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자립 지원센터 ‘애란원’

▲ 미혼모 자립지원센터 애란원 한상순 원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뉴스천지=송태복 기자] 의사회의 낙태 시술 의사 고발 파장으로 낙태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과연 낙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낙태를 반대하는 이들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미혼모들까지 용납할 준비가 돼있는 것일까.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애란원(원장 한상순)은 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 생명을 지켜낸 어린 미혼모들에게 출산과 자립을 지원하는 곳이다. 최근 낙태 논란 탓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애란원은 미국 장로교 반애란 선교사가 가출소녀와 윤락여성의 자립을 지원할 목적으로 1960년에 설립했다. 그동안 5천여 명의 미혼모가 애란원의 도움을 받았다. 애란원 사람들은 곧 있을 50주년 기념식에 창립자의 가족과 선교사 그리고 묵묵히 긴 세월 함께해 온 후원자들을 초청해 감사를 표하고, 애란원 50년사를 되돌아볼 계획이다.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한 인연으로 20여 년 전부터 애란원을 운영하고 있다. 애란원 운용비의 절반 정도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나머지는 300여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된다.

50년 전 반 선교사가 이 일을 시작할 당시 한국인들은 도와줄 가치가 없다며 외면했었다. 정작 도움의 손길을 보내온 이는 미군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주변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더해졌다. 한 원장은 “이렇게 50년 동안 꾸려지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애란원에 입소해 양육을 택한 미혼모에게는 5년간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막상 아이를 낳은 미혼모는 사회의 모진 시선에도 아이를 키우려한다.

그래서 애란원을 거친 미혼모들이 사회 속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자연스레 하나 둘 만들어졌다. 산후과정을 지원하는 애란원 생활이 끝나면, 각자의 처지에 따라 양육을 선택한 엄마들을 지원하는 모자의 집, 아기를 입양시킨 엄마들이 있는 세움터, 그리고 사회 적응에 대비하는 자립홈에서 지원을 받는다. 또한, 지역사회에 돌아간 후에도 한가족 센터를 통해 지속적인 상담이 이루어진다.

애란원은 그간 미혼모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도 꾸준한 분석과 대안 책을 함께 제시해 왔다. 분석결과 건전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미혼모 발생을 줄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 때문에 양육을 택한 어린 엄마들에게 건전한 가정을 끌어갈 수 있는 양육법을 체계적으로 지도한다.

애란원을 찾은 미혼모 대다수는 낙태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출산을 선택한 경우다. 결혼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기에, 아이를 입양 보낼 생각으로 입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보면 대부분 마음이 바뀐다. 자신처럼 자식도 버림받는 삶을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사회의 냉대를 이기고 양육을 선택하는 것이다.

입양을 택한 미혼모와 양육을 택한 미혼모의 결과는 어떨까. 한 원장은 “어느 쪽이든 모두 힘들지만 20년, 30년 후 입양을 택한 엄마와 양육을 택한 엄마를 비교해 보면, 비록 성폭력으로 생겨난 아이였을지라도, 양육을 택한 엄마가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했다”고 그간의 경험을 밝혔다.

이어 “입양을 택한 엄마는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어 스스로를 더 짓누르며 산다. 그러나 양육을 택한 엄마는 비록 사회에서 냉대를 받지만, 그런 냉대를 이기고 자식을 지켰기에 더 정신적으로 강하고 건강한 엄마로 남게 된다”고 했다.

애란원에 들어온 미혼모들은 의무적으로 출산 후 양육기간을 거치면서 스스로 양육과 입양을 선택한다. 심하게 학대를 받은 기억이 있거나, 부모로서 자신이 양육에 부적합하다고 느낀 미혼모들은 입양을 선택한다. 그러나 과반수의 미혼모는 핏줄을 택한다. 한 원장은 “양육을 택한 미혼모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고, 생명으로 인한 기쁨과 책임감은 어린 엄마를 누구보다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애란원을 나선 후부터다. 애란원내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격려하지만, 이 사회가 낙태를 반대하면서도 막상 아이를 택한 어린 미혼모에 대해선 한없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편견으로 돌을 던지는 이들과 따가운 시선은 양육을 결정한 미혼모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해 같은 처지의 미혼모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는다. 같은 처지의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애란원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낙태를 했다면 받지 않았을 비난의 시선을 생명을 택했기에 받는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공교롭게도 50년 전 대한민국의 소외된 미혼모들을 가장 가엾게 여기고 돌아본 사람도 동족이 아닌 벽안(碧眼)의 이방 여인이었다. 그녀가 심은 사랑의 씨는 5천여 명의 한국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지켜냈다. 사회의 편견과 냉대, 질타를 넘은 조건 없는 이해와 생명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낙태에 대한 찬반론이 아니라, 생명을 지킨 미혼모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와 품을 수 있는 가슴인 듯하다. 타국의 가장 소외된 여인들을 위해 애란원을 설립하고 묵묵히 함께 해온 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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