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남도민요 흥타령은 비가(悲歌)다. 유명 여성 국악인 하나는 흥타령이 너무 슬퍼 평소 부르기를 꺼리다가 존경하는 스승의 영전에서 만가로 불러 울음바다를 만들었다. 본디 농사의 고역을 잊거나 술자리에서 흥을 도우기 위해 불린 노래가 왜 이렇게 슬프게 전해진 것일까.

흥타령은 대부분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담고 있다. 가사 하나를 보면 너무 처절하다. 보거든 싫거나/ 안 보거든 밉거나/ 니가 나지를 말았거나/ 내가 너를 몰랐거나/ 곰곰 앉아 생각하니/ 생각 끝에는 한숨이요/ 밤낮주야 수심걱정 생각 그칠 날이 전혀 없어/ 차라리 내가 먼저 죽어 너를 다려 갈거나…(하략)

사랑을 번민하며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으니 극단적 심경은 어느 민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임을 기다리다 밤을 새운 여인은 베개머리를 눈물로 적신다.

빗소리도 임의 소리/ 바람소리도 임의 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니 행여 임이 오시려나/ 삼경 되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임을 기다리건만/ 고운 임은 오지 않고 베개머리만 적시네…

창밖의 빗소리 바람소리마저 임이 오는 소리로 착각했다. 어느 민요에서 이처럼 간절한 수사가 있을까. 노래 말미마다 이어지는 후렴 ‘아이고 데야 어허 성화가 났구나’는 반어법이다. 슬픈 가락을 떨쳐주는 흥겨움이 바로 반복되는 후렴에 있다.

같은 흥타령이지만 경기 타령과는 색깔이 다르다. 한이 묻어나는 남도에 비해 경기 흥타령은 리듬감이 있다. 천안 삼거리 흥타령은 비가적인 요소를 찾기 힘들고 덩실 덩실 춤에 어울리는 춤 타령이다.

조선시대 천안 삼거리는 삼남에서 모여드는 과객들로 불야성을 이뤘다고 한다. 주막마다 풍악이 울리고 밤늦도록 술에 취한 사람들의 노래 가락이 삼거리를 가득 채웠다. 충청도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어울려 유숙하고 소통했던 풍류(風流)의 장이었다.

좁게는 우리 소리를 풍류라고 한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즐기는 것을 풍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신라 문장가 최치원은 풍류를 ‘신묘(神妙)한 도(道)’라고 말하고 명승을 유람하며 수양하고 즐기는 것을 풍류라고 정의했다.

젊은 시절 당나라에 건너가 벼슬까지 하며 문명을 떨친 그는 신라에 돌아와 전국을 돌며 풍류를 즐겼다. 아름다운 곳에 머물며 시가를 짓고 술로 근심을 잊었다. 이런 고운의 풍모는 후대 선비들 사이에서 유아(儒雅)한 풍류로 계승됐다.

시가를 사랑했던 선비들은 동매(冬梅)가 피는 이른 봄이면 서둘러 정자에 올라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매화를 선비의 기상으로 애완한 이유도 있다. 아이를 시켜 지필묵을 갈게 하고 거문고 끈을 조이게 한다. 재력이 있는 사대부들은 여악(女樂)을 초치하여 흥을 돋웠다. 주옥같은 시가(詩歌)들이 이런 풍류의 장에서 지어진 것이다.

국화 향이 짙어지는 가을에도 풍류는 이어진다. 가을 국화도 고절한 선비의 기상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불행했던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을 그린 영화 ‘취화선’에서 주제가였던 노래가 남도 흥타령이다.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이 돋네/ 아이야 거문고 정쳐라/ 밤새도록 놀아보리라…

옛 사람들이 그리운 것은 사람이었다. 국화가 피자 술이 익었으며 꿈에 그리던 벗이 오자 밤하늘에 휘영청 달이 떴다.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을까. 가인은 이 대목에서 울음을 토하듯 목청을 높인다. 가슴속에 담긴 정과 한을 토해내는 것이다. 남도 흥타령의 멋과 맛이 여기에 있다.

이제 문화의 달 10월이다. 각 지방의 향토축제가 풍성하다. 천안 흥타령문화제가 이미 막을 올렸으며 악성 난계 박연 선생을 기리는 충북 영동 난계예술제도 오는 13일 치러진다. 보성 소리축제도 10월 중순에 열린다. 축제가 열리는 현장을 찾아 한국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각박함을 떨쳐보는 지혜가 아닐까. 정과 그리움을 일깨울 감동이 바로 문화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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