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한글은 세계적인 글자로 평가되지만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난감한 부분이 적지 않다. 즉 하나의 명사에 수십 가지 표현이 따라다녀 고개를 흔든다고 한다. 여성을 지칭하는 말 하나에도 여자, 여인, 부인, 모친, 어미, 아낙, 아낙네, 아줌마, 아주머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우리글은 본래 소리글이었으나 그것이 한자 표기과정에서 많은 단어로 늘어났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여자, 여인, 부인, 모친은 한문 표기이며 어미, 아낙, 아낙네, 아줌마 등은 본래 우리말이다.

고전 속에 표기 된 여인(女人)이나 부인(婦人)들은 아낙네로 변역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은 문전걸식이 일과라서 많은 아낙네를 상대하게 된다. 그런데 한 마을을 지나면서 서민 아낙네의 모습을 보고 시심이 발동했다. 게으른 아낙네라는 뜻의 ‘나부(懶婦)’라는 한시다.

- 병 없고 걱정 없는데 목욕도 자주 안 해/ 십 년을 그대로 시집 올 때 옷을 입네/ 강보의 아기가 젖 물린 채로 낮잠이 들자/ 이 잡으려 치마 걷어들고 햇볕 드는 처마로 나왔네/ 부엌에서 움직였다하면 그릇을 깨고/ 베틀 바라보면 시름겹게 머리만 긁어대네/ 그러다가 이웃집에서 굿한다는 소문만 들으면/ 사립문 반쯤 닫고 나는 듯 달려가네 -

요즈음 공연되는 판소리 춘향가 쑥대머리에 등장하는 ‘뽕따는 여인(女人)’들은 본래 ‘뽕을 따는 정부(征婦)’로 표현된 것을 쉬운 말로 개사한 것이다. ‘정부’란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 홀로 있는 부인이라는 뜻이다. 춘향은 한양으로 떠난 이도령을 그리워하며 자신이 평범하게 뽕을 따는 여인들보다 못하다고 통곡한다.

고전 심청가에서 심봉사의 젖동냥 아낙네들은 ‘부인(婦人)’이다. 어린 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는 아낙네들을 높여서 부른 것인가.

- (전략)…더듬 더듬 더듬 더듬. 우물가 찾아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초칠(初七)안에 어미 잃고, 기허(飢虛)하며 죽게 되니, 이에 젖 좀 먹여주오, 듣고 보는 부인들이, 철석(鐵石)인들 아니 주며, 도척(盜蹠)인들 아니 주랴 젖을 많이 먹여주며, 여보시오 봉사님, (중략)… 내 자식 못 먹인들, 차마 그 애를 굶기리까…(하략) -

아줌마, 아주머니의 어원은 ‘앗’과 ‘어머니’의 합성어로 ‘또 다른 어머니’란 뜻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래서 주로 숙모, 고모, 형수의 호칭이 됐고 이웃집 부인도 아주머니, 아줌마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아줌마’는 16세기 문헌에는 ‘아마’로 나온다.

그런데 좋은 뜻의 호칭도 현대에 와서는 비칭(卑稱)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양반’이란 호칭도 지금은 ‘이 양반아!’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상한다. 아가씨, 아줌마나 아주머니도 비칭으로 대접받는다. 미혼 여성을 ‘아가씨’로, 중년 부인들을 ‘아줌마’나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대다수가 불쾌감을 갖는다.

한 개그맨이 군대시절 사단장 부인에게 아주머니라고 했다 영창에 갔었다는 말로 정국이 시끄럽다. 국회에서까지 논란이 일고 군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 시민단체가 군 명예훼손으로 개그맨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장본인은 ‘웃자고 한 소리인데 죽자고 달려든다’라고 응수했지만 여러 차례 정부정책을 비판해 온 전력이 있어 개그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아줌마축제를 앞다퉈 열고 있다. 수원 아줌마축제는 올해로 13년째이고 대구 아줌마축제도 인기가 높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도 감수하는 억척 아줌마들은 국가 사회 발전에 공헌을 한 아름다운 이름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한국 아줌마들의 위대하기까지 한 교육열을 높이 평가한 적이 있다.

아주머니, 아줌마의 호칭도 사모님과 여사님 같은 경칭으로 받아들이는 이해와 아량을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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