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이 호조를 보여 교역액이 2년 연속 1조 달러를 넘어섰고, 경상 수지 흑자가 약 650억 달러 규모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가계나 국민 개인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냉랭한 것은 내수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수를 살려야 할 기업에서는 정부 규제를 빌미삼아 2년 연속으로 투자를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작년 경제성장률 2.8%는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대만 다음으로 꼴찌 수준이다.

새 정부 출범 2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에서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규제 철폐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정부 규제가 많은 상태에서는 기업이 흉내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비전 제시다. 투자 여건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 기업이 공격 투자를 할 여건을 만들어줌으로써 꽁꽁 언 국내 내수시장에 훈풍이 돌게 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정부 발표를 보면, 앞으로 새로운 규제를 신설할 경우 신설량만큼 기존 규제를 폐지하는 규제총량제를 도입하고 투자 관련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규제 개혁 차원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만든다는 등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규제총량제’는 이미 참여정부에서 실시한 적이 있고 조직 기구도 있어왔다. 아무리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전담 하부조직이 활성화되지 않고서는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규제는 국민생활의 향상과 독과점 방지 등을 위해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고 기업의 자율성을 옥죄는 규제도 많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규제 철폐 내지 완화 정책당위성을 갖는다. 정부 규제 완화가 경제분야에 치중되는 느낌인데, 규제가 비단 경제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 행정, 문화 등 국정 전반에 규제가 많이 있는 관계로 기업인이 아닌 일반국민도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규제 이론을 따져 봐도 규제의 종류로 산업 또는 경제분야를 규제하는 경제적 규제와 공공복지분야를 규제하는 사회적 규제가 있는 것이다.

규제는 어떤 행위를 강요 또는 금지하기도 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신중을 요하는 대상이다. 그런 관계로 어느 정부든 출범 후에 바로 착수하는 게 규제 철폐 노력이다. ‘규제 완화만이 살 길이다’고 주장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는 행정규제기본법을 제정했고, 1993년에는 행정쇄신위원회(위원장 박동서 서울대 교수)를 조직하여 국민의 편에서 행정개혁과 함께 비현실적인 행정법령을 고치고 공무원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 이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를 거쳐 현 정부에서도 규제 완화는 핵심 과제가 되고 있지만 국민과 기업 입장에서는 각종 규제를 피곤하게 느끼는 건 사실이다. 규제 건수를 살펴보면, 문민정부 시절 수천 건의 규제가 국민의 정부 초기에 1만 건을 넘어섰다가 지속적인 규제 철폐 정책에 힘입어 7천여 건으로 줄어들어 참여정부로 이어졌다. 참여정부 때인 1997년에는 5100건 정도에 불과했던 규제 건수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9700여건이 증가해 1만 4889건이 됐고, 박근혜정부에서는 작년 말 기준으로 총 1만 5070건으로 늘어나게 됐다.

특히 이명박정부에서는 규제를 잘못 설치해놓은 전봇대에 비유해 ‘전봇대를 뽑겠다’고 요란했지만 실패했는데, 그 원인으로 의원 입법을 들고 있다. 정부입법의 경우에는 규제 조항이 입법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까다로운 검증 단계를 거치지만, 의원입법의 경우에는 그대로 법제화되어 국민과 기업을 옥죄는 경우가 많다. 종전 정부에서 6천 건이 넘지 않던 의원입법이 이명박정부 때에 1만 2220건이나 성사됐으니 규제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대통령의 규제 철폐에 대한 의지도 물론 중요하다. 거기에 더해 기업 진흥이나 산업 발전 또는 국민 편익을 위해 ‘잘못 박힌 대못’을 뽑는 데에는 활성화된 조직이나 기구가 필요하다. 현재 규제 업무는 국무총리실이 관장하고 있다. 이번에 규제조정실장 직위를 개방형 직위로 변경해 공모절차를 이행하고 있다지만, 과거 문민정부의 행쇄위 시절과 비교해볼 때에 인력 등이 매우 빈약하다. 당시 행쇄위는 대통령 자문기구였으나, 실제 업무 추진은 총리실이 맡아하면서 행정실장(1급)과 4개과 30명 정도의 별도 전담 조직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민의 짐이 되고 기업에 대못으로 남아있는 규제를 뿌리 뽑아 내수를 활성화시킨다는 규제 철폐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철저한 준비와 강력한 추진체가 있어야 한다. 또한 지난 정부의 성패를 거울삼아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 개혁 장관회의도 필요하겠지만, 그에 더하여 과거 행쇄위와 같이 모든 법령, 제도, 공무원의 행태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는 조직의 확대·강화가 이루어져야 함이 무엇보다 선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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