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향후 3년간 240조원 투자와 4만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지난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복귀 이후 내놓은 발표보다 60조원이나 증가한 수준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 후 11일 만에 내린 결단으로, 정·재계에서 거론되는 ‘이재용 역할론’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위기 때마다 대규모 투자로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삼성의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엘지전자와 삼성전자에서 각각 근무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육성 경영전문 컨설턴트 박광수 칼럼니스트의 경험과 에피소드가 이 질문에 답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전직 삼성맨의 삼성이야기

<24> 삼성의 시나리오 경영

미래 위험요인 최소화 위한 경영

상황별 시나리오 따른 대책 강구

이건희, 1996년 신년사에서 언급

 

해외 업체 프로세스 삼성 벤치마킹

삼성전자-삼성경제연구소에 적용

40여년간 성공, 시나리오 계속 필요

‘시나리오 경영’이란 갈수록 불안감을 더해가는 경영환경에서 위험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영기법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경영환경의 변화를 최대한 예측해 향후에 일어날 것이라 예상되는 변화과정을 시나리오로 그려 대안을 마련하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상황에 따라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는 전략에서 나왔다.

스포츠 경기를 예시로 들면 올림픽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 경기에서 감독은 경기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에 맞춰 작전 중 하나를 선택하고 유도 경기에서도 힘을 아끼다 10초를 남기고 한판승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등 다양한 전략이 시나리오처럼 적용된다. 프로야구에서도 야신(야구의 신) 별명을 갖고 있는 김성근 전 야구 감독은 각종 통계를 기반으로 철저하게 작전을 짜 최하위 전력의 쌍방울레이더스를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리는 등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며 히딩크 축구 감독 역시 경기마다 적소에 맞는 작전으로 한국 축구를 월드컵 4강까지 올렸다.

회사 경영에서의 시나리오는 정답을 보여주기 보다는 최적의 해답을 찾아가도록 개인과 조직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혹 실패를 하더라도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더 큰 실패를 하지 않도록 미리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즉 기업 대표들은 불안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시나리오 경영을 통해 차선을 항상 준비하는 셈이다.

ⓒ천지일보 2022.2.10
ⓒ천지일보 2022.2.10

◆이병철 회장부터 시작한 시나리오 경영

삼성그룹의 시나리오 경영은 1996년 이건희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강조하면서 알려졌으나, 필자는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 때부터 시작 됐다고 판단한다. 아들 3형제에 대해 혹독한 경영훈련을 시켜 왔으며 어려운 숙제를 주며 아들들이 스스로 시나리오를 짜고 해결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힘든 과제를 해결하며 후계자로 낙점을 받은 분이 바로 이건희 회장이다. 이병철 회장은 후일을 위해 장남 이맹희는 제일제당, 차남 이창희는 새한미디어, 장녀 이연희는 전주제지, 5녀 이명희는 신세계 백화점을 나눠주며 스스로 성장하는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보인다.

경영 여건이 좋아 보여도 항상 ‘위기’를 강조하던 이건희 회장은 1996년 신년사에서 시나리오 경영을 화두로 꺼내며 강조했다. 또 여러 상황을 가정해 각각에 맞는 최적의 대비책을 세우라고 주문했다.

이에 삼성은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구축해 이에 따라 신수종 사업이나 제품개발 전략을 조정해 나갔다. 대표적인 예시가 ‘블루레이 전략’이다. DVD 시대 이후 어떤 것이 차세대 저장 장치가 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HD DVD와 블루레이가 후보로 부상한 가운데 삼성은 일단 두 가지 기술 모두에 과감히 투자 했고, 일정 시점에 시장에서 블루레이에 대한 반응이 오자 블루레이에 올인해 성공한 사례다.

또한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21세기 일본 전자산업의 시나리오를 예측해 국내 반도체와 컴퓨터 등 주력 산업의 몰락이나 성장과 후퇴 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도 했다.

