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향후 3년간 240조원 투자와 4만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지난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복귀 이후 내놓은 발표보다 60조원이나 증가한 수준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 후 11일 만에 내린 결단으로, 정·재계에서 거론되는 ‘이재용 역할론’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위기 때마다 대규모 투자로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삼성의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엘지전자와 삼성전자에서 각각 근무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육성 경영전문 컨설턴트 박광수 칼럼니스트의 경험과 에피소드가 이 질문에 답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전직 삼성맨의 삼성이야기

<15> 그린컴퓨터로 시장 1위 오른 삼성

80년대 국내 PC 시장 문 연 삼보

삼성·LG·대우도 PC 연이어 출시

국민학교 보급 컴퓨터 입찰 전쟁

삼성 입찰 성공하며 신흥강자로

 

‘환경친화’ 그린컴퓨터 성공하며

삼보 이기고 국내 시장 1위 탈환

공격적 마케팅·경쟁사 제품 대응

26년째 PC 부문 정상 자리 유지

PC(Personal Computer)의 시초는 제록스 PARC이 1973년 개발한 ‘제록스 알토(Xerox Alto)’다. 이 제품은 당시 데스크톱 변형과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이용한 최초의 컴퓨터로, 이후 애플 매킨토시의 설계에 큰 도움을 준다.

이어 1976년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1’이라는 세계 초유의 8비트 PC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1년 후 세계 최초의 상용화된 완제품 애플2가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PC 시대가 열린다.

필자도 한때 PC를 처음보고 호기심에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로 가서 한달 급여분의 비용을 들여 부품을 구입하고 회로도를 입수해 직접 8비트 PC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출처: 삼성뉴스룸, 뉴시스)
(출처: 삼성뉴스룸, 뉴시스)

◆삼보로 시작한 국내 PC 시장

한국에서는 ‘벤처산업의 전설’이라 불리는 이용태 삼보컴퓨터 창업자가 미국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창업자 빌 게이츠 보다 더 일찍 PC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정부와 대기업 등에 “아무도 시작하지 않는 시기에 한국이 PC 개발에 나선다면 세계 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으니 엔지니어 100명을 3년간 지원해주면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적극 제안했지만 뜬구름 잡는 말이라며 단번에 거절을 당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은 1980년 열정 있는 엔지니어 7명을 모아 자본금 1천만원으로 삼보전자엔지니어링(후일 삼보컴퓨터)을 설립해 PC를 개발하고 수출까지 하게 된다. 삼보컴퓨터는 한때 미국, 중국, 일본, 멕시코 등 글로벌 현지 생산 공장을 설립해 세계 최고의 PC 생산 기반을 구축한 글로벌 제조업체로 성장했으나 이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삼보의 성공 후 창업 붐이 불면서 세운상가에서는 한국마이컴, 희망전자, 석영전자, 골든벨 등 신생 제조사들이 우후죽순 늘었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정보산업 육성방안의 일환으로 교육용 PC 보급에 나서 5천대를 구입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삼성전자도 1983년 3월 8비트 데스크톱 컴퓨터 SPC-1000을 출시했다. 경쟁사인 LG전자는 패미컴FC-100을, 대우전자는 이이큐 1000(MSX시리즈)을 연이어 내놨다.

◆마감 1분전 PC 2만 8천대 입찰 성공

1991년쯤 당시 체신부 산하 기관인 전화국에서 운영하던 공중전화기의 낙전 수입이 연간 수십억이 나오자 체신부는 컴퓨터 내수시장 확대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예산 138억원과 낙전 수입금을 합쳐 전국의 국민학교에 PC를 각 31대씩 무상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공개입찰공고를 냈는데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대우전자, 삼보컴퓨터를 포함한 10여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한다. 그러나 통신공사(현 KT)가 PC 한 대당 44만원 이하의 가격과 무상 A/S 3년이라는 무리한 조건을 내세우자 일각에서는 단합을 해 입찰을 무산시키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당시 PC 중 가장 저렴한 모델만 해도 60만원 후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에서 이 입찰을 담당한 필자는 단독 수의계약은 불가능하므로 사전에 로얄컴퓨터와 협조해 PC 한 대당 40만원대로 입찰가를 마감 1분 전에 적어 내면서 PC 2만 8천대 입찰을 성사시켰다. 당시 PC의 제조원가는 30만원대 초반으로 삼성전자는 큰 손해를 보지 않았으며 더구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잠재적으로 삼성전자를 노출시키는 마케팅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PC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이어 오락기인 삼성 겜보이와 알라딘 PC까지 인기를 얻으며 국내 PC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장동건(위), 임수정 등 당대 최고 스타를 기용한 삼성전자 노트북 센스 광고. (출처: 유튜브 캡처)
장동건(위), 임수정 등 당대 최고 스타를 기용한 삼성전자 노트북 센스 광고. (출처: 유튜브 캡처)

◆그린컴퓨터로 PC 강자 오르다

이후 삼성은 1995년 획기적인 PC인 ‘그린컴퓨터’를 전격 출시했다. 그린컴퓨터는 환경을 살린다는 의미로 브랜딩 됐는데, PC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절전모드로 전력 소모량을 대폭 줄이고, 의도치 않게 전원이 꺼질 경우 문서 저장을 자동화하는 세컨드 메모리를 탑재 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초절전 제품이었다. 특히 그린컴퓨터의 하드디스크는 기존 제품 대비 성능을 향상시키고 환경 친화적인 특성을 갖추며 친환경제품 라인업을 확대 시켰다. 이처럼 전기 소요가 많은 컴퓨터의 단점을 해결하자 주부들과 기업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기간에 인기 PC로 자리를 잡았다. 그린컴퓨터는 삼성전자 최초로 발명의 날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린컴퓨터 이전에 국내 PC 시장 5위, 시장점유율 10% 미만에 불과했던 삼성전자 PC는 이후엔 점유율 25%를 넘어서면서 드디어 삼보컴퓨터를 밀어내고 시장 1위 자리에 앉았다.

이후 삼성은 그린컴퓨터를 개선하고 매직스테이션과 센스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채시라, 장동건, 김현주, 임수정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치며 26년째 국내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이후 삼성은 일본 도시바의 기술을 응용한 노트북도 출시했는데 ‘센스810(1996년 출시)’에서는 노트북 키보드가 좌우로 분리되는 기술을 선보이며 국내 PC 최초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추천 상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99년부터 삼성전자 PC는 영국을 시작으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시장에 진출해 단숨에 유럽 PC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하며 1위 기업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삼성 휴대폰과 TV 인기에 따른 동반성장 효과도 있었다. 2005년부터는 PC 판매를 러시아 등 동유럽 시장까지 확대하면서 중국 소주에도 PC 제조 공장을 설립했다.

2011년 상반기에는 최고 1000㎏의 압력도 견딘다는 B2B용 전용 노트 PC 시리즈6를 출시해 기업체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무게 600g에 두께 1㎝ 미만의 슬레이트 PC를 출시하면서 미국 PC 시장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이후 LG전자가 가벼운 노트북 ‘그램’을 출시하자 삼성 역시 가벼운 노트북 갤럭시북을 출시하면서 이에 대응했다.

한 번 1위에 오르면 절대로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삼성전자다. 국내외 PC 시장에서도 어렵게 이룩한 정상 자리를 이후로도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리 = 이솜 기자)

※외부 기고는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