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향후 3년간 240조원 투자와 4만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지난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복귀 이후 내놓은 발표보다 60조원이나 증가한 수준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 후 11일 만에 내린 결단으로, 정·재계에서 거론되는 ‘이재용 역할론’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위기 때마다 대규모 투자로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삼성의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엘지전자와 삼성전자에서 각각 근무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육성 경영전문 컨설턴트 박광수 칼럼니스트의 경험과 에피소드가 이 질문에 답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전직 삼성맨의 삼성이야기

<14> 게임 시장서 닌텐도를 이긴 삼성 

일본 닌텐도·세가 게임기 열풍

현대 컴보이·대우 재믹스 뒤쫓아

필자 요구로 삼성도 세가와 계약

 

겜보이·알라딘보이로 국내 1위

현대 주장 법적 공방서 삼성 이겨

국내 게임 시장 변화로 판매 중지

갤러그를 기억하는가. 직장 생활을 한 5060 세대는 과거 점심식사 후 길거리 상점 앞에 설치된 게임기에 동전을 넣고 갤러그를 즐긴 추억이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엔 서울 강남 아파트에 가정용 게임기 공급이 확대되면서 학생들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게임기로 날렸고 불법오락실에서 몰래 게임을 하다가 교사들에게 걸려 혼쭐이 난 학생들도 있었다.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닌 세대의 부모들은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시장에서 닌텐도 최초의 8비트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콤을 사다주기도 했다.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던 시절, 게임기는 모든 학생들의 1순위 선망의 제품으로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의 집은 항상 아이들로 북적였다. 이에 다소 비싼 가격에도 강남 거주 부모들은 자녀들의 등살에 무조건적으로 게임기를 사주곤 했다.

(출처: 삼성 뉴스룸)
(출처: 삼성 뉴스룸)

◆삼성·현대·대우·LG 게임 시장 진입

가정용 게임기의 개발·판매 역사를 보자면 앞서 언급한 90년대 게임기 시장의 80%를 차지한 일본 닌텐도의 패미콤이 원조(1983년 출시)다. 패미콤은 소프트웨어가 내장돼 있던 1세대 단순 게임기와 달리 카세트라 불린 롬 카트리지에 소프트웨어가 담겨, 이를 바꿔 끼우기만 하면 수많은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패미콤을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게 만든 게임은 바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다. 닌텐도는 1989년부터 휴대용 ‘게임보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가 제일 먼저 닌텐도와 국내 판매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고 게임기 및 롬팩(게임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카세트 형태의 제품)을 ‘현대 게임보이’라는 브랜드로 1991년 8월에 출시하며 국내 시장에 진출한다. 또한 현대전자와 공동으로 신제품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및 국내 직접 생산도 추진한다. 1987년 포켓몬스터 레드·그린 소프트웨어의 기록적인 흥행과 더불어 2003년 3월 23일 컬러판 단종과 함께 게임보이는 1억 869만대 판매를 기록한다. 이어 대우전자도 일본 NEC와 기술제휴로 재믹스 게임기를 판매한다. 이때 닌텐도의 대항마를 자처하며 탄생한 것이 세가의 16비트 게임기인 메가드라이브 제품이다.

삼성전자도 가정용 콘솔게임 시장에 진출한 적이 있다.

당시 상품 기획을 담당하던 필자는 긴급하게 시장보고서를 사업부장과 전무에게 올리면서 삼성도 더 늦기 전에 게임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세가와 기술제휴계약을 체결하겠으니 일본 출장을 보내달라고 건의한다. 사업부장은 즉시 출장 결재를 하면서 어떻게든 세가를 잘 설득해 LG전자가 채가기 전에 삼성이 선수를 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날 일본으로 간 필자는 세가의 당시 다가하시 총괄전무를 만났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세가 본사는 통통 튀는 게임과 달리 건물은 검소하고 업무공간은 다소 답답해 보였으나 직원들의 업무를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고 진취적이었으며 특유의 색채를 가졌었다. 세가 임원진을 만난 필자는 국내 경쟁사인 닌텐도를 6개월 내 밀어낼 기업은 유통망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뿐이라고 유창한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설득했다. 빠칭코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인 세가는 보수적인 기업인만큼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세가 상표를 그대로 수입해 한국에서 판매하겠다고 물고 늘어진 필자에게 결국 계약을 승낙한다.

