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야기<28>] 권한 과감히 넘겨 맡긴다… 이건희·이재용의 자율경영, 다른 점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자율경영에 대한 공식적인 최초 지시는 1991년 12월 말 그룹관계사 부사장급 60여명이 참석한 연말 사장단 회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자율경영이란 각사 최고경영자들이 책임을 지고 사업부문을 이끌어 나가도록 업무 권한을 과감히 위양해 긴급한 사항이나 미래 사업 등에 한해서만 회장에 보고한다는 것이다.

◆삼성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 역사

이날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은 “자율경영이 삼성의 기업문화로 뿌리 내리도록 경영진들이 솔선수범해 나가라”고 강조했다. 또 그룹 경영 방침으로 1) 자율경영에 따른 능동적인 실천 2) 고효율의 견실한 경영 추구 3) 새로운 삼성의 기업상 구현 등을 결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1959년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설립한 삼성 비서실은 회장 직계 조직으로 운영됐고, 삼성의 2인자 역할을 맡은 비서실장이 각 계열사의 경영과 사업항목 감사 등을 수시로 하면서 자율경영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반쪽짜리로 남게 됐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 속 비서실은 구조조정본부로 변경됐고 삼성전자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을 슬림화했으나 주력사업인 반도체와 휴대폰 분야는 과감히 투자해 큰 이익을 얻게 된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발생하자 구조조정본부는 전략기획실로 축소됐고, 2010년 사면을 받은 이건희 회장이 업무에 복귀하면서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017~2018년 구속됐다가 나올 때까지 삼성 계열사들은 이사회 중심으로 본격 자율경영에 돌입했다. 구속 후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 해체를 공식 선언하고 획기적인 쇄신에 나섰다.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 있던 미래전략실을 즉시 폐쇄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사장단 회의는 물론 연말 CEO 세미나와 자랑스런 삼성인상 등 그룹 차원의 행사도 폐지했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전략과 기획, 인사지원, 법무 등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부서도 사라졌고 이에 각 계열사는 자율경영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즉 그룹 컨트롤타워가 사라져 계열사마다 독자경영, 각자도생 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경영 환경이 바뀐 셈이다.

◆총수 부재에 자율경영 불가피… 한계도

자율경영시대가 열리면서 삼성 각 계열사는 이사회 기능을 대폭 강화 시켰고 과거 그룹이 주도했던 최고경영자 선임을 비롯해 주요 경영현안은 이사회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됐다. 즉 이사회와 주총 의결을 거쳐 인사와 투자 등 경영사항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자율경영의 핵심요소다.

또한 이사회 산하에 사내이사로 구성된 경영위원회를 설치해 각사의 전략과 중장기 사업 계획, 사업 구조 조정 추진, 임직원 급여체계 등을 심의·결정하며 실질적으로 사업전략을 수행하는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5명 등 9명으로 구성돼 이사회를 통해 최종의사 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또 삼성전자는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10억원 이상의 기부금에 대해서는 사외이사가 과반수 이상 차지하는 이사회 의결을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본인 소유의 주식과 관련해 큰 그림을 그리면서 삼각편대의 경영을 통해 핵심 3사가 업무조율을 통한 자율경영을 강화하도록 했다. 이는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SDI’와 삼성물산을 구심점으로 만든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경쟁력강화 TF: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웰스토리’,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만든 ‘금융 경쟁력 제고 TF: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영’ 등이다.

이처럼 자율경영이 본격화되면서 현실적인 타협보다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수직이 아닌 수평적 조직, 통제가 아닌 자율이, 관습적 규범과 사고보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조직문화가 각종 복잡한 의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됐다.

한편으로는 계열사 전문 경영인의 권한이 커지는 동시에 책임도 막중해졌다.

자율경영 속 선임된 대표이사는 2~3년의 임기 내 실적을 올려야 하고 주가관리도 해야 했는데, 이에 장기적인 사업계획 추진에 따른 과감한 투자 결정에 한계가 있었다.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인 권오현 회장은 2020년 7월 사내간담회에서 “저도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최고의 자리인 회장직까지 승진 했으나 막대한 적자, 불황상황에서 몇 조원씩 투자를 결정하기가 인간적으로 쉽지 않았다”는 고뇌에 찬 말을 남기기도 했다. 같은 시기 김현석 가전부문 사장도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 역할은 이재용 부회장이 하는 게 맞다”며 “전문경영인이 서로 돕는 체계만으론 잘 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은 결코 큰 변화를 만들 수 없다”고 진솔한 답을 내놓았다.

삼성전자가 지난 수년간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며 내세운 경영전략은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이었으나 전문경영인들 역시 과감한 투자 등 큰 결정에 따른 실패 위험과 책임감에 있어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가석방 후 과감한 투자 나선 이재용

반면 2021년 8월 가석방으로 자유의 몸이 된 이재용 부회장은 11일 만에 삼성전자가 3년간 240억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고용하겠다는 획기적인 정책을 발표한다. 이런 빠른 의사결정은 이재용 부회장만 할 수 있는 권한으로, 현재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부응하는 판단이라고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은 또한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과 연계해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삼성전자가 20조원을 투자해 미국 테일러시에 신규로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 달 전 삼성전자와 만나 투자를 요청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삼성전자는 몇 년째 자율경영 시행에 맞춰 자율출퇴근제와 순환휴가제를 시행 중이다. 이 제도는 임직원들이 자신의 스케줄과 컨디션에 따라 하루 8시간을 정해 근무하도록 하는 것으로 효율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건희 회장의 자율경영은 채찍보단 인센티브와 같은 당근과 함께 회장의 권한을 그룹사 전문경영진들에게 과감히 위양하는 것을 표방했다. 이는 현재의 삼성을 최첨단 기업으로 전 세계에 우뚝 서게 했다. 변화를 수용하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선택으로 인재를 중시하며 창조의 기술을 탄생시키고, 그 기술을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게 한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끝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청원과 경제계의 탄원을 더 살피며 진보 진영의 눈치를 보지 말고 빠른 시일 내 과감한 결단을 내려 이재용 부회장이 더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면조치를 내려줄 것을 앙망해본다.

(정리 = 이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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