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자 회장과 그의 제자가 요양원에서 할머니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다.

한국전통머리협회 박정자 회장
미용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미용 봉사로 이어지다

[뉴스천지=박미혜 기자] “한번 나가면 50여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 머리카락을 잘라 줍니다. 남들이 1명 커트할 때 3명의 머리를 하다보니 그렇습니다. 조금 늦게 마치더라도 모두 손질해드리겠다는 심정으로 머리 손질을 합니다.”

한국전통머리협회 박정자 회장은 봉사활동에 ‘미용’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손쉽게 배워서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회장의 제자 중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미용 기술을 배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전직 교사도 있고,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자들 중에 미용 기술을 익혀 봉사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

박 회장은 “몸이 불편하거나 때론 정신 우울증까지 앓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그 분들의 머리 손질은 내 몫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때론 동료들과, 때론 제자들과 함께 봉사를 할 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특히 제자들이 적극적으로 어르신들의 머리 손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예뻐 보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매월 셋째 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미용 봉사를 하러 간다. 제자들에게 맡기고 쉴 수도 있지만 그는 몸은 고단하더라도 항상 현장에서 현역으로 동참하려고 애를 쓴다.

미용 봉사를 요청한 단체와의 약속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도 아직 손봐드리지 못한 할머니가 남아있을 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손질을 마칠 때까지 남아서 한다. 다 하지 못하고 가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모습을 지켜본 자녀들이 “여기저기 아픈데 많은 어머니부터 봉사 받으시오”라고 말하지만 그의 삶이 투철하고 치열했던 만큼 봉사도 형식적으로 하는 법이 없다.

▲ 지난해 10월 덕수궁에서 열린 전통머리 만들기 무료 시연 ‘한복사랑 페스티벌’에 참여한 박정자 회장(가운데) (사진제공: 박정자 회장)
박 회장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용 산업에 발을 담그고 한 길만을 걸어왔다.

처음엔 간호사로 취업해 일을 하다 손재주가 많았던 그는 좀 더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미용인의 길을 걷게 됐다.

미용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60~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박 회장은 그야말로 미용과 함께 달려온 쉼 없는 인생이었다.

박 회장은 미용실 운영에서부터 학문 연구, 후진 양성 등에 이르기까지 미용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경험해왔다. 헤어샵만 40년 넘도록 운영했고, 경원대·서경대·군장대 등에선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한국 미용문화예술인학회 회장, 한연직업기술 미용학과 학장을 역임했다.

그의 프로필만 봐도 미용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알 수 있을 만큼 한국 미용사의 발전을 위해 박 회장은 헌신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그러한 경험을 살려 현재 후진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박 회장은 “미용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고스란히 모아 한 달이면 미용실을 열 수 있게끔 제자들을 가르친다”며 “빠른 속도로 지도해서 성공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얼마나 많이 노력 했겠나. 다른 사람들 잠자는 시간에 밤잠을 설쳐가며 정말 많은 연구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의 남다른 노력이 결실로 맺어진 강의내용은 미용 관련 교수들도 수강 신청해서 들을 만큼 인기가 높다.

박 회장의 이 같은 미용에 대한 열정은 남들이 따라하기 힘든 탁월한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봉사 현장 곳곳에서 묻어나 타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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