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혼탁한 시대에 불세출의 영웅을 그린다 (2)
[아침평론] 혼탁한 시대에 불세출의 영웅을 그린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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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현사정이 다르지 않아 지난주 본란에 ‘남왜북로(南倭北虜)의 화(禍)’를 올렸는데,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본다. 근심거리를 일컫는 남왜북로는 중국 명나라 때 나온 이야기라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는 말이다. 고려 때나 조선조에도 ‘남쪽 왜구나 북쪽 오랑캐’가 있었으니 본디 그 말과 유사하다. 고려말기에 왜구는 경상도, 전라도 해안지역뿐만 아니라 충청도, 강원도 등 전국에 출몰해 노략질을 일삼았는데 1350년부터 1391년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약 40년간 394회나 침범한 사실이 역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조에서도 왜구 침입으로 인한 피해는 컸다. 왜구는 작게는 20여척으로, 많게는 500여척이나 되는 대규모 선단을 운영한 경우가 있었으니 그들의 조선 해안가 침입은 당시 사회를 혼란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됐다. 조정에서는 어쩔 수 없어 삼포(三浦)를 열고 조선에 투화한 왜구에게 생활 안정을 제공해 주는 유화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북쪽 오랑캐의 침범 만행 또한 잦았으니 고려 때나 조선왕조 때는 백성들이 가난으로 겪는 내우(內憂)에다가 바깥으로부터 닥치는 외한의 이중고초, 남왜북로(南倭北虜)를 고스란히 겼었던 것이다.

왜구의 창궐은 한반도를 비롯해, 동중국해 지역 해안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때는 1350년대부터였고, 주무대는 중국 연안이었다. 가장 극심했던 시기는 전회 칼럼에서 언급한 바대로 명나라 11대 황제인 가정제시대였고, 그 장소는 절강성이었는데, 당시 시대상황이 외환(外患)을 초래할 만큼 가정제는 조정 운영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도교에만 몰두해있었다. 그랬으니 국고(國庫)는 텅 비어 있었고, 권력의 전권을 가진 내각수보인 엄숭 일당은 끊임없이 사리사욕에만 몰두했을 뿐 백성의 피폐한 생활은 염두에도 없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궁핍한 생활은 아랑곳없이 가렴주구(苛斂誅求)에만 골몰했으니 나라사정이 말이 아님은 당연지사였다. 그런 시대상에서 왜구는 더욱 세를 불리며 명나라 내 불만세력 민초들까지 끌어들여 조정과 대적했으니 명나라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난세에 영웅은 나타나는 법이거늘, 남쪽 왜구와 북쪽 오랑캐의 잦은 출현으로 명나라의 진운이 백척간두에 몰린 가정제시대, 불세출의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척계광(1528~1588) 장군이다.

척계광의 6대조인 척상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부장으로 30년 동안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장수다. 그 공로로 인해 척씨 집안은 명태조로부터 등주위(登州衛, 현재 산동성 봉래현) 지휘첨사를 세습하게 됐고, 1544년 척계광이 열일곱 살 나이에 등주위 지휘첨사를 세습 받게 된다. 이때부터 척 장군의 무인 인생이 막을 열게 됐고 그는 송대 명장 악비의 군대 ‘악가군(岳家軍)’을 본떠 전투력이 강한 ‘척가군(戚家軍)’을 만들었다. 그 후 척가군은 왜구의 소탕뿐만 아니라 북쪽의 몽골족까지 물리친 혁혁한 공과를 세웠으니 척계광은 명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빼어난 장군으로 칭송받고 중화민족의 영원한 영웅이 된 것이다.

물론 중국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둔 내용과 함께 지난주에 끝난 TV 히어로 드라마 ‘영웅 척계광’을 시청하고서 내가 느낀 소감이다. 중국인들이 중화 민족의 영웅으로 받들고 있는 사실에서 인정되듯 제 한몸과 가족의 안위까지 돌보지 않고 멸사봉공했던 훌륭한 장수, 누란위기(累卵危機)의 명나라를 구했기에 그야말로 영웅 칭호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니만큼 시청자에게 어필되기 위해 소재가 다소 보태질 수 있겠지만 척계광 장군의 충정은 무엇보다 나라사랑과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났으니 진정한 우국충정의 지도자라 할 만하다.

특히 군율이 엄한 군대인 척가군을 통솔하다보니 척 장군은 개인적, 가정적 문제의 애환을 모두 감수해야만 했다. 척가군에 자원입대한 자신의 처남 왕인이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왜구 진지를 정탐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게 되는데 척 장군은 소속 전 장졸들의 구명 탄원과 척 부인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본보기를 삼기 위해 참수형 명령을 내렸다. 또 처가인 왕씨 집안이 조정에 꼬투리가 잡혔을 때 그의 부인은 남편 척 장군이 연좌제에 걸려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혼 도장을 찍는 등 척계광을 사랑했던 내용들은 내게 감동으로 와 닿았다.

척 장군은 왜구들이 중국 남동부 해안지역에 노략질을 일삼던 1567년까지 10여년간 80여 차례 전투에서 승리했다. 복건총병(福建總兵)이 된 그가 창궐하던 왜구를 완전히 소탕하고 남동해안 지역을 평정했으나 그 공적을 시기한 자들의 탄핵으로 파면됐다. 3년 후에 파면 조치가 철회됐지만 실의에 빠진 척계광은 1588년 고향인 등주에서 병사했다. 한평생 멸사봉공한 척계광을 중국인들이 민족 영웅으로 숭앙하는 것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그의 높은 충정에서일지니 비록 남의 나라 장수 이야기지만 좋은 교훈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우외환의 격랑이 심하고 뒤숭숭한 우리 사회에서 진정 우국충정의 지도자, 참 영웅을 그리는 것은 혼자만의 염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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