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주선 이백은 달빛이 교교하면 술 생각이 간절했다. 나무 사이에서 한 동이 술을 끄집어냈다. 마침 달빛이 비추니 그곳에는 자신과 달과 그림자 셋이 있었다. 이백은 잔에 술을 따라 천천히 마셨다. 그림자가 이백을 따라 술을 마시며 그가 춤을 추니 그림자도 춤을 추었다.

고독한 시인 이백의 가슴에 머문 달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친구였을 게다. 그러나 달을 사랑한 시인이 어디 이백뿐이었겠는가. 소동파의 마음속에는 달이 그만 하늘의 궁전으로 비쳐진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술잔을 들고 하늘에 물어 본다/ 모르겠네, 하늘의 궁전에서는 오늘 밤이 무슨 날인지

고대 중국인들은 달 궁전에 아름다운 미인 항아가 산다고 믿었다. 항아가 이 세상에서 불로 약을 훔쳐 먹고 달나라로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달 속의 항아는 아름다운 미인의 대명사격으로 그려진다. 한문소설이나 판소리 등 고전에서도 미모를 얘기 할 때 ‘천상의 항아가 내려온 듯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우리처럼 중국인들도 이태백이 놀던 달에는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산다고 생각했다. 금도끼 은도끼로 찍어내어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노래했다.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이라고 생각한 효국,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던 달도 계수나무가 살아있는 천상의 효원(孝園)이다.

둥근 달은 사람들의 소망을 실현해 주는 힘의 대상이었다. 대보름을 명일로 삼은 신라인들은 한가위를 만들어 축일로 삼았다. 햇곡으로 제상을 마련하고 조상의 영전에 향을 피워 영혼을 위로했다. 가배, 한가위 페스티벌은 2천년 연면한 효의 역사다.

봉건시대에 선남선녀들은 자유인이 되는 한가위를 손꼽아 기다렸다. 동산에 둥근 달이 떠오르면 규방의 아가씨들도 거리로 뛰쳐나와 다리 밟기나 탑돌이를 하면서 소망을 빌었다. 남녀상열의 로맨스와 이별이며 눈물도 달빛아래에서 이뤄졌다. 손에 손을 잡고 추던 ‘강강술래’는 때로는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호국 합창이 됐다고 한다.

조선 여류시인들의 가슴속에 있던 달은 어떤 달이었을까. 임을 만났던 날이나 이별의 한을 토로한 날도 만월 날이었다. 개성 만월대를 자주 올라갔던 황진이는 사랑했던 소판서와 헤어지면서 이곳에서 이별의 시간을 갖는다.

달빛 아래 뜨락 오동잎이 다 졌네요/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래졌고요/ 누대는 높아 한 자만 더 오르면 하늘/ 사람은 취해서 천 잔의 술을 마셨네요/ 흐르는 물은 가야금 소리처럼 차고/ 매화는 피리 속에 향기를 넣네요/ 내일 아침 서로 헤어지면/ 그리운 생각 푸른 물결처럼 길겠죠

허난설헌과 비견되는 조선 여류시인 이옥봉의 노래에도 규원(閨怨)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한을 토해내는 내면에는 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넘친다.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신지요?/ 달 비친 사창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것입니다.

현대의 달 시인 권대웅은 ‘그리운 것들은 모두 달에 있다’고 노래했다. 그는 달을 읊고 월화(月畵)를 그려 많은 이들에게 달 사랑을 전파해 왔다. 정말 시인의 노래처럼 그리운 것이 모두 달에 있으며 마음을 먹으면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

며칠 있으면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다. 올해는 지속된 경기침체, 조선사들의 감원 사태, 사드배치에 따른 국민 갈등 등 불안정한 시국이 계속됐다. 그러나 한가위를 앞두고 귀성열차 전 좌석은 벌써 매진됐으며 버스 등 좌석도 동이 났다. 한가위 고향으로 돌아가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만나 해후의 정을 나누는 풍속은 달라지지 않는다.

전쟁으로 조국을 떠나 정처 없이 헤매는 난민들. 불황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직장 폐쇄로 실의에 빠진 직장인들, 직장을 잡지 못한 청년실업인들, 쪽방에 버려진 무의탁 노인들, 질병으로 고생하는 질환자들, 이들에게도 희망의 달이 밝게 비쳐졌으면 한다. 자유와 인권을 찾아야 할 북한 동포들에게도 소망의 달이 만개하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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