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선거운동을 할 때 지역적 연고를 뒤로 이 지역의 발전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뛰겠다고 다짐하며 목청껏 지지를 호소했던 열정이 있었던 그들이었다. 당선 후에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켜봐달라고 지지의 의미를 곱씹으며 열심히 하겠다고 우리를 안심시켰었더랬다. 그렇게 시작된 또 다른 판의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한 자신만만함과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그들의 움직임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당대표의원들의 행보, 그리고 연일 시끄러운 국회가 있을 뿐이다.

달라지게 하겠다던 의원들은 자신의 의견도 없이 당이 나가는 방향에 그저 묻어서 조용히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된다. 미술품을 관람하는 것처럼 조용히 그렇게 그들만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어 버렸다. 당장 국회 밖을 바라보면 점점 움츠러드는 국민들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국회 안에만 들어가면 힘겨루기로 정신을 잃어버린다. 그 힘겨루기 이전에 올바른 프로세서가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 것을 잊었다. 지엽적인 것들에 휘둘려서 본류는 만나지도 못하였고 자신의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고 어떤 개발을 통해 최대의 효율을 올릴 수 있는지는 벌써 오래 전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갤러리로 지켜보는 자가 되어 표류하는 정국을 방관한다.

당의 이름 아래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각자의 청사진으로 실천하려던 그 많은 계획들이 모두 묻혀버리고 그들은 갤러리로서의 운명에 익숙해져 간다. 아예 새로운 틀로 이들에게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을까. 새로이 법을 만들고 시스템을 정비하여 새로운 틀을 짜주어도 그들은 또 비슷한 운명을 가지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체계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솔루션이다. 변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범주 내에 존재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자신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고 체계 탓 시스템 탓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니 그것부터 고쳐내야 한다. 갤러리로서 정권에 기생인생을 살아가려니 그 무엇보다 정권이 우선이 되어 어쩔 수 없는 운명론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자신의 운명을 방치하게 된다면 곧 사망진단서를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의 청사진에 그렸던 일은 만져도 못 본 채 당략과 정쟁에 희생물로서 말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 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권한과 책임의 역할을 되짚어 보자. 이제 갤러리가 아닌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의 답답함을 풀어내는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가 돼야 한다. 길게 보고 앞에 펼쳐진 이권에 포로가 되어 휘둘리지 말고 대의를 품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그들에게 표를 주었던 마음을 공감하고 계획했던 일들의 처리가 진행될 것이다.

의원들이 갤러리로 존재한다면 어쩌면 무난한 임기로 자리를 보전할 수는 있겠지만 이후 우리 국정은 타락하게 될 것이다. 서로의 업무평가로 냉정하게 컨트롤 하는 선진국의 시스템은 뻘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로 특수성을 부여받은 만큼 그리고 특혜를 주어 권리를 보장하는 만큼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냉정한 컨트롤을 보유해야 한다. 자신만의 컨트롤을 잃어버리고 정권실세의 한 편을 잡고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의 단초를 잘라야 한다. 무엇이 바른 길인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외면하는 것은 또 다른 욕심이 커졌음을 증명한다. 욕심을 인정한다면 일선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자리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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