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와 찬밥’ 독거노인 온라인 공동체

심부름 달인 9년째 10원도 허투루 안 써

▲ '걸레와 찬밥' 회원들과 함께
[뉴스천지=박미혜 기자] “어린이들은 그 자체가 희망입니다. 하지만 독거노인들한테는 절망밖에 없어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잖아요. 그분들의 마지막을 단 한순간이라도 웃을 수 있게,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거죠”

‘걸레와 찬밥(http://cafe.daum.net/imbop/, 이하 걸찬)’ 카페지기 임희구 시인은 독거노인들의 심부름꾼으로 살아온 지 올해로 9년째다.

걸찬은 온라인 카페 등에서 모인 돈으로 매월 3째주 토요일 7~8명의 회원들과 함께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변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심부름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9년 전 문인들의 회식자리에서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써보자’고 제안했던 것이 한 푼 두 푼 모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걸찬’은 공중파 방송도 타고, 신문에도 여러 번 실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유명해진 만큼 법인으로 만들어 좀 더 규모 있게 꾸려나가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래저래 모인 돈을 어르신 지원금이 아닌 운영비로 쓰는 게 싫어 만들지 않았다.

임희구 시인은 비닐봉지 값 20원도 마트직원과 실랑이를 벌여 무상으로 받아오는 사람이다. 기부금은 단돈 1원도 낭비 없이 전액 어르신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게 임 시인의 생각이다.

그는 “어려운 이웃에게 쓰라고 보낸 기부금이 단체장의 핸드폰 값, 회식 값으로 쓰이는 걸 봤다”며 “투명한 자금 운영을 위해 찾아뵌 할머니와 할아버지, 후원금과 사용내역 등 모두 걸찬카페에 공개해 놨다”고 말했다.

임 시인은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봉사’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뭔가 위에서 아래로,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베푼다는 어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부름’ 간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심부름을 해온 걸찬 회원들답게 그들은 전문 심부름꾼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원하는 바를 찾아내 맞춰드리니 말이다.

좀 더 머물다 가길 원하면 머물고, 물품만 주고 가길 원하면 필요한 것만 드리고 간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필요한 게 뭔지 찾는 게 처음 가서 하는 일인데 냉장고 열어보는 걸 싫어하는 어르신 냉장고는 두 번 다시 열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것을 전화로 물어보고 챙겨간다.

▲ '걸레와 찬밥' 회원이 뜬 모자를 임희구 시인이 할머니께 씌워드리고 있는 모습
그렇게 때론 좋은 이웃, 편한 친구, 믿음직한 아들딸, 귀여운 손자손녀가 된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한 달이 지나면 어김없이 반겨주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심부름을 한다.

걸찬은 보통 ‘자식이 없는’ 어르신들의 심부름을 해오고 있지만 자식이 여럿 있어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어르신들도 돌본다.

대부분 지병을 가지고 여생을 외롭게, 힘들게 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사소한 생필품에서 때론 병원비까지도 지원한다.

걸찬이 어르신들을 대할 때 특별히 조심하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카메라’다.

요즘 시대에 흔히들 즐겨 쓰는 카메라지만 독거노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선 목에 걸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 그래서 카메라를 꺼내놓고 이동한다든지 사진을 마구 찍어대면 마을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또 심부름 한두 번 와서 사진만 연방 찍어대거나, 진실한 마음 없이 보이기에 급급한 행동을 하는 회원이 있으면 곧 임 시인의 경고 메시지를 받게 된다.

걸찬이 원하는 것은 순수한 심부름이다. 그래서 임 시인은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쌀 들고, 과자 들고, 사진 한 컷 찍는 정치인들의 생색내기 봉사활동은 정말 ‘잘못’ 되었다고 꼬집었다. 비단 정치인뿐 아니라 문학 활동의 소재를 찾기 위해 어르신들의 삶의 단면을 사용하는 것도 순수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걸찬은 주로 연로하신 독거노인들과 인연을 맺으며 심부름을 해오다 보니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분들의 장례식장엔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남겨놓은 재산이 있어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살아계실 때 잘하자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임 시인은 독거노인을 위한 심부름을 지금처럼 ‘끝까지 쭈욱~ ’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의 강요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동참 속에서 지금까지 심부름이 지속돼 왔던 것처럼 말이다. 임 시인은 “늘그막에 그래도 반겨주고 찾아주는 이가 있다는 게 그분들에겐 희망”이라며 “걸찬 카페와 심부름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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