통계로 판단하기엔 충분한 여지도 있었다. 그러함에도 평가원 측은 “유엔의 2011년 통계에는 유럽연합의 총생산액 규모가 더 큰 것으로 나온다”고 주장하면서 과거의 통계를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시험문제에서든 기술(記述)이 어떻고, 과거에는 어찌되었던 간에 그 질문의 문제는 현실을 묻는 것이고 최근의 통계자료를 사용해야 맞다. 설령 교과서의 편찬 시기가 몇 년 전이라서 현실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일부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통계 수치를 바르게 알고 지적해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도 2012년 유럽의 경제적 어려운 사정에 대해 언론을 통해 EU와 NAFTA의 현 실정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번 수능시험에서 세계지리를 선택한 수험생들은 모두 2만 8775명이다. 이 가운데 평가원이 인정하고 있는 정답을 선택한 학생들에게는 다행이겠지만 다르게 답한 수험생은 그 오류의 내용을 알든 모르든 간에 문제가 된다. 이번 세계지리는 평이하게 출제돼 3점짜리인 그 문제의 정답 여부에 따라 등급이 바뀔 수 있다고 하니 평가원은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국가기관이 관리하는 각종 시험 출제는 신뢰도와 타당도가 있어야 한다. 특히 내용의 타당도가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에 오류가 없어야 응시생들의 실력이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데, 이번 수능에서 수험생들이 이의 제기한 내용은 통계청의 통계에서도 나타나듯이 평가원에서 판단하고 있는 정답과는 명백히 상치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원이 “과거의 수치와 교과서에 있다”는 비합리적, 비현실적인 주장은 상식적으로 어패가 있을 뿐더러 수험생들의 이의신청을 기각한 점에 문제가 따른다.

발표일이 임박하여 세계지리 선택자 중에서 평가원의 답을 택하지 아니한 수험생들에게는 큰 피해가 갈 수 있다. 일부 수험생들과 관련자들의 집단소송 제기가 뻔한데, 법원이 출제오류를 인정해 결과적으로 소송에 참가한 수험생들만 선별적으로 구제되는 상황이 닥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고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자칫하면 가래로 막을 수 있던 것을 쟁기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올 수 있는데 그렇다면 국가 시험기관과 교육부에 대한 국민의 질책과 불신은 가중될 것이다. 수능 오류 문제를 보는 당국의 안일한 작태가 그래서 답답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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