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재활복지의 초석 다지는 사람들 

▲ 그룹상담 및 음악을 통해 약물중독을 치료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원광디지털대학교 약물재활학과)

“우리는 약물에 무력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약물 중독자들의 자조모임(Self-Help Group)에서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중독’이라는 병을 가지고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치료와 회복이 시작된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선 자신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같은 경험을 가지고 먼저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문가들도 회복단계에 접어든 선배들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하다고 말한다. 서로의 욕구나 문제들을 공감하고 상담하는 데 선배들의 조언만큼 큰 힘이 없기 때문이다.

▲ 주일경 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들이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이들이 있다. 평범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재활을 응원하는 사람들, 바로 약물재활학과 주일경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다. 국내선 아직 걸음마단계인 약물재활복지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주일경 교수를 만났다.

주일경 교수와 그의 제자들은 해마다 3~4회씩 인천, 안산, 부천 등에 위치한 보호관찰소와 교도소를 돌며 마약류 사범들의 재활을 위한 위탁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 8시간씩 5회 총 40시간 동안 진행되는 교육을 통해 그들의 회심을 유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교육을 들은 후 약물재활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결과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주 교수는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솔직히 부족하다”며 “교도소에 있는 기간이 마약사범들이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각 지역에 흩어져 그냥 방치되고 있어 굉장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약물중독 실태에 대해 주 교수는 “지난해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실시한 마약사범실태조사에서 마약류 중독이 꾸준히 늘고 있고, 1만여 명의 중독자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외국에선 추계치의 40배를 실수로 보고 있다”며 “일부 연예인, 유흥업소 관계자, 조직범죄자뿐 아니라 농어촌지역의 평범한 주부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확산돼 한국사회가 약물에 포위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약물문제. 한국사회는 얼마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을까. 이들의 재활을 위한 국가지원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번 약물중독자는 영원한 중독자’라고 낙인찍고 보는 사회의 시선은 또 얼마나 바뀌었을까.

주 교수는 모두 ‘아니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마약류 수사 기법은 날로 발전해도 약물남용을 예방하고 수요억제차원에서의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은 제자리라는 것이다.

중독자들이 늘고 있어도 재활을 위한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과 절실성은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주 교수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이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의 벽이 너무 두꺼워 끊임없이 좌절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도전이 주 교수의 기질과 잘 맞는다고 한다.

주 교수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치를 떨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고, 소명을 가지고 하는 일이니 오히려 난관을 극복했을 때 성취감을 더 느낀다”며 “약물문제는 결국 ‘약’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가족을 돌아보게 한다”며 약물에 대한 연구가 특정인이 아닌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알고 있어야 할 내용임을 강조했다.

주 교수는 이 일을 하기 몇 년 전만해도 잘 나가는 무역회사의 대표이사였다. ‘일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며 사업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주 교수의 지인이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는 일을 겪으면서 정서적 충격을 받게 됐고, 평소 사회복지 사업에 관심 많던 그가 약물중독분야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이 일에 뛰어들게 됐다.

현재는 약물재활복지학을 국내 최초 제도권 교육 안으로 끌고와 4년제 대학의 정규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또 지난해는 ‘약물재활복지론’ ‘한국의 필로폰사용자’ ‘약물재활복지 이론과 실제’라는 책도 집필했다.

주 교수는 올해도 변함없이 제자들과 함께 약물중독자들이 재활에 성공할 수 있는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교도소와 보호관찰소를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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