ⓒ천지일보 2022.2.10
ⓒ천지일보 2022.2.10

◆해외 업체 경영 프로세스를 적용하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40여년간 시나리오 경영을 통해 효과를 봤다. 특히 이건희 회장은 세븐 시스터스(세계 7대 석유 회사) 중 하나인 네덜란드 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을 벤치마킹하면서 이 회사의 시나리오 경영 성공 사례를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은 로열더치셸이 ▲장수기업을 분석해 위기에 대처하는 시나리오 경영을 수립 ▲위기 발생 시 나타나는 현상을 리스트로 작성 ▲오일쇼크 가능성을 감지해 260여개 사업부로 사업 권한을 위임, 자율경영을 시행 ▲1차 오일쇼크 발생 시 대비한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7위에서 2위로 급부상 했다고 강조했다며 이 같은 시나리오 경영 프로세스를 정착 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를 상세히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나리오 방향 설정: 핵심 이슈 파악과 시나리오 설정

2. 의사 결정요소 파악: 핵심 이슈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무엇을 알아내야 하는지 밝힘

3. 환경 요인 파악: 거시적 환경요소인 PEST

(Political Economic Social and Technological Analysis) 분석과 마이클 포터의 5 Force(기존 경쟁자, 잠재적 경쟁자, 대체재, 공급자의 교섭력, 구매자의 교섭력) 분석으로 의미 있는 환경요인을 찾아내고 관련된 모든 정보를 확인해 그 의미를 이해하는 중점을 두는 것

4. 시나리오 도출: 핵심 환경요인을 기반으로 시나리오 밑바탕과 골격을 형성

5. 시나리오 작성: 시나리오 골격과 트렌드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미래를 예측

6. 대응 전략 최종 수립: 시나리오별 가장 최적인 전략 대안을 꼽기 위해 발생 가능성, 모든 시나리오 고려, 위험 감수 정도, 최적의 시나리오 등을 판단함

그렇다면 이는 어떻게 삼성에 적용됐을까.

1. 시나리오 경영 회사로 ‘삼성전자’ 선정: 이건희 회장이 1996년 시나리오 경영 중요성 강조 이후 각 계열사에서 준비

2. ‘삼성경제연구소’를 시나리오 경영의 출발점으로: 주요 추세 분석, 주요 어젠다 설정 및 경영 활동에 필요로 하는 각종 정보 제공

3. 삼성경제연구소와 협력해 경제 전망과 동향을 예측하며 운영

4. 기업 내 경영전략 담당부서 신설 배치

이를 토대로 삼성전자의 시나리오 경영을 살펴보면 1) 경제연구소에서 가이드라인 제시 2) 각 사업부에서 사업계획서 마련 3) 사업 계획 취합 조정 4) 변수에 대응하는 시나리오 사업부별로 준비 5) 각 사업총괄 중장기 계획 아래 사업계획과 로드맵 재설정 6) 1차 로드맵, 세부 로드맵 계획 중복체크 7) 시나리오 전사 시스템과 연동해 미세 조정 8) RM(리스크 매니지먼트)팀과 경영기획팀 지원 하에 시나리오 최종 운영 등이다.

필자는 삼성전자의 시나리오 경영 성공 요인을 7가지로 본다. 바로 ①전략 지능 ②환경 대응성 ③대응체제 및 방식 ④프로세스 능력 ⑤전개 능력 ⑥자원 능력 및 확보 능력 ⑦위험 대응 능력이다.

작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51조 5700억원으로 전년 35조 9900억원 대비 42.29% 상승했다. 그러나 여전히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경제 불안,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수출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 반도체 도전 플랜 수립, 각종 재판 수사 등에 따른 부담 등 위험성은 산재해 있다. 또한 일본의 수출규제로 공급망 혼선도 발생한 만큼 삼성전자는 일본 의존도 높은 품목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시행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 빨리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 조치를 내려 삼성의 선대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업보국(事業保國, 기업을 일으켜 나라에 이바지하다) 정신을 상기시키고 삼성의 백년대계 전략이 시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본다.

(정리 = 이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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