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야기<13>] 이건희 “네가 오너냐” 분노 폭발한 ‘하드디스크 사업’ 시작과 끝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는 컴퓨터의 정보와 문서, 자료 등을 저장하고 읽을 수 있는 보조기억장치로, 우리가 흔히 사용 중인 PC에서 글이나 데이터를 저장했다가 필요시 찾아 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최초의 HDD는 1956년 미국 IBM의 레이존슨 박사가 IBM-305 RAMAC(Ramdom Access Method of Accounting and Control)이라는 컴퓨터를 개발 할 때,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에 탑재시키기 위해 출시됐다. 이 HDD는 1200 RPM(Revolution Per Minute)인 자성물질로 코팅된 지름 24인치의 플래터 50장을 회전 시키면서 고속으로 데이터를 읽거나 쓸 수 있고 약 4.8MB의 데이터를 저장 할 수 있는 용량이었는데 당시 가격이 1대당 약 5만 달러에 달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HDD는 PC에 있어 특별한 기능을 하는 고가의 주변기기에 불과했으나 1980년대 후반에는 저가의 PC에도 탑재되면서 폭발적으로 시장규모가 확대됐다. HDD가 대중화되면서 크기도 점점 줄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디지털 가전제품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디지털화된 영상과 음성을 저장하는 HDD Recoder(PVR) 수요가 대폭 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자동차 네비게이션 기기에 하드디스크를 탑재해 영화, 음악 등을 자동차 내에서도 즐길 수 있었으며 휴대용 음악플레이어 기기에 HDD가 탑재되면서 수많은 곡들을 간편히 듣게 됐다. 또 HDD 내장용 캠코더나 플레이스테이션3, 엑스박스와 같은 가정용 오락기기, 외장용 하드디스크 등 여러 분야에서 기기가 출시된다.

이후 HDD를 USB(Universal Serial Bus)나 IEEE(Institute of Electrial and Electronics Engineers) 1394를 이용해 외부 기억장치로 이용할 수 있는 외장 하드디스크(외장하드) 장치와 특정 컴퓨터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네트워크상에서 공유 가능한 NAS(Network Attached Storage)라는 저장장치까지 출시된다.

시장 규모가 큰 개인용 컴퓨터 HDD는 1980년 미국의 씨게이트가 세계 최초의 개인용 5.25인치 HDD ST-506를 선보이고 이후 10메가바이트로 용량을 늘린 ST―412가 IBM PC/XT에 기본으로 탑재되면서 HDD 시장은 눈부시게 발전한다.

1990년대 초 미국의 씨게이트, 웨스턴 디지털, 맥스터는 HDD를 개발·생산하는 세계 3대 제조판매사였고 일본에서는 토시바, 오키전기공업, 히타치, 후지쯔 등이 한국에서는 삼성전자가 PC 장착용 HDD를 소량으로 개발·판매했다.

◆맥스터 협상 결렬에 이건희 분노

그러던 중 맥스터가 지속적인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시장에 매물로 나온다. 맥스터를 인수하면 당장에 HDD 시장 세계 상위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도 기회를 노리고 협상팀을 꾸리고 미국에 가 매각 실무진과 협상을 수차례 거듭했다.

맥스터는 임직원 100% 고용보장과 부채 부담 등을 내걸었으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매각 금액이었다. 처음 3억 5천만 달러부터 시작된 매각금은 수차례 협상 끝에 1억 달러를 조금 넘는 선까지 줄었고, 협상팀은 최종적으로 당시 최고책임자였던 A임원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A임원은 “내 눈에 칼이 들어와도 1억 달러 이상은 안 된다”고 더 낮은 금액을 원했고, 이에 협상팀은 다시 맥스터 실무진을 만났지만 더 낮은 금액을 거부하면서 결과적으로 협상이 결렬됐다.

그런데 갑자기 현대전자가 맥스터를 인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곧 이건희 회장이 협상팀과 A임원을 회장실로 호출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크게 화가 나 있었고 앞에 놓인 찻잔을 금방이라도 던질 듯 보였다.

이건희 회장은 협상팀이 모이자 A임원에게 바로 “네가 오너냐, 회장이냐, 왜 나한테 보고도 안 하고 네 맘대로 처리했냐”며 소리를 질렀다. 또 “나한테 보고 했으면 최종안에 대한 결정을 했었을 것이다. 더구나 삼성전자의 깜도 안 되는 현대전자에게 얼마 안 되는 금액 차이로 사업권을 빼앗길 수가 있느냐”는 취지로 진노했다.

이에 A임원은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 큰 화를 불러일으킨 점 용서해 주십시오. 당시 1억불 정도가 적당한 금액이라고 판단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 반도체를 개발·생산하면서 삼성전자를 벤치마킹 하던 수준의 현대전자가 더 큰 금액을 제시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설명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다 필요 없다. 지금은 화를 참기 어렵지만 사업은 지속돼야 하므로 빠른 시일 내 세계 최첨단 HDD 공장을 세우고 수단을 가리지 말고 HDD 관련 세계 우수 인력을 채용하라”는 말로 회의를 끝냈다.

◆삼성도 HDD 사업 결국 매각

이에 수원공장에서 형식적으로 HDD를 제조했던 삼성전자는 본격적으로 경북 구미시에 첨단 HDD 공장을 건설하고 신제품도 개발하면서 몸집을 키워간다. 1996년에 가동된 구미공장은 HDD를 월 30만대 정도 생산했고 1999년에는 월 100만대를 돌파한다. 기술력을 집합한 삼성은 2004년에는 2.5인치 HDD 생산에 나서고 2005년에는 월 300만대 돌파, 2006년 1.8인치 HDD 생산, 2009년 외장용 HDD도 출시 등에 나선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HDD 회사들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시장점유율은 최대 12%에 그친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전자의 HDD 사업은 지속하지 못하고 2011년 씨게이트로 13억 7500만 달러(약 1조 5천억원)에 매각된다. 삼성은 매각대금의 50%로 씨게이트 지분 9.6%에 해당하는 주식을 받으며 단숨에 2대 주주에 올라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장기적으로는 씨게이트의 기업 전략과 기술 개발에도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HDD 사업 매각을 1년만 늦췄다면 삼성전자는 좀 더 좋은 조건에서 협상해 사업을 넘겼을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공교롭게도 HDD 전 세계 생산수량의 25% 이상을 차지하던 태국에서 2011년 대홍수가 발생해 막대한 생산 차질이 생겼고 이에 HDD 가격이 40% 이상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삼성전자는 씨게이트 경영에 최대 주주로 참여하면서 주식 가치 상승에 크게 공헌을 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고 본다.

(정리 = 이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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