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서 비롯된 사건이 마침내 정당해산 제소로 이어져 정치계뿐만 아니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의원과 관련된 형사사건은 현재 재판 중에 있고, 앞으로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판결이 나겠지만 이 사건 결과와 별도로 정부는 지난 5일 국무회의를 열어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의결했다.

대한민국헌법 제8조 제4항에서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쿠데타 같은 정변(政變)이 아닌 평상시에 헌법절차에 따라 정당해산이 결정된 사례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게 법조계와 관련 학계의 공통된 견해인데, 국내에서는 과거 이승만 정부 때인 1959년 2월 ‘조봉암 사건’으로 ‘진보당’이 해산된 것이 거의 유일한 선례다. 그 당시 대법원은 조봉암 관련 재판에서 ‘진보당의 정강정책이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결했지만 이승만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정당 해산을 강행한 것이어서 이번 사례와는 다른 측면도 있다. 또한 그때는 정당제도가 헌법상에 도입되기 이전의 시절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정당제도는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 헌법에서 정당보호 규정을 두었고, 제3공화국 헌법에서 정당에 관한 많은 규정을 두어 비로소 정당국가적 경향을 띄었다. 현행 헌법에서도 정당에 관한 제도는 그 때와 마찬가지다. 정당의 적극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정당에 대한 보호조항이 있는가 하면, 이와 함께 정당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긍정할 의무, 국가를 긍정할 의무가 있으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수동적 지위도 있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의사를 형성하여 정책을 구체화시키는 국민의 자발적 정치결사체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정당은 헌법상 국가의 보호를 받는 반면, 그 목적과 활동에 있어서도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러한 입장에서 이번 통진당에 대한 정부의 위헌정당 해산 청구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한 보루로서 행한 것이라 하겠지만, 동시에 청구한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원직 상실 선고 청구는 현행 헌법이나 법률에 정당 해산 시 의원직 자격 상실이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해 명문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 부분까지 헌재가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마저 예상된다.

정당정치는 현대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일찍이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치가 민주주의의 꽃으로 피어났지만, 사회공동체의 규모 확대와 인구의 급팽창 등과 함께 사회구성원 모두가 정치나 공동관심사의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관계로 대표자를 내세우는 등 점차 간접민주주의로 돌아서게 됐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전문성과 효율성의 논리에 근거하여 대의(代議)민주주의의 필연성이 대두되면서, 영국,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정당제도가 뿌리내렸고, 우리나라에서도 정당이 정치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정부의 위헌정당 제소에 따라 헌재에서는 180일 이내에 통진당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한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통진당의 모태가 된 과거 민노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질서를 위배한 사례까지 언급하면서 8000여쪽 분량의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상에 규정된 ‘정당 보호’라는 적극적 지위와 ‘국가와 민주적 기본질서’를 긍정해야 될 소극적 지위 간의 대의(大義)에 맞춰 헌법 규정에 따라 판단할 테고, 그 과정에서 핵심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일 것이다.

통진당에 대한 해산 심판은 이석기 사건과 관련성이 있다. 그 사건의 빌미가 된 지난 5월 12일 이석기 의원과 경기도당 핵심 간부들이 참석한 회의에 관해 통진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당의 공식 당원 회의”임을 시인했고, 통진당에서도 이를 확인했다. 그날 있은 내용, 이석기 의원 등이 내란 음모를 했는지 여부는 관련자들이 현재 재판을 받고 있으므로 그 결과에서 나타날 것이다.

만일 내란음모 혐의가 유죄로 확정된다면 통진당의 공식공사였던 만큼 통진당이 국가의 긍정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했다는 증명이 되리라 본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보루다. 그래서 헌법 제8조에서도 복수정당제의 보장, 정당의 보호·지원 조항이 먼저 있고, 정당해산 조항(제4항)은 후미에 있다. 제4항의 ‘관권의 개입에 의한 정당의 해산의 경우에 있어서는 일반결사와는 달리 헌법이 정당에 특별한 특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른바 정당특권(政黨特權)이다.

그러므로 헌법은 정당의 강제 해산에 있어 엄격하게 규정한다. 헌법상 기본권에 대한 일반적 유보(留保)조항인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하여는 정당을 해산할 수 없으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될 때에 한하여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써만 해산되도록 한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국민은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심판보다는 이석기 사건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에 더 무게감을 싣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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