우선 1차로 게임기 5만대는 시장 진입이 급한 만큼 세가에서 금형에 보이는 로고를 지우고 대신 삼성 로고를 부착해 공급을 받았는데, 1개월도 안 돼 완판됐다. 재고가 떨어지기 전 필자는 세가에 다시 방문해 케이스 금형 도면을 받아 와 케이스부터 삼성 금형으로 만든 삼성 16비트 ‘겜보이’를 출시한다. 이 제품도 한 달 내 매진을 기록하면서 3차분 부터는 세가의 회로도면을 받아 정식으로 삼성 공장에서 제조해 판매를 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초반 출시된 삼성 겜보이(왼쪽)과 핸디겜보이 잡지 광고. (출처: 삼성 뉴스룸)
1990년대 초반 출시된 삼성 겜보이(왼쪽)과 핸디겜보이 잡지 광고. (출처: 삼성 뉴스룸)

◆‘겜보이’인가 ‘게임보이’인가

이때부터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사이에 본격적인 게임기 시장점유율 전쟁을 하면서 신문과 TV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냈다. 필자는 삼성 유통 대리점 판매에만 의존하면 브랜드에서 앞서가는 닌텐도의 현대 게임보이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 삼성 직원 가족들에게도 판매 캠페인을 벌였다. 6개월 무이자로 급여공제를 하는 조건을 걸고 필자는 각 그룹사 출근 공장이나 본사 입구에 판촉 관련 자료를 돌렸다. 곧 효과가 나타났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직원들 사이에서 게임기는 불티나게 팔렸다. 한 직원이 10대까지 사서 친인척에게 선물을 준 경우도 있었다. 이에 삼성전자 겜보이는 국내시장 1위로 올라서며 세가와 한 약속을 지키게 됐다.

4차 생산분 부터는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꾼 소프트웨어 팩을 출시했고 삼성전자가 직접 개발한 알라딘, 버쳐파이터, 버쳐캅, 팬저드라곤, 나이츠팩까지 나오면서 게임기 시장 1위를 독주했다. 삼성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군인공제회를 통해 60만 군인을 대상으로 우대 조건을 내세워 판촉에 나서는데 실제 인기가 많아 겜보이 생산 공장이 24시간 가동을 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삼성새턴 브랜드까지 판매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더욱 확고하게 다져갔다.

그러자 현대전자가 법적으로 시비를 걸어왔다. 삼성 ‘겜보이’ 브랜드 자체 사용을 중지하라는 게 골자였다. 닌텐도 제품인 ‘게임보이’와 발음이 유사해 자사 브랜드 판매에 손실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현대전자는 망신을 당했다.

이후 일본 소니에서 CD타입의 획기적인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을 시장에 출시하면서 3D 게임이 시작됐고 DVD라는 기존의 팩(카트리지) 개념에서 벗어나 듀얼패드(무선)와 스탠드(슬림)형, 온라인 등 다양한 버전들이 나왔다. 게임기 시장에서의 일종의 혁신이 발생한 시기다.

국내 시장에선 삼성전자 새턴과 현대전자 닌텐도 64비트 제품을 끝으로 판매가 중지됐다. PC시장의 활성화로 유저들이 게임을 다운 받아 가정에서 고성능 PC로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전국 곳곳에 PC방이 들어서면서 게임기과 소프트웨어 팩 구매의 개념이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15조 172억원으로 전년 대비 5.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바일 게임과 온라인 PC 게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콘솔 게임도 최근 5년간 40%를 상회하는 등 큰 폭으로 성장했다. 특히 2017년 닌텐도 스위치의 신제품 발매로 촉발한 상승세가 콘솔 게임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정리 = 이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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