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서 동혁이형이 “국사가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이야”라며 고교국사가 선택과목으로 전환된 것을 풍자했다. 역사의 중요성이 좀처럼 인식되지 못한 가운데 ‘궁궐과 종묘’를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들이 초등학생들에게 신나고 재밌게 역사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한국의재발견 ‘어린이궁궐체험학교’에 직접 찾아 나섰다.  




문화재보존가 꿈꾸게 하는 어린이궁궐체험학교

▲ 어린이궁궐체험학교 창경궁 답사 마지막 순서로 태지석(태의 주인과 태어난 연월일시를 기록한 것)을 만들고 뒷면에 장래희망 적은 것을 든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뉴스천지=박미혜 기자] 창경궁에서 만난 아이들의 입에서 낯선 궁궐용어가 술술 나온다. 대나무에 글을 적은 죽간을 뽑아 문제를 맞히면 다 같이 “하나 둘 셋, 통이요!~”를 외치고 선생님은 맞춘 아이의 노트에 ‘通(통)’이 새겨진 도장을 찍어 준다.

반면 틀리면 “불통이요!”를 외치고 다음 기회를 노린다. 질문은 “과거시험을 보고 난 후 장원 급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오방색으로 칠한 것을 뭐라고 부르나요?” 등이다. 모르면 대답하기 만만찮은 문제지만 아이들은 마냥 즐겁고 너무 쉽게 풀어 버린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말들이 2010년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 품계석 옆에서 아이들이 절하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살아나는 것은 언어뿐이 아니다.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멈춰버린 공간과 600년 전 왕실의 생활상이 사극의 한 장면처럼 부활한다.

품계석을 지날 때 돌 옆에 서서 문반과 무반이 돼 서로 맞절을 하며 임금님 모실 준비를 해 본다.

또 명정전 계단 한가운데 봉황문양이 새겨져 있는 ‘답도’를 밟아 곤장 80대를 맞은 궁녀 이야기를 듣고 장난삼아 밟으려 했던 아이가 바짝 긴장하기도 한다.

“간절히 부탁하는데 여기는 문지방이에요. 밟으면 안 돼요”라는 선생님의 설명에 여태껏 봐 왔던 문지방보다 훨씬 높이 나와 있는 궁의 문지방을 눈으로 살펴보며 큰 걸음으로 다리를 옮겨 궁 안으로 들어간다.

또 성종의 탯줄을 묻어 놓은 성종태실 앞에선 ‘태를 잘 보관해야 그 사람의 앞날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 물과 약재로 씻어 태항아리에 보관해 뒀던 우리네 전통도 알게 된다.

‘1909년 창경궁’의 역사를 들을 땐 해맑기만 하던 아이들도 사뭇 진지해진다. 우리나라 왕이 살던 궁에 코끼리, 하마, 원숭이 등 동물을 살게 했다 하니 아이들 눈이 동그랗다. 동화구연 전문 강사이자 궁궐체험학교 청룡 반(초등 3~4학년) 담임인 노경숙 교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동물원과 식물원을 창경궁 안에 짓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꿔 불렀던 아픈 역사를 들려줬다.

그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었던 곳 바로 그곳이 여러분이 밟고 서 있는 여기서부터 저기 저 끝까지 예요”라고 설명하자 서울시 노원구 선곡초등학교 4학년 권필성 군이 “이런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문화재 보존가가 되겠다. 국력을 키울 수 있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또박또박 말해 학부모들과 주변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 설명듣는 엄마들. ⓒ천지일보(뉴스천지)

아이들 못지않게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감동하는 이가 또 있다. 바로 학부모들이다.

궁궐체험학교와 3년 동안 인연을 맺으며 경기도 용인에서 해마다 올라오는 조현이 씨는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주는 교육 현장”이라며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고 좋아한다. 그래서 “6학년 첫째 딸과 이제 3학년이 된 쌍둥이 딸 모두 함께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 씨는 학부모로서도 궁궐체험학교는 즐거운 수업이라고 했다. 학부모 반이 따로 있어 눈높이에 맞는 강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올해 만난 선생님은 ‘처마의 모양이 구름과 비슷해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기와 모양이 요즘 샤기컷 같다’ 등 상상력을 자극해 주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줘서 여운이 많이 남는 수업이었다”며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역사체험학교보다 오로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의 사명감으로 운영되는 이곳이 산교육의 장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 박복희 교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올해로 7년째 궁궐지킴이로서 자원봉사활동을 펼쳐온 어린이궁궐체험학교 박복희 교장은 “철학과 역사가 흐르는 궁궐을 느끼고 우리 문화는 ‘이런 것이 아름답구나!’하는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며 “역사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진다면 누가 공부하겠나. 그래서 최대한 재밌게 유도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말했다.

어린이궁궐체험학교 교사는 문화유산 지킴이 시민단체인 (사)한국의재발견에서 일정기간 교육을 받고 면접까지 통과된 자원봉사자들이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매년 12월 모집해 1월부터 9월까지 역사이론부터 현장답사 등 60여 시간 기본교육과 12주 수습 활동을 이수해야 한다.

궁궐지킴이 교사들은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 자비를 써가며 교육을 받고 시험과 면접까지 치르는 곳이 또 있을까?”하면서도 “가장 많이 배우고 느끼며 두고두고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들”이라며 높